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저금리 등 통화완화 정책으로 시중에 유통 중인 현금이 90조원을 돌파했다.
한국은행이 공급한 화폐 발행잔액이 90조원을 넘어선 것은 처음이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등 통화완화 정책이 이어지면서 화폐 공급량이 늘어난 탓이다. 한은이 발권력을 동원해 중소기업 등에 빌려준 돈도 사상 최대 수준에 도달했다. 지난 2월 말 현재 한국은행의 대출금은 18조9204억 원으로 1개월 전보다 488억원 늘었다. 이처럼 한은의 유동성 공급이 늘면서 유동성 환수를 위해 발행하는 통화안정증권 규모도 급증했다.
한은이 작년 발행한 통안증권은 191조5000억원이었고 188조6000억원어치가 상환돼 연말 발행잔액은 184조4000억원이었다. 이처럼 시중의 돈이 늘어나자 한계에 도달한 이웃 일본 아베노믹스의 돈 풀기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양적완화란 이미 저금리 상황이어서 금리 인하를 통한 효과를 기대할 수 없을 때 중앙은행이 다양한 자산을 사들여 통화공급을 늘리고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장기침체에서 탈출하기 위해 2013년 4월 1차 양적완화를 단행한 데 이어 2014년 10월 2차 양적완화를 실시했다. 아베노믹스는 나랏돈을 풀고, 금리를 낮춰 엔화 가치 하락을 유도해 수출을 증대시킴으로써 경제를 활성화하고 고용을 확대하겠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하반기까지만 해도 아베 총리의 재정확대, 금융완화는 효과를 내는 듯했다. 지난해 말까지 3년 동안 일본의 주가는 약 2배 오르고, 실업률은 3% 초반대로 떨어졌다. 그러나 최근 ‘엔고’ 망령이 다시 살아나면서 아베노믹스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춰 달러화 약세에 속도가 붙자 엔화 가치는 더욱 고공행진 했다. 잇단 양적완화와 마이너스 금리 도입에도 엔화 가치가 내려가기는커녕 올라가자 아베노믹스가 결국 좌초 위기에 처했다. 일본 기업들의 경기 전망은 악화하고 있으며, 잃어버린 20년은 잃어버린 30년이 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예측이 고개를 들고 있다.
아베노믹스는 돈을 아무리 찍어대 봤자 근본적인 구조개혁이 없이는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이 과감한 양적완화로 경기 회복의 계기를 마련한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상당한 부채를 감축하는 등 구조개혁을 단행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정치권 발 양적완화 논란이 뜨겁다. 우리 경제가 심각한 위기 국면이라면 금리 인하나 재정확대, 발권력을 동원한 양적완화 등 다양한 금융 완화정책을 구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양적완화와 같은 극단적 처방은 다른 정책의 여력이 없는 특수 상황에 국한해 실시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따라서 이런 정책은 진지하고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결정해야지 선거 공약으로 불쑥 내놓을 사안은 아니다. 구조개혁 없는 돈 풀기로는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한계가 있고, 부작용을 누적시킨다는 것을 아베노믹스는 시사하고 있다. 우리 경제의 불황 역시 구조적인 문제라면 단순히 돈 풀기로 해결할 수는 없다는 지적이 많다.
총선이 끝나면 국민은 정치권의 공약이 어떻게 진행될지 지켜볼 것이다. 정치권과 당국은 아베노믹스를 타산지석 삼아 경제 정책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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