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이 오면 25일 그날을 되돌아 본다
  • 경북도민일보
6월이 오면 25일 그날을 되돌아 본다
  • 경북도민일보
  • 승인 2006.06.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옥근 의학박사
 
 필자는 우리의 삼팔선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대교의 최대의 성지인 제 2성전의 마지막 유적지인 `통곡의 벽’ 이라 부르고 싶다.
 우리 민족의 허리를 잘라 38선을 억지로 묶어놓은 대략은 이러했다.
 해방도 채 되기 전인 1943년 12월 카이로 선언에서 `조선’ 의 독립을 보장하였다. 이어 다시 1945년 7월의 포츠담 선언에서 재확인 되었다.
 한반도는 38선을 경계로 미·소 양군에 의하여 분할 점령 되었다.
 1947년 9월에 미국은 소련의 반대를 뿌리치고 한국 문제를 일방적으로 유엔에 제기 하였다.
 미·소에 의하여 잠정적인 군사 분계선이었던 38선은 이제 남북한이 각각 별개의 정부를 수립함으로써 국경 아닌 국경선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한 분할 독립 과정에서 우선 북한은 소련에 의한 계획적인 군사력 증강에 박차를 가하며 1948년 10월에 소련연합군이 철수할 때까지 이미 완전무장 4개 보병 사단과 소련제 T-34 중형전차로 장비한 제 105 기갑대대가 편성되었다. 또 중공과 상호 방위조약을 체결하여 중국 공산군에 있던 조선군 2만 5000명이 북한에 인도됨으로 10개 사단 13만 명이 38선에 배치되었고 10만 명의 예비군 까지 후방조직이 완료되어 무력통일을 구상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침략 계획을 은폐하기 위하여 북한 공산군은 남북통일 최고 입법 회의의 서울개최, 남북국회에 의한 통일 정부수립을 주창하는 등 평화 공세를 벌렸다.
 한편 남한에서는 1946년 1월에 미군정 산하의 국방 경비대와 해안 경비대는 1948년 8월에 정부가 수립되면서 각각 육, 해, 공군으로 개편되었고 그 병력은 약 10만에 이르렀다. 그러나 남한의 군사력은 보병과 군사장비 등은 침략 채비를 끝낸 북한의 군사력에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너무 열악한 상태였다.
 더구나 우리는 예비군도 없이 8개 사단 중 4개 사단은 38도 선으로부터 먼 후방에 배치되어 당시 공산 게릴라 잔당 소탕에 여념이 없었다.
 이 때를 노려 북한 공산당은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38선을 넘어 전면 남침을 개시하였다. 왜 필자는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는 동족의 상잔인 6.25전사를 들먹이고 이 민족의 애사(哀史) 를 반추 하겠는가.
 올해 6월 25일도 전쟁이 발발한 그날처럼 일요일이다. 국군묘지에는 북한 공산당의 남침으로 아들과 남편을 잃은 유가족들의 참배가 줄을 잇는다.
 6.25 상흔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도 엊그제 6.15 광주 민족통일 대축전 행사에 참석한 북측 민간대표 단장은 민족 앞에 죄 의식은 전연 없는 모습이다. “한나라당이 집권 하면 6.15가 날아가고 온 나라가 전쟁의 화염에 휩싸일 것이라” 는 망언을 공공연하게 지껄이는 형국에 처했다. 과연 우리 남측 대표가 북한에 가서 그런 소리를 하고 제대로 귀향할 수 있을까. 참으로 통탄할만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세태를 맞아 우리 모두가 다시 정신을 바짝차려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6.25 전쟁 3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전쟁에서 온 나라는 초토화 됐다. 400만 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북한 공산당의 총뿌리에 희생됐고, 수많은 피란민이 배를 굶주리며 초근목피로 뼈아픈 삶을 살아야 하지 않았던가.  엊그제 어느 TV화면에 6.25때 전사한 한 군인의 유골 옆에 수통에 물이 아직도 반쯤 남아 있었다는뉴스를 보았다. 6.25 전쟁때 필자는 초등학교 4학년 이었다. 내고향 섬지방에서도 학도병에 끌려가 사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 올 때 마다, 어른들이 어린 나를 보면서“저 녀석들까지 끌려 갈 때가 되면 이 나라는 끝장이 날 것이다”고 한 말을 지금도 기억한다. 우리에게 6.25는 이처럼 얼마나 많은 상흔을 안겨주었으며 문화와 인간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는가. 요즘 관객 1000만 이상을 기록한 영화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등은 6.25 민족상잔으로 생겨난 작품들이다.
 원래 우리 국민은 은근과 끈기 있는 평온한 정서를 가졌다. `주요섭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아네모네마담, 이상화의 `나의 침실로’ 같은`은근살짝’ 정이 넘치는 문화는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다. 모든 것이 획일문화요 좌향좌, 우향우다. 이제 이 지구상에 민족이 분단돼 철책선 하나를 놓고 대립해 살고 있는 곳은 우리나라 한 곳밖에 남지 않았다. 쌀주고 비료주고 달라는 것 모두 아낌없이 주고서도 핵폭탄,미사일 발사 협박속에 살고 있는 우리 현실이 너무 답답한 것같은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 통일이 될때까지 이땅에 살면서 우리가 지불해야 할 이자(利子)는 얼마나 될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
  • 경북 포항시 남구 중앙로 66-1번지 경북도민일보
  • 대표전화 : 054-283-8100
  • 팩스 : 054-283-53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모용복 국장
  • 법인명 : 경북도민일보(주)
  • 제호 : 경북도민일보
  • 등록번호 : 경북 가 00003
  • 인터넷 등록번호 : 경북 아 00716
  • 등록일 : 2004-03-24
  • 발행일 : 2004-03-30
  • 발행인 : 박세환
  • 대표이사 : 김찬수
  • 경북도민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북도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HiDominNews@hidomin.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