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북한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지난 21~22일 비공식 접촉을 했다. 내달 8일 미국 대선이 임박한 데다 날로 고도화하는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에 맞서 미국에서 대북 선제공격론과 협상론이 동시에 제기되는 미묘한 시점이라 더욱 관심을 끈다.
정부 당국은 미국 정부와는 상관없는 민간 차원의 접촉이라며 큰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접촉 인사의 면면이 북한의 현직 대미 외교 라인과 북미협상에 관여한 미국의 전직 관료라는 점에서 예사롭게 볼 일은 아닌 듯하다.
북한 측 참석자 5명 가운데 한성렬 외무성 부상과 장일훈 유엔주재 차석대사는 이른바 북미 간 ‘뉴욕채널’을 맡아 대미 접촉창구 역할을 해온 인물이다. 미국 측에서 참석한 4명 중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핵 특사는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의 미국 측 수석대표였고, 조지프 티트라니는 2005년 9·19 공동성명 채택 당시 6자회담 차석대표를 맡았던 인사다. 이 때문에 북미가 민간 접촉이라는 형식을 빌려 양국간 현안인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에 대해 ‘간접 대화’를 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는 이번 북미 간 비공식 접촉을 계기로 한 대북협상론 확산을 경계하면서 한미가 강력한 대북 제재·압박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거듭 확인했다. 정부 당국자는 23일 “미국 측 참석자들은 길게는 20여 년 전 대북정책을 담당했던 전직 인사들로서, 미 정부의 현 대북정책과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미국 측 참석자들은 그간 대북협상파로 알려진 인사들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번 회동은 당국 간 접촉이 힘든 제재·압박 국면에서 민간을 통해 양측의 의중을 확인하는 만남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차기 미국 정부에서 북미 관계의 변화 가능성을 서로 탐색하는 기회가 됐을 가능성도 있다. 일본 아사히 신문이 이날 북한 측이 이번 회동에서 미국 새 정부의 대북정책을 모색하는 자세였고, 미 참석자들이 미국 새 정부에 정책 제안을 할 의향을 보였다고 보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 차기 행정부에서 우리 정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대북협상 국면이 전개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은 세계전략 차원에서 한반도 정책을 구사하기 마련이다. 한미 간 공동이익을 더욱 확대해 동맹관계를 강화하고, 한반도 주변 정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외교 전략이 요구된다. 연합
저작권자 © 경북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북도민일보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
▶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
▶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