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답게 살게 했던 ‘문화’ … 뿌리를 찾아서
  • 이경관기자
인간답게 살게 했던 ‘문화’ … 뿌리를 찾아서
  • 이경관기자
  • 승인 2017.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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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득 포항문화연구소장
▲ 박이득 포항문화연구소장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이경관 기자의 문화피플

 원로(元老)는 그 자체로 살아있는 한 권의 역사서다.
 그들은 역사의 현장 굽이마다 두 발로 오롯이 서 있었다.
 우리는 몸과 마음으로 삶의 지혜를 채득한 그들에게 앞으로 가야 할 길에 대해 묻는다.
 한국전쟁 그 난리통 속,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문화’가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지역문화의 기틀을 잡았던 이명석, 한흑구, 박영달 선생이다.
 그들의 뜻을 오롯이 기억하면서 그 정신을 이어가고자 노력하는 지역문화 원로가 있다.
 박이득 포항문화연구소장이 그 주인공.
 최근 박 소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최근 근황은.
 “포항문화의 기틀을 잡았던, 그 시절에 대한 원고 작업을 하고 있다. 그 때의 회고는 나 또한 그 시절로 돌아가는 듯한 설렘을 가져다준다. 이번 작업은 포항문화원에서 주축으로 진행하는데 책과 함께 e북으로도 출간될 예정이다.”
 
 -포항문화원 부설 포항문화연구소의 소장을 맡고 있다. 포항문화연구소는 어떤 곳인가.
 “현대지역문화는 향토사뿐 아니라, 다양한 지역문화의 경계가 겹치고 겹쳐 생겼다. 그 만큼 스펙트럼이 넓다. 때문에 향토사에서 한 차원 뛰어 넘는, 깊이감 있는 연구가 필요했다. 포항문화원은 지역문화의 뿌리를 찾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에 문화원 부설로 10여명의 문인과 향토학자, 교수 등이 모여 포항문화연구소를 창립했다. 포항문화연구소는 포항지역 문화의 원형을 찾기 위한 다양한 심포지엄과 논의를 여는 등 지역문화 뿌리 찾기에 매진하고 있다.”
 
 -지역문화의 뿌리 찾기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그 이유가 있나.

 “모든 뿌리는 어머니와 같다. 그 뿌리에서 뻗어나오는 자양분으로 성장하지 않나. 지역문화계 부흥기를 모두 지켜봤던 내 입장에서는 그때를 이끌어왔던 많은 선생들이 포항지역 문화의 어머니고 아버지였다. 그 사랑이 모여 오늘날의 지역문화가 됐다. 그러니 지역문화의 뿌리 찾기가 얼마나 중요하겠나. 두 세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포항문화의 뿌리는 대체 뭔가.
 “포항문화는 해방과 전쟁으로 먹고 살기도 바빴던 그 때, ‘문화를 통해 인간다움을 실현해야 한다’는 철학과 마음이 모여 탄생됐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포항지역문화는 ‘빈곤 속 피어났던 희망’이었다. 그 중심에는 이명석, 한흑구, 박영달 선생이 있었다. 또 지역역사를 처음 정리한 박일천 선생을 비롯 지역교육 발전을 위해 온 힘을 다한 하태환, 김용주 선생이 있다.
 먼저 지역문화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재생 이명석 선생은 포항문화와 지역문학 발전에 기여한 ‘인간 상록수’다. 가난과 궁핍으로 먹고 살기도 힘들 때 재생은 이미 문화의 중요성을 깨닫고 늘 동분서주했다. 전쟁고아와 소외이웃을 돌아보며 선린애육원 설립과 같은 복지사업에도 앞장섰다. 특히 그는 문화예술단체가 전무했던 포항에 문화원을 설립했고, 포항예총의 전신인 포항문화협회를 설립, 초대회장을 지냈다. 또 지역 최초의 문화제인 포항항 개항제를 개최했으며 포항시민헌장을 기초하는 등 지역문화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1948년즈음 포항에 정착한 한흑구 선생은 ‘보리’, ‘나무’, ‘노목을 우러러’, ‘닭울음’ 등으로 대표되는 근대한국문학 수필의 대가다. 스무살 때 도미해 시카고 노스파크대학에서 영문학을, 템플대학에서 신문학을 전공한 수재였다. 흑구는 포항에 주둔해 있던 미 공군 통역관으로 일하면서 전란에 폐허가 된 포항여고 교정 복구, 애육시설 확보 등에 힘썼고 1958~1974년 정년퇴임 때까지 포항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푸른 바다가 넘실대는 영일만과 형산강변을 사랑했던 ‘동해의 사색가’였다. 평생을 겸손으로 살아온 흑구는 포항을 소재로 아름다움의 진실을 추구하며 한국 수필문학이 창작 문학의 본령으로 자리를 굳히는 데 크게 기여했다.
 추당 박영달 선생은 1938년 대구지역 한 신문사 포항주재 기자로 부임한 이후 우리나라 사진예술에 큰 발자취를 남긴 것은 물론 지역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많은 공헌을 했다. 그는 국제사진공모전에서도 입상하면서 사진예술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추당은 사진이 가진 조형성과 사실성은 물론 회화성과 문학성까지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재생과 흑구 등과 교류하며 지역문화의 기반을 다졌다. 그가 1952~1966년까지 운영했던 ‘청포도 다방’은 지역 문화예술의 사랑방 역할과 함께 시민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일명 ‘청포도 살롱시대’라 불렸던 그 시대는 포항의 르네상스로 미술과 문학, 음악, 사진 등 다양한 문화가 뿌리내렸던 토양이었다.
 포항문화는 지역문학 발전으로 그 계보를 이을 수 있다. 한흑구, 빈남수, 손춘익, 박이득이 활동했던 1970년대가 ‘아름다운 4인 문학시대’로 지역문학이 활발히 꽃피웠던 시절이었다. 현재는 김일광 작가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지역문화의 성장을 지켜본 나와 김삼일 등은 선생들의 그 정신을 후대가 기억하고 이어갈 수 있도록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생각이다.”
 
 -포항문화의 현주소는.
 “문화는 미래산업의 주역으로 본질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현대 지역문화를 보면 그 본질이 많이 사라진듯해 아쉬움이 크다. 먼저 지역상징 설치물이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명분과 예술성 없이 세워진 설치물은 관광객을 비롯 지역민들에게 나쁜 인상을 심어줄 뿐이다.
 포항은 해양문화의 보고다. 이 때문에 해양역사문화역사관 등 지역문화의 정체성을 알 수 있는 공간이 설립돼야 한다. 또 독도와 울릉도를 포항이 안아야 한다. 구획상으로도 한 몸이지만, 그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우리 포항이 독도와 울릉도의 어미가 돼야 한다. 그 일환으로 포항에 독도기념관과 같은 공간이 설립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우리문화의 정체성인 연오랑 세오녀 설화의 ‘개척정신’ 계승과 어머니의 강인 형산강에 은어와 연어가 다시 올 수 있도록 복원돼야 한다.
 이러한 과제들을 우리 모두 함께 성실히 수행할 때 포항문화 제2의 르네상스가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올해 출범한 포항문화재단이 지역성을 올바로 지켜내줬으면 한다. 지역문화의 가치를 바로 알고, 그것을 발전시켜 나갈 때 지역문화는 한 걸음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문화가 중심이 된 재단의 모습을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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