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은 횃불이 되어선 안된다
  • 모용복기자
촛불은 횃불이 되어선 안된다
  • 모용복기자
  • 승인 2017.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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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경북도민일보 = 모용복기자] 강추위에 함박눈까지 내린 지난 주말 박근혜 대통령 퇴진과 재벌 총수 구속을 촉구하는 13차 촛불집회가 대구·경북을 비롯한 전국에서 열렸다.
촛불은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등장했을까?
전해지는 문헌과 삼국시대 때의 것으로 추정되는 ‘마촉’이라는 발전된 형태의 초로 보아 아마도 고조선 때부터가 아닌가 싶다.
초는 제조법이 까다로워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주로 궁궐이나 상류계층에서만 사용되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야 그 제조법이 널리 알려져 일반인들도 사용하였다.
조선시대 때에도 초는 귀해서 서민들은 주로 등잔을 사용했다.
대신에 관혼상제 때가 되면 일반인들도 촛불을 켜는데 신랑신부가 함께 자는 방을 ‘화촉동방’이라 일컫거나 지금도 제사 때에는 꼭 촛불을 밝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촛불은 동지섣달 캄캄한 밤 우물이나 장독대 앞에 정화수 떠놓고 두손 모아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어머니를 떠오르게 한다.
또 간절한 접신을 기도하는 무당의 하얀 옷자락도 연상시킨다.
촛불은 의식에서는 세속의 때와 먼지를, 개인적인 공간에서는 소음을 소각시켜 신성성과 청정성을 북돋우는 역할을 했다.
이러한 촛불이 이제 거리로 나왔다.
항의나 추모를 목적으로 하는 집회에 단골메뉴로 등장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촛불집회가 집단시위나 저항행동의 주요방식으로 자리잡은 것은 2000년대 이후의 일이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사망한 두 여중생의 추모집회에 이어 2004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반대 시위,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집회를 거치며 정착됐다.
최근 들어서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관련 촛불문화제가 매주 주말 열리고 있다.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서는 해가 진 이후에는 옥외집회나 시위를 금지하고 있어 문화행사의 형태로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 촛불집회가 세계인들이 그렇게도 경이롭게 여길만큼 유독 우리나라에서 이처럼 활성화 된 것일까.

우리의 역사는 확실히 외란(外難)의 역사였다. 그러한 역사는 외적에 대해 적개심을 품은 한국인을 낳았다.
민중 사이에는 불굴의 저항정신이 싹 텄으며 그로인해 이순신이나 논개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한민족의 최고 가치가 됐다.
격동의 현대사에서 저항정신은 빛을 발했다.
4·19혁명, 부마항쟁, 5·18광주항쟁, 6월 민주항쟁 등이 대표적이 예다.
이러한 한국인의 줄기찬 저항정신이 매주 주말마다 열리는 촛불집회를 잉태한 것임엔 분명하다.
하지만 저항과 투쟁정신 만으로는 촛불집회를 설명할 수 있을까?
저항과 투쟁정신 만으로 영하의 눈발 흩날리는 심야에 잠든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광장에 나와 촛불을 든 엄마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을까?
단언컨데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시위집회가 과격하고 폭력적이었다면 그 생명력은 길지 않았을 것이다.
일찍이 석학 이어령 선생은 좌와 우의 개념은 서구의 산물이라 했다. 우리 시골노인이 태연자약하게 길 한복판을 걷는 모양을 보노라면 한국인에게는 근본적으로 대결의식이 없다고 설파했다.
어쩌면 촛불집회도 이러한 한국인의 중도, 평화사상의 발현이 아닐까?
한 때 우리 현대사는 피와 눈물로, 최루가스와 화염병으로 점철됐지만 그 파열음이 사라진 광장에 이제 촛불이 타오르고 있다.
정치가 아무리 암흑 속을 걷는다 해도 새벽을 기다리며 어둠을 밝히는 평화의 촛불이 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태극기가 됐든 촛불이 됐든 한민족의 평화사상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밝은 미래를 본다.
일부의 주장처럼 촛불이 횃불이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촛불은 자신을 태워 세상을 밝힐지언정 남을 태우지는 않을 것이므로….
캄캄한 밤 촛불 한 자루 밝히고 가족의 안녕을 비는 어머니의 모습, 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채 촛불을 든 엄마의 모습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느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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