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망상’이라는 인간의 심리 탁월하게 묘사
  • 이경관기자
‘부정망상’이라는 인간의 심리 탁월하게 묘사
  • 이경관기자
  • 승인 2017.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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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숙 교수의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읽기
▲ 권오숙 교수가 포항시민들에게 ‘오셀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포항시립도서관은 겨울방학을 맞아 오는 22일까지 4회에 걸쳐 셰익스피어 국내 권위자 권오숙 한국외대 교수를 초청해 특별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햄릿’과 ‘리어왕’에 이어 ‘오셀로’를 들여다본다.
 
 (3)오셀로
 ‘오셀로’는 이탈리아의 제랄디 친디오가 쓴 ‘백개의 이야기’ 중 제3권 제7화 ‘베니스의 무어인’을 원전으로 하고 있다.
 이 작품은 베니스와 사이프러스(키프로스) 섬을 배경으로 무어인 장군 ‘오셀로’의 아내에 대한 애정이 악인 ‘이아고’의 간계에 의해 무참히 허물어지는 과정을 그린 비극이다.
 이아고의 교묘한 언행으로 인해 질투심이라는 격정에 사로잡힌 오셀로는 판단력이 마비돼 갓 결혼한 순결한 자신의 아내 ‘데스데모나’를 부정한 여인이라고 의심하게 된다.
 결국 아내를 살해하는 과정에서 오셀로가 겪게 되는 심리적 고통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오셀로’는 셰익스피어의 다른 비극들과 달리 국가적 차원의 비극이 아니라 가정 비극이다.
 오셀로의 비극적 결함은 ‘질투심’이라 할 수 있다.
 오셀로는 모든 등장인물들이 칭송을 아끼지 않는 고결하고, 관대하며, 품위있는 인격의 소유자이었다.
 그러나 이아고의 중상과 모략으로 인해 질투심에 사로잡히자 그 감정은 그의 이성을 압도하고 만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에서는 흔히 이렇게 감정이 이성을 압도할 때 주인공은 비극적 상황에 빠지게 된다.
 오셀로는 의처증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캐릭터다.
 이 작품은 세계 문학 사상 ‘부정망상’이라는 인간의 심리 현상을 가장 탁월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이 극에서 우리는 질투라는 덫에 갇혀 파멸의 수렁을 허우적거리는 인물 오셀로를 통해 질투심이라는 병리적 심리가 근거도 없이 의심을 키워나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영국의 정신과 의사 존 토드가 1955년 ‘오셀로 증후군: 성적 질투심의 정신병리학 연구’이라는 논문에서 ‘오셀로 증후군’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오셀로의 약점은 인종, 데스데모나와의 나이 차이, 불확실성 등이다.
 이는 결국 오셀로로 하여금 열등감을 불러일으킨다.
 셰익스피어는 이 극에서 백인 주류인 이아고 또한 똑같은 병리적 심리를 갖고 있는 것으로 설정했다.
 그가 오셀로와 캐시오를 파멸시키기로 작정한 것도 그들이 자기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했다는 질투심 때문이다.
 따라서 오셀로에 대해 인종차별적 언어들을 사용하는 인물들을 통해 오히려 셰익스피어는 당대의 인종차별 문제를 비판적으로 제기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아고: 음탕한 무어 놈이 내 잠자리에 뛰어들었던 것 같아. 그 생각이 독약처럼 내 마음을 물어뜯는단 말이야. 그 녀석과 똑같이 계집은 계집으로 갚지 않는 한 어떻게 해도 마음이 누그러질 것 같지 않아. 만약 실패라도 할 경우엔 적어도 그 무어 놈을 심한 질투심에 사로잡히게 해서 분별력을 잃게 만들 테다.”(2막 1장)
 그래서 그는 캐시오와 데스데모나가 부정한 관계라는 의심을 오셀로에게 불러일으켜 세 사람을 한꺼번에 파멸시킬 계략을 꾸민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극은 아내의 정절에 대한 남편들의 강박적인 의심이 빚은 극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여러 격정 중 질투심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춘 이 극에는 이아고의 이 대사 말고도 질투심의 속성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온다.
 “이아고: 아, 장군님, 질투심을 조심하십시오. 그것은 푸른 눈을 한 괴물로서 자신이 잡아먹는 것을 조롱하는 놈입니다. 자신의 운명을 알고서 죄지은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오쟁이진 남편은 축복 속에서 사는 겁니다. 하지만 오, 자기 아내를 사랑한 나머지 의심하고 미심쩍어 하면서도 여전히 열렬히 사랑하는 남편에게는 매 순간이 얼마나 지옥 같겠습니까!”(3막 3장)

 제어할 수 없는 여성의 성에 대한 불안을 나타내는 셰익스피어의 ‘오쟁이진 남편 담론’은 르네상스 남성들이 공유한 불안감을 재현한 것이다.
 이아고는 교묘한 언변으로 시커먼 속내를 숨기고 있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를 믿고 신뢰했으나, 그는 겉과 속이 다른 표리부동한 인간이다.
 등장인물들은 이아고를 잘못 읽는다.
 “오셀로 : 이아고, 자네가 충성심과 의리 때문에 이 사건을 얼버무려 캐시오의 죄를가볍게 하려한다는 것을 내 다 알고 있다.”(2막 1장)
 극 속의 등장인물은 모르고 있는 것을 관객이 알고 있는 상황을 극적 아이러니라고 한다.
 이 극에서 관객은 이아고가 어떤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할 때 그 본심과 의도를 알지만 다른 등장인물들은 전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이 극에서도 오셀로는 자신의 데스데모나 살해를 마치 제물이라도 바치는 숭고한 의식으로 알지만 관객들은 그것이 우매한 무분별이 부른 살인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인간은 언어를 이용해 서로에게 자신들의 생각과 지식, 정보, 견해를 나누는 의사소통을 한다.
 그러나 교묘한 언어가 지닌 사악하고도 무서운 힘은 독약과 같아 상대의 판단력과 이성을 마비시킨다.
 극 전체에서 이아고의 사악한 언어는 오셀로에게 작용해 그의 판단력을 흐리고 이성을 마비시킨다.
 그는 이아고의 교묘한 언어에 속아 순결한 아내를 부정하다고 믿고 살해한다.
 독사가 내뿜는 독같이 치명적인 그의 언어가 오셀로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을 파멸시킨다.
 브라밴쇼는 오셀로가 뭔가 사악한 요술이나 마약 따위를 써서 데스데모나를 홀려 분별력을 흐려놓았다고 주장한다.
 오셀로가 데스데모나의 마음을 사는 데 쓴 마법은 자신의 인생 이야기였던 것.
 남다르게 연민의 정이 많았던 데스데모나는 오셀로가 아버지 브라밴쇼에게 들려주는 인생이야기와 경험담을 엿들으면서 그가 젊은 시절에 겪은 고난과 수난에 그를 동정해 사랑하게 됐고 오셀로 또한 자신을 동정해주는 데스데모나의 어진 마음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오셀로: 제가 젊어서 겪은 괴로운 시련담은 자주 그녀를 눈물 흘리게 만들었습니다. 제 이야기가 끝나면 그녀는 제 고생에 대해 깊은 한숨을 쉬었고 ‘이상도 해라. 정말 이상도 해라’라든가‘가여워라. 너무 가여워.’라고 말했습니다. 차라리 듣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 말하면서 하나님이 자신도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면 하고 바라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제가 겪은 위험들 때문에 저를 사랑했고 저는 그녀가 그것들을 동정해 주었기 때문에 그녀를 사랑하노라고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사용한 마술입니다.”(1막 3장)
 질투심에 불타는 오셀로와 이아고는 자신들의 상상력을 통해 모든 기호를 아내의 부정을 입증하는 기의로 왜곡 해석한다.
 이 극에서는 질투심이 불러 일으키는 해석의 팽창 현상이 극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오셀로의 성격적 결함과 가부장 문화의 잘못된 여성관이 얽혀 있는 비극이다.
 “아내의 정절에 내 목숨을 걸겠다.”(1막 3장 294)라는 오셀로의 맹세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가부장 사회에서 아내의 순결은 남성의 명예를 지켜주는 요소 중 하나이다. 그래서 데스데모나의 부정을 의심하게 되자 오셀로는 “디아나의 얼굴같이 깨끗하던 나의 이름이 마치 내 얼굴같이 시커멓게 되었다.”라고 한탄한다.
 이 극은 인종차별 담론을 담고 있다고 비난받는 셰익스피어 작품 가운데 하나다.
 브라밴쇼가 오셀로를 마법으로 사람을 홀리는 악마로 보는 데는 그가 흑인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다.
 그리고 “두꺼운 입술”, “시커먼 가슴” 등 외모에 대한 폄하와 “새까만 늙은 염소”, “바바리산 말”과 같이 동물적이고 야만적인 이미지로 묘사하는 표현들도 많다.
 그의 이성이 결국 지나친 질투심이라는 감정에 지배를 당해 동물적 광기를 보이는 플롯도 그런 비난의 대상이 됐다.
 셰익스피어는 남성의 질투 3부작인 ‘오셀로’, ‘겨울이야기’, ‘심벨린’에서 남성들이 아내의 정절을 의심해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단죄를 내리는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세 작품 모두에서 여성들은 순결하나 남성들의 질투심은 광적으로 치달아 결국 아내를 죽음으로 내모는 것.
 아내가 죽음을 맞은 뒤에는 반드시 자책하고 후회하며 그들의 미덕을 찬양하는 것도 공통적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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