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가는 사랑의 기쁨을 되찾아 줄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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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져가는 사랑의 기쁨을 되찾아 줄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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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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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일영 포항유스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김일영의 클래식 이야기

[경북도민일보]  △ 피아니스트로 시작해 작곡가로 성공한 슈만
 음악의 심장은 사랑이다! 클래식 음악 역사상 지고지순한 아내에 대한 사랑을 음악으로 표현한 인물이 있는데 그가 바로 독일 낭만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로베르트 슈만(1810~1856)이다.
 슈만은 독일 작센주 츠비카우에서 1810년 태어났다. 아버지는 출판업을 하는 작가로 지식인이었고 어머니는 빈틈없는 완벽주의 성격의 소유자라 어릴 적부터 슈만은 또래아이들보다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다만 외가의 정신병 유전으로 그는 46세의 짧은 생을 살았다.어머니의 권유로 슈만은 나이 7세 때부터 교회 오르간주자로부터 음악교육을 받기 시작해, 11세에는 작곡을 할 수 있어서 음악에 천재적 소질을 보였다. 하지만 그런 천재성을 인정하지 않고 아버지는 아들이 법률가로 성공하기를 원했다. 슈만의 나이 16세 때 아버지가 돌연 사망하고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1828년 법률을 공부하기 위하여 라이프치히 법대에 입학하게 된다. 하지만 슈만은 법률공부보다는 피아노 연습에 더욱 열중하게 되고 이것을 알게 된 어머니는 아버지의 유언대로 음악가의 길을 막아보려고 독일 명문대학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전학 시켜버렸다. 그 후 어머니의 계획과는 달리 그의 인생은 법률가가 아니라 음악가의 길을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는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비크’ 교수가 있었다. 그의 음악적 열정은 비크 교수로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루에 7시간 이상씩 매일 맹연습을 했고 본인 스스로 약지 손가락의 움직임이 만족스럽지 못해 손가락을 끈에 매달아 도르래를 이용해 추를 연결하는 등 상상 이상의 특이한 연습법을 개발할 정도로 매우 강도 높은 연습에 몰입했지만 오히려 손가락이  마비되어 피아노 연주자로서의 꿈은 좌절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작곡과 지휘를 하면서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슈만의 작품은 고전파 작곡가처럼 음악 전반에 걸쳐 작곡을 하는데 그중에서도 많이 작곡한 것은 피아노 독주곡과 가곡이다. 슈만의 대표작품으로는 오페라 지노베나, 교향곡으로는 제1번 봄의 교향곡, 제3번 라인 교향곡이 있고, 피아노곡으로는 피아노 협주곡, 크라이슬레리아나, 사육제, 환상 소곡집, 교향적 연습곡 어린이의 정경, 가곡집으로는 시인의 사랑, 두 사람의 척탄병, 미르테의 꽃 등이 있다.

 △ 사랑으로 음악에 생명을 불어넣은 슈만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피아노 스승 비크 교수의 문하생으로 있을 때에 슈만은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되는데 바로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게 되는 것이었다. 슈만은 비크 교수의 문하생으로 그의 집에서 하숙을 할 때 그의 딸 클라라와 함께 피아노를 배우며 그들의 사랑을 몰래 키웠다.
 클라라는 어릴 적부터 피아노 신동으로 불렸고 9세 때 이미 독일 최고의 음악공연장인 라이프치히의 게반트하우스에서 공식 독주회를 가질 정도로 유명했고 이후 성인이 될 때까지 국제 연주회만 38회에 이르는 당대에도 손꼽히는 명 피아니스트였다. 당대의 문호 괴테, 바이올린연주자 파가니니, 멘델스존, 피아노의 귀재 리스트 등 많은 세계적 예술가들이 클라라의 피아노 연주를 극찬하였고 또한 귀족들의 아낌없는 후원을 받을 만큼 이미 세계적으로 성공한 피아니스트였다.
 비크 교수에게는 이런 딸이 얼마나 자랑스러웠을까? 비크 교수는 금지옥엽, 애지중지 키워온 딸을 손가락 마비로 장래가 불투명한 아직 성공하지 못한 슈만과의 결혼에 대해 당연히 반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클라라 나이 18세 슈만의 나이 27세 때 슈만과 클라라는 결혼을 선포한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피아니스트로 실패하고 작곡가로서는 무명이나 다름없는 가난뱅이 슈만과의 결혼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슈만과 클라라입장에서는 사랑의 결실을 이루기 위해 아버지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결혼을 위해 3년간의 지루한 법적 투쟁까지 하게 된다. 결국 법정의 승리로 결혼의 허가를 받아내고 세기의 결혼을 하게 된다. 결혼 당시에는 온 세상은 클라라가 손해 보는 결혼이라며 안타까워하는 분위기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자신보다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는 슈만을 남편으로 선택하고 그를 인류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작곡가로 성공하게 내조를 한 클라라는 ‘내조의 여왕’이라고 할 수 있다.
 슈만이 작곡한 피아노곡들은 명 피아니스였던 부인 클라라에 의해 초연되어 세상에 알렸고 특히 남편 슈만과 브람스의 곡 해설을 전문적로 하였고 슈만이 정신 질환을 갖으면서도 주옥같은 명작을 만들 수 있게 한 조력자가 바로 부인 클라라 슈만이었다.
 이렇듯 슈만의 성공에는 사랑하는 아내가 있었다. 이를 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정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잘 풀린다’라고 하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은 불변의 진리인가 보다. 필자에게도 헌신적인 사랑하는 아내가 있어서 항상 감사하고 있다. 그래서 필자도 슈만이 그랬던 것처럼 클래식 음악의 심장은 사랑이라고 믿고 있다. 음악은 사랑을 위해 존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음악으로 더욱 행복한 사랑의 삶을 영위할 수 있다.

 △ 슈만의 음악은 지고지순한 사랑의 찬미
 슈만의 음악은 클라라와의 결혼을 전후로 절정을 이루는데, 사랑의 결실로 나타난 슈만의 음악은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애절하고 아름다웠는지 잘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사랑으로 가슴앓이를 하는 분들에게 특별히 슈만의 곡을 몇 개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 소개할 곡은 ‘크라이슬레리아나’ 라는 피아노 독주곡으로 모두 8곡으로 이루어져있다. 이곡은 결혼 2년 전 1838년 부활절에 슈만이 연인이었던 클라라에게 헌정한 곡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루어질 수 없는 클라라와의 사랑에 괴로워하고 있던 슈만이 호프만의 소설  ‘크라이슬레리아나’의 이야기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자신의 사랑이야기를 환상곡으로 작곡했다. ‘크라이슬레리아나’를 감상하노라면, 클라라를 향한 사랑이 얼마나 애절하였나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두 번째로 소개하는 곡은 가곡집 ‘미르테의 꽃’인데, 이것은 1840년 오랜 법적투쟁으로 결혼의 허락을 받으면서 슈만은 가곡집 전반에 걸쳐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의 기쁨과 환희를 표현하였다. 이 가곡집은 괴테 마이런 번즈 하이네 모젠 등과 같은 유명한 시인들의 걸작으로 만들어졌으며 총 26곡으로 이루어져있다. ‘미르테’(Myrthen)는 동양에서 천인화(天人化), 도금양(桃金孃)등으로 번역되었고, 향기 좋은 하얀 꽃이 신부의 장식으로 사용되고 처녀의 순결을 나타낸다. 이 가곡집은 그들의 결혼 직전에 클라라에게 특별한 선물로 헌정되었으며, 이곡을 감상하면 당시 슈만의 클라라에 대한 사랑과 행복한 마음을 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클래식 중에 이곡만큼 신혼부부를 위한 것은 또 없으리라.
 마지막으로 소개할 곡은 교향곡 1번 ‘봄’이다. 이곡의 발표는 그들이 결혼한 후 바로 다음해 1841년 2월에 발표된 대작으로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멘델스존의 지휘로 초연되어 그의 최고 걸작 중에 한곡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곡의 내용은 슈만과 클라라의 사랑의 봄을 애절함, 절실함, 기쁨과 환희의 찬 마음이 교향곡으로 표현되어 당시 슈만이 클라라를 사랑하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잘 알 수 있는 교향곡이 되겠다.
 밥을 먹어도 뭔가 양념이 빠진 것 같고, 음료수를 마셔도 항상 갈증이 난다고 느끼면 그것은 우리의 삶에 ‘사랑’의 열정이 식어버렸기 때문일지 모른다. 무미건조한 일상이 나의 체온을 식히고 기쁜 일에도 기뻐하지 못하고 슬픈 일에도 울음이 나오지 않는다면 슈만의 음악을 들으시라 권한다. 슈만, 그는 잊혀져가는 사랑의 기쁨을 우리에게 다시 찾게 해 줄 감동의 소리를 선물하고 있다. 사랑 없는 음악을 상상할 수 없듯 슈만의 사랑 노래를 모르고서는 클래식 음악이 주는 감동을 맛보지 못한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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