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모차르트’ 근대 프랑스 음악의 근간 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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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모차르트’ 근대 프랑스 음악의 근간 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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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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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작곡가 ‘카미유 생상’
▲ 김일영 포항유스필하모닉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경북도민일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대회가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평창올림픽 중에서 우리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이는 바로 성화를 밝힌 피겨스케이팅의 여왕 김연아 일 것이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그녀는 2008-2009년 시즌 세계선수권대회 우승과 세계신기록을 달성했는데, 김연아가 선택한 음악은 프랑스의 천재 작곡가 ‘카미유 생상’의 ‘죽음의 무도’라는 작품이다.
 당시 김연아로 인해 클래식음악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생상’을 알게 되었고 ‘죽음의 무도’역시 우리에게 친숙한 곡이 되었다. 오늘은 모차르트에 버금가는 프랑스의 천재 작곡자 ‘카미유 생상’의 삶과 음악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프랑스의 천재 음악가 생상
 카미유 생상은 1835년 10월 9일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공무원이었고 어머니는 수채화를 잘 그리는 아마추어 화가였다. 생상은 이 부부의 외동아들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생상의 아버지는 생상이 세례를 받은지 두 달 만에 폐결핵으로 일찍 사망하고 만다. 생계의 위기에도 다행히 부유한 고모가 있어 생상은 큰 어려움이 없이 자랄 수가 있었다. 생상의 고모는 피아노를 아주 잘 치는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였기에 생상은 유아기 때부터 피아노와 가깝게 생활하게 되었다. 이렇게 음악적으로 친근한 환경에서 생상은 성장하면서 음악사에 길이 남는 세기의 작곡자가 대성할 수 있게 되었으니 고모의 덕이 참으로 크다고 하겠다.
 고모는 생상이 3살이 되기 전 절대음감을 갖게 된 생상의 재능을 제일 먼저 알아보고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당시 3살 때 생상은 글을 읽고 쓸 줄 알았으며 첫 작곡도 했다고 한다. 세기적 천재작곡가 모차르트에 비해 2년이 빨랐으니 프랑스에서는 그를 모차르트와 같은 신동으로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7세 때는 라틴어를 읽고 해독할 수 있었고 과학과 식물학에 관심이 있어 여러 가지 표본을 만들어 논문도 작성했고, 프랑스 천문학 회원이 되어 점성술과 고고학에도 전문가 수준으로 조예가 깊었다. 10세 전후로 시집을 출판하고 연극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10세의 어린나이에 생상이 정식 피아니스트로 데뷔할 때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가 성인연주가들이 연주하기도 어려운 곡들만 모아 연주하자 객석에서 앙코르라는 환호와 갈채가 쏟아졌다. 이때 생상이 앙코르 연주를 하기 전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총32곡 중에서 아무곡이나 골라 신청해주면 그 곡을 앙코르로 연주하겠다!”라고 관객들에게 당돌하게 제안했다고 한다. 그리고 곧장 그는 신청하는 곡마다 하나도 틀림없이 정확하게 연주했다고 한다. 이런 일이 있은 후로부터는 생상을 프랑스의 모차르트라고 사람들은 칭송하였다고 한다.
 그 어떤 천재적인 피아니스트가 베토벤의 소나타 전 작품을 악보 없이 연주할 수 있을까? 단언컨대 생상이나 모차르트가 아닌 이상 아무도 없을 것이다. 소나타 한곡의 구성은 4개의 악장으로 되어있는데 모두 연주하는 시간은 대략 25~30분이 넘는다. 이런 곡 32개의 악보를 모두 암기하고 있다 것은 실로 대단한 것임은 분명하다. 이렇듯 그의 10세 전후의 행적만 보아도 그가 비범한 천재적 인물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

 19세기는 비르투오소(예술적 기교가 뛰어난 사람) 바이올리니스트들의 전성기였다고 할 수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가 전 유럽을 매료시킨 이후, 파가니니의 테크닉을 모방한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유럽 각지에서 출현하기 시작했다. 폴란드에서는 비니야프스키, 벨기에에서는 비외탕과 이자이, 그리고 스페인에서는 ‘사라사테’라는 우리에게는 친숙한 ‘찌고이네르 바이젠’(집시의 노래)을 작곡한 연주자가 나타났다.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이들은 지금의 톱스타와 같은 인기를 누렸고, 막대한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었다.
 생상은 24살 때 사라사테를 처음 만났다. 그의 나이 15세 때 일이다. 생상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그는 봄날처럼 신선하고 앳된 모습이었다. 그는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쉬운 말인 듯 건네었다, 내게 바이올린 협주곡을 좀 써주시지 않겠어요?” 아마도 생상은 어린 청년이었던 천재 바이올린 연주자 사라사테가 자신에게 다가와 당돌하게도 협주곡 하나를 써 달라고 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당시 사라사테의 연주에 감동한 잘나가던 전 유럽의 작곡가들은 앞 다투어 ‘사라사테’에게 곡을 헌정할 정도였는데, 랄로는 ‘스페인 교향곡’을, 브루흐는 ‘바이올린 협주곡’을, 그리고 생상 역시도 바이올린 협주곡인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를 헌정했다.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무엇인가 이야기가 있을법한 서주로부터 시작해서 생상 특유의 우아함이 있고 화려한 테크닉의 구성으로 마지막까지 연주된다. ‘사라사테’를 위한 곡이라 화려한 바이올린의 기교가 ‘사라사테’를 연상시키듯 이 작품 곳곳에 가미되어있을 뿐 아니라 생상의 특별한 프랑스적인 풍으로 만든 이곡은 오늘날에도 수많은 연주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연주되고 있는 바이올린 명곡 중의 명곡이라 할 수 있다.
 생상은 119곡에 달하는 가곡과 스케일 큰 종교 곡에서도 탁월한 능력과 혁신을 이룬 바 있고, 프랑스 바로크 시대의 음악을 발굴, 연구, 편집하여 근대 프랑스 음악의 근간을 확립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생상은 프랑스 후기 낭만주의 최고의 작곡자이고 그는 어려서부터 모차르트에 비교되는 천재라고 불렸다. 그는 음악적 업적을 많이 남겼고 오늘날까지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인물이 되었다.
 
 △가족을 잃은 슬픔, 여행과 작곡으로 치유하다
 생상은 40세가 되던 해에 어머니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20살 연하인 ‘마리 로르 트뤼포’와 결혼을 한다. 그의 어머니는 평생을 아들만 바라보고 살아온 사람이라 아들에 대한 집착은 실로 대단했다.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소유욕에도 불구하고 생상은 마리와 결혼을 하여 2명의 자녀를 두었다.
 가정의 안정 속에 장편 오페라 ‘삼손과 델릴라’가 초연이 되어 큰 성공을 거두고 여느 가정집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될 즈음에 생상의 가정에 불행이 닥쳤다. 3세 된 둘째 아들이 창문에서 떨어져서 사망했고 연이어 6주 뒤에 첫째 아들이 갑작스러운 병으로 사망하게 된 것이다. 이 어찌 황망하기 그지없는 일이 아닌가? 생상은 몇 주 만에 두 아들을 잃고 그 충격과 상실감으로 결국 부인과 별거를 하고 가정은 파탄되고 만다. 그리고 몇 년 뒤 어머니마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두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아버지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채로 어머니까지 보내야 했으니 그 얼마나 그에게는 인생이 허무하고 의미가 없었을까?
 그는 끝내 그의 불행을 극복하지 못하고 모든 음악활동을 포기하고 차를 몰아 프랑스를 떠나 정처 없는 방황을 시작했다. 혹여 누가 자신을 알아볼까봐 ‘생느와’라는 가명까지 쓰며 떠돌아 다녔다.
 그는 죽기 전까지 유럽전역 뿐만 아니라 북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남미를 거쳐 전 세계 27개국을 여행하였으며 총 179번의 여행을 하며 마음의 상처를 치유했는데 여행 중에 감상했던 이국적인 풍경이 그의 작품 소재가 된 것 뿐만 아니라 그의 재기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그의 작품 중 ‘아프리카’ 피아노협주곡 5번 ‘이집트’를 감상해 보면 그의 심리적 상황이 잘 표현되어있는데 특히 생상의 대표작품으로 유명해진 ‘동물의 사육제’도 오스트리아를 여행 하면서 한 시골마을에서의 동물사육제를 보고 영감을 얻어 작곡했고 그의 아들들을 생각하며 상처받은 마음을 달랜 작품이 되었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여행을 하였는데 1921년에 떠난 아프리카 알제리 여행이 생상의 마지막 여행이 되었다.
 두 아들을 잃고 생상은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았다. 어린나이에 천국으로 떠난 두 아들을 그리워하며 ‘동물의 사육제’를 작곡한 심정을 느껴본다면 ‘아버지’라는 위대한 의미를 생상의 음악을 통해 감동의 여운으로 메마른 우리의 삶을 촉촉이 적셔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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