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적 삶의 향기 누구에게나 있죠”
  • 이경관기자
“매혹적 삶의 향기 누구에게나 있죠”
  • 이경관기자
  • 승인 2017.02.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명작갤러리서 첫 전시 ‘모과의 반란展’ 허원자 씨
▲ 허원자 씨는 그림을 통해 암의 고통과 어두웠던 마음을 치유했다. 사진은 허 씨의 대표작품.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모과는 울퉁불퉁 못생긴데다 맛조차 시고 떨떠름하다. 그러나 봄이면 연분홍 꽃이 아름답게 피고, 가을이면 향긋한 향기로 마음을 설레게 한다.
모과의 그윽한 향기는 중년을 지나 노년으로 향해가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삶과 닮았다. 얼굴 가득 골골이 주름 패이고서야 그제야 자신을 들여다보는.
여기 40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이며, 며느리로 살다 최근 암이라는 병마를 이겨내고 다시 진정한 삶의 향기를 전하는 사람이 있어 화제다.
포항 명작갤러리에서 ‘모과의 반란’이라는 타이틀로 생애 첫 전시를 열고 있는 아마추어 작가 허원자(61·사진) 씨가 그 주인공. 최근 허 씨를 갤러리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 생애 첫 전시다. 소감은.
 이번 전시는 내게 많은 의미를 지닌다.
 내 나이 올해 환갑이 됐다.
 작품은 나의 내면을 오롯이 담아낸 일기장으로 이렇게 전시해 놓고 보니 그동안의 삶을 돌아볼 수 있어 좋았다.
 내면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낸만큼 부끄럽고 창피하기도 하다.
 아직 많이 부족한 실력이라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그러나 “그동안 잘 살아왔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자리라 스스로도 뿌듯했다.
 
 - 취미로 시작한 미술에 빠지게 된 계기가 있나.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꽤 오랜 세월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어른과 함께 산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것 저것 신경 쓰다보니 자연스레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다.
 그것을 해소할 곳이 필요했다.
 집과 가까운 곳에 있던 공방을 찾아다니며 자수와 다양한 공예 등을 취미로 즐기기 시작했다.
 그것이 서예로 발전했다가 최근에는 도자 페인팅으로 발전하게 됐다.
 취미를 통해 얻은 성취감이 살아가는데 힘이 된 것 같다.
 그림이 내게는 피난처와 같았다.
 도자 페인팅에 큰 애정이 생긴 것은 지난해 4월 폐암 수술을 하면서다.
 폐의 3분의 2를 떼어내야 했다.
 처음 암 선고를 받았을 때, 죽음의 공포로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
 그러나 도자 위에 그림을 그리면서 마음공부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완쾌를 상상하며 긍정의 힘을 갖고 붓을 잡았다.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작업 속에서 통증을 잊을 수 있었다.
 또 머리를 지배하는 복잡한 생각을 내려 놓을 수 있었다.
 나는 그림을 통해 병마 속에 약해진 나를 다독일 수 있었다.
 
 - 전시 타이틀이 ‘모과의 반란’이다. 그 이유는.
 내 별명이 모과다. 모과처럼 내 뒷통수가 울퉁불퉁해 붙여진 별명이다.
 아마추어가 전시를 연다는 것이 사실 그리 쉽지 않았다.
 그러나 환갑을 맞아 인생을 한 번 돌아보고 싶다는 생각과 삶의 제2막을 위해 작지만 큰 인생의 반란을 일으켜보고 싶었다.
 또 늘 못생겼다고 홀대 받던 모과가 진한 향기로 사람들을 매혹하듯 사람도 저마다의 매력이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어 타이틀로 붙이게 됐다.
 
 - 이번 전시에 대해 설명해달라.
 나의 삶이 압축돼 있다고 보면 된다.
 작품 속에는 인생을 살면서 받았던 상처와 암 투병 속에서 느꼈던 공포, 또 그 끝에서 만나게 된 희망, 인생 전반에 많은 영향을 끼친 종교의 긍정적 힘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또 종교를 떠나 수행자의 삶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작품과 종교화합을 통한 평화를 상징하는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작품은 ‘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이렇게 모아 전시함으로써 ‘우리’라는 세계로 확장됐음을 느낄 수 있었다.
 
 - 대표작품에 대해 설명해달라.
 이번 전시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얼굴’이다.
 이 작품에는 나의 어린시절부터, 학창시절, 신혼 때의 모습, 자식들에게 젖을 물리는 모습, 중년의 모습, 투병 기간의 모습 등 세월 속 변해온 내 얼굴이 담겨있다.
 왜 행복은 지나봐야, 그 순간이 행복이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하지 않나.
 나는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그 때가 행복했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얼굴’이라는 작품은 지난 세월 속 행복했던 내 모습에 대한 회고다.
 그래서인지 가장 마음이 많이 가는 작품이다.
 또 다른 작품으로는 타인들의 말로인해 상처를 받은 나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 있다.
 못이나, 지퍼, 자갈 등 직설적인 사물을 그림에 그려 말의 중요성을 각인시켰다.
 직설적인 표현을 선택한 이유는 말로 인한 상처가 그만큼 깊을 수 있다는 것을 선명하게 전하고 싶어서다.
 뒤뚱뒤뚱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펭귄을 그린 작품에도 사연이 있다.
 장애인복지회관에서 지체장애인들이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본 뒤 그린 작품이다.
 음악에 몰두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내는 그들을 보며 삶에 대한 열정과 숭고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미친 불교에 대해 그린 작품에도 애착이간다.
 수행자의 삶을 살아가는 스님들의 뒷모습을 계절별로 그린 그림이나 생노병사를 이야기한 연꽃 그림까지 종교적 색채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을 가만 들여다 보면 그것은 결국 나의 삶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또 우리 모두의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 작품 소재가 도자 타일이다. 작업 방법은.
 머릿 속으로 수많은 스케치를 그린 뒤, 작업 직전에 대강의 구도를 그리고 바로 붓을 잡는다.
 초벌 구워진 도자타일에 물감으로 그림을 그린 뒤, 다시 한 번 더 구워 완성한다.
 그림의 주제는 보통 그날의 생각이나 기분 등을 토대로 ‘수행자의 삶’으로 대변되는 나의 삶을 담아낸다.
 복잡한 그림보다 진솔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 앞으로 계획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나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작품을 이어갈 계획이다.
 또 재료를 다양화할 생각이다.
 특히 기와에 그림과 글씨를 함께 그려 넣는 독특한 기와 작품을 추구해볼 생각이다.
 그림을 그리면서 아픈 것을 잊고 살았다.
 통증이 오면 통증이 시작됐다는 것을 인지하고선 그냥 작업에 매진했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아픔을 잊을 수 있었다.
 앞으로도 그 순간처럼 모든 일에 열정적이고 싶다.
 나는 수술 후 퇴원하면서 ‘덤으로 사는 인생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덤으로 사는 인생 열정적으로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 살고 싶다.
 그렇게 나는 수행자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싶다.
 한편 허원자 씨의 이번 전시는 오는 28일까지 명작갤러리에서 이어진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
  • 경북 포항시 남구 중앙로 66-1번지 경북도민일보
  • 대표전화 : 054-283-8100
  • 팩스 : 054-283-53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모용복 국장
  • 법인명 : 경북도민일보(주)
  • 제호 : 경북도민일보
  • 등록번호 : 경북 가 00003
  • 인터넷 등록번호 : 경북 아 00716
  • 등록일 : 2004-03-24
  • 발행일 : 2004-03-30
  • 발행인 : 박세환
  • 대표이사 : 김찬수
  • 경북도민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북도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HiDominNews@hidomin.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