낯선 섬이 주는 막연한 아름다움·따뜻한 사람 이야기
  • 이경관기자
낯선 섬이 주는 막연한 아름다움·따뜻한 사람 이야기
  • 이경관기자
  • 승인 2016.03.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크로네시아 추크 섬으로 야반도주한 김도헌 작가 글
이병률 시인 이야기 듣고 시선 따라가듯 사진으로 옮겨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옥색, 연청색, 청색, 군청색이 뒤섞인 바다에 환초 대를 따라 형성된 포말의 흰 띠들, 섬들과 환초 가까운 바다에 드러난 은색의 모래톱. 그 모습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창공에 높이 떠 내려다보는 구름의 정원은 몽환적이다. 거기에 석양의 붉은빛이 투영돼 은은한 금빛으로 빛나는 구름의 궁전은 나를 또 꿈꾸게 한다”(188쪽)
 봄바람 불어오면 괜스레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그럴 때, 우리는 어딘가로의 도피를 꿈꾼다.
 여기, “살아지지 않아서 세상 끝으로 도망쳤고, 그곳엔 그를 더이상 나그네로 만들지 않는 섬”을 찾은 한 사내가 있다.
 어느 견딜 수 없는 봄날, 미크로네시아의 추크 섬으로 야반도주한 ‘김도헌’이 쓰고 그의 이야기를 좇아 따라간 시인 ‘이병률’이 찍은 ‘세상 끝에 살고 싶은 섬 하나’.
 이 책의 저자 김도헌은 어느 날 문득 대한민국을 떠나 태평양의 섬, 추크(Chuuk)로 향한다.
 그는 찬란히 빛나는 섬의 아침과 해가 뉘엿뉘엿 지는 저녁 바다에 사로잡혀 그곳에서 삶을 살아내기로 했다.
 그가 일상으로부터 도망가, 그에게 또다른 일상이 된 ‘추크’ 섬은 남태평양에 위치한 미크로네시아 연방의 섬으로 큰 산호초로 둘러싸여 있으며 127km²면적에 약 3만8000여명이 모여 살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추크 섬으로 떠나 생활하고 정착하면서 알게 된 인간의 선함과 악함, 외로움과 그리움, 소외와 연대에 관한 기록을 담았다.
 그가 들려주는 추크의 이야기는 우리네 일상과 맞닿아 더욱 마음을 울린다.
 그는 처음부터 추크라는 낯선 섬에 완벽하게 적응할 순 없었다고 말한다.
 시퍼런 바다와 짙푸른 숲과 뜨거운 태양이 전부인 추크에서는 시간의 흐름부터가 달랐다.
 그가 추크에서 생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함께 떠나왔던 동료의 죽음을 목도했고 그로 인한 정신적 충격으로 적응이 더욱 힘들었다.
 그렇게 힘들 때에 ‘베네딕’이라는 현지인 친구가 그에게 많은 도움을 줬다.

 죽은 동료의 관을 한국으로 보내는 어려운 절차를 밟을 때에도, 숙소를 구할 때에도, 새로운 생활을 위해 관상어 사업을 시작했을 때에도. 유일하게 베네딕은 이방인인 그가 섬에서 잘 지낼 수 있도록 격려해줬고 의지가 돼 줬다.
 베네딕의 호의와 배려로 그는 차츰 섬의 시간과 섬사람들에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었다.
 어느 날, 낚시를 하다가 파도가 거세 무인도에 표류했을 때.
 그들은 야자나무 아래 앉아 요깃거리를 먹고는 불을 지폈고 술과 담배를 즐기며 바다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 평소에 말수도 없고 표정도 없던 베네딕이 뜬금없이 묻는다.
 “사람의 생명의 본질이나 속성이 뭐라고 생각해?”(99쪽)
 이 뜬금없고 큰 물음을 시작으로 그들은 인간에 대해, 세상에 대해, 삶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그 이야기는 깊고 광대하다. 그렇다고 이 큰 이야기로 이치를 깨닫자는, 세상을 바꾸자는 것은 아니다. 그저 온전히 몸으로 겪어내고 받아낸 그의 이야기일 뿐이다. 베네딕은 모든 걸 알고 있는 사람처럼, 어떤 이야기도 들어주겠다는 듯 그에게 관대하다.
 우리에게는 어쩌면 살아가면서 ‘존재하기만 하면 되는 존재’가 필요할 때가 있다.
 그들은 지친 우리에게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의지를 전해준다.
 “바다란 사방 어느 곳으로도 갈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세상은 절반으로 정확히 나뉘었다. 위는 어둑한 하늘이, 아래는 높이 일어서고 또 일어서는 바다가 지배했다. 그 사이에 조각배 하나가 까닥거린다. 환초를 빠져나온 조각배는 바깥 선을 따라 전진했다.”(172쪽)
 그가 적응하지 못하고 보낸 오랜 방황의 시간은 작은 조각배를 타고 망망대해에 떠 있는 시간과 같았다.
 이때 그는 이 폭풍우 같은 시간을 함께 견뎌줄, 베네딕 같은 존재를 마음에 살게 했다. 오로지 혼자서 망망대해를 건너는 일은 불가능했기에. 그는 베네딕이 언제나 답을 해줄 거라 믿었다. 또 베네딕은 그런 우리에게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조각배가 섬에 안전하게 도착했을 때에, 편안해질 수 있을 때에 베네딕을 살며시 놓아주기로 한 그의 이야기를 누군가가 옆에서 들어주기를 그는 바랐다.
 시인 이병률은 김도헌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의 곁에서 사진을 찍었다. 섬사람들은 그가 들이미는 사진기 앞에서 환히 웃어주었고 아이들은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또렷이 응시했다. 바다는 매번 다른 색깔을 보여줬고 수많은 별들은 빛났다. 그렇게 그의 이야기를 좇아 사진으로 시선을 옮겨놨다.
 낯선 섬이 주는 막연한 아름다움과 따뜻한 사람들의 스토리는 일상에 지친 우리에게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소설가 김훈은 추천사에서 “경계에서 쓰여진 그의 글이 안주에 익숙한 사람을 흔들어서 경계선 너머를 바라보게 한다”고 썼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
  • 경북 포항시 남구 중앙로 66-1번지 경북도민일보
  • 대표전화 : 054-283-8100
  • 팩스 : 054-283-53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모용복 국장
  • 법인명 : 경북도민일보(주)
  • 제호 : 경북도민일보
  • 등록번호 : 경북 가 00003
  • 인터넷 등록번호 : 경북 아 00716
  • 등록일 : 2004-03-24
  • 발행일 : 2004-03-30
  • 발행인 : 박세환
  • 대표이사 : 김찬수
  • 경북도민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북도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HiDominNews@hidomin.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