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에도 ‘뷰티풀 마인드’ 전용 주차공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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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에도 ‘뷰티풀 마인드’ 전용 주차공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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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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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경북도민일보 = 뉴스1]  미국 버클리대 교정에는 파란색으로 ‘노벨상 수상자 전용’이라고 표시된 주차공간들이 있다. 노벨상 수상자만 주차할 수 있고 아닌 사람이 주차하면 딱지를 뗀다. 캠퍼스에 모두 8개가 있다. 물리학과 건물에 다섯 개, 화학과에 두 개, 경제학과에 한 개다. 198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였던 체슬라브 밀로즈가 처음 학교에 요청했고 학교는 수락했다. 인근 스탠퍼드대에 있는 노벨상 수상자들이 열받았다고 한다.
 교수직이 그렇듯이 전용주차도 평생이다. 그것도 무료다. 보통 미국 대학 캠퍼스에 전용주차하려면 1년에 1500달러를 내야 한다. 그것도 매년 갱신해야 한다고 한다. 다른 학교로 옮기거나 ‘무슨 일이 생기면’ 만료다. 기간 만료된 주차증을 붙이고 주차하면 어김없이 딱지를 떼인다. 2009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올리버 윌리엄슨 경제학과 교수가 주차증을 힘들게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수상자들은 대개 노교수들이다) 총장이 부랴부랴 직접 손으로 쓴 임시 주차증을 발급한 일도 있다.
 론 하워드 감독이 연출한 2001년작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최고 장면은 거의 마지막 부분에 나온다. 노벨위원회에서 프린스턴대에 사람을 보내 존 내쉬 교수를 만난다. 보통 수상자가 결정되면 본인에게 직접 통보하는 것이 관례지만 평생 조현병으로 고통을 받았던 내쉬의 경우는 특별한 사례라 미리 확인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교수회관에서 노벨위원회 사람과 같이 차를 마시던 내쉬에게 주위에 있던 동료 교수들이 한 사람씩 다가와서 자기가 쓰는 펜을 테이블에 놓으며 대학자에게 존경을 표하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이 장면은 허구다. 그러나 감동적이다. 대학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광경이기 때문이다. 학문적 업적과 동료들의 존경이다. 보통 두 번째가 더 어렵다.

 내쉬는 게임이론에 관한 공로로 1994년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내쉬는 프린스턴대학에서 ‘파인 홀의 유령’이라고 불렸다. 파인 홀은 수학과가 있는 건물이다. 한밤중에 건물안을 그림자처럼 배회하면서 수수께끼 같은 방정식을 칠판에 끄적거리는 것 같은 기행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그대로다.
 교수들 사이에서 도는 농담이 있다. ‘교수에는 두 종류가 있다. 이상한 교수와 아주 이상한 교수’ 일부 교수들이 좀 이상해 보이는 이유는 마음이 자유롭기 때문이다. 대학교 때 위상수학을 가르쳤던 교수님은 “수학의 본질은 그 자유성에 있다”고 우리를 가르치셨다. 법칙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고가 우선이라는 의미다. 다른 모든 학문도 마찬가지다. 자유로운 마음은 종종 특이한 행동으로 표출된다. 그 교수님은 강의를 하면서 담배를 피우셨다. 왼손에 담배, 오른손에 분필. 모든 대 학자들이 내쉬와 같이 특이한 사람들은 아니지만 학교는 교수들이 학교 건물 안의 유령이 되더라도 자유로운 마음을 유지할 수 있도록 생활과 연구를 지원해야 할 것이다.
 서울대가 언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할지는 모른다. 그래도 전용 주차공간 하나를 본부 건물 앞에 마련해서 첫번째 수상자를 기다리게 해 보는 것은 어떨까. 서울대가 노벨상에 연연하는 모습으로 비쳐 좀 애처롭게 보이고 기약 없이 비어있는 모양이 쓸쓸하기는 하겠지만 우리 학계와 서울대의 현주소를 상징해 준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내쉬와 내쉬의 평생 반려자·동반자였던 부인 알리샤 내쉬는 2015년에 자동차 사고로 같이 영면했다. 86세, 82세였다. 노르웨이 정부가 수여하는 아벨상을 수상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아벨상은 필드메달과 함께 수학 분야 최고의 상이다. 타고 가던 택시가 고속도로에서 다른 차를 추월하던 중에 균형을 잃었다. 내쉬 부부는 1957년에 결혼, 1963년에 이혼, 그리고 38년 후인 2001년에 다시 결혼했었다. 그리고 한날한시에 같이 세상을 떴으니 불행 중 위안이다. 영화에서 내쉬역을 했던 러셀 크로우는 트위터에 “뷰티풀 파트너십. 뷰티풀 마인드. 뷰티풀 하트”라는 조사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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