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 재즈 그리고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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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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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조던의‘Magic Touch’를 들으며
▲ 오성은 작가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경북도민일보] △Magic Touch
스탠리 조던은 80년대 뉴욕 재즈의 대명사인 블루노트에 진입한 이후 발매한 첫 앨범의 첫 트랙을 비틀즈의 Eleanor Rigby(엘리노어 릭비)로 선택한다. 폴 매카트니의 무던한 목소리와 스트링 섹션의 단조 텐션은 무명의 재즈 기타리스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조던은 편곡과정에서 매카트니의 목소리와 스트링 섹션, 그리고 이 노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가사를 지워버린다. 대신 자신의 기타와 열 손가락만으로 구성된 대체 불가능한 연주를 펼쳐낸다. <Magic Touch>라는 자신만만한 앨범 타이틀에 의심을 가진 관객과 기자들은 두 눈으로 그의 연주를 확인하기 위해 몰려든다. 조던은 기타라는 악기가 왼손으로 운지를 하고 오른손으로는 스트로크나 아르페지오를 한다는 상식을 뒤엎어버린다. 그의 열손가락은 길고 좁은 기타 넥 위에 가지런히 올라가 있다. 스탠리 조던은 지하의 재즈바에 모인 관객 앞에서 모자 안에 숨어있는 토끼를 꺼내듯 조심스럽고도 비밀스러운 마술을 선보인다.
△음과 음 사이
이보다 자신에 찬 표정이 있을까. 그는 자신의 열 손가락을 기타 넥 위에 올리고 마치 피아노를 치듯 현을 누르는 태핑 주법으로 현란한 연주를 펼친다. 어느 순간부터는 스탠드에 세워진 또 하나의 기타로 다가가서 두 개의 기타를 동시에 연주하기 시작한다. 왼손으로는 안고 있는 기타의 베이스 라인을 치고, 오른손으로는 또 다른 기타를 누르며 멜로디를 연주한다. 그는 혼자 기타를 치지만 동시에 풀 밴드의 사운드를 구연한다. 연주는 점점 빨라진다. 열 손가락은 음과 음 사이의 이동시간을 단축시킨다. 현란한 퍼포먼스와 절묘한 화음으로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프렛보드 위로 음표들이 흐른다. 그의 연주는 휘몰아치는 파도처럼 강렬하지는 않다. 차라리 잔물결에 가깝다. 멜로디 사이사이를 미끄러지는 음들은 한낮의 꿈처럼 흐릿하면서도 아련하다.

음과 음 사이의 순간, 음이 비는 그 공허 속에서 재즈는 완성된다. 하지만 스탠리 조던의 연주는 결코 공백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는 무대를 가득 채우기 위해 어깨를 움츠린 채 손가락을 쉴 새 없이 움직인다. 그의 연주가 빨라지고 음폭이 넓어질수록 관객이 느낄 공허의 시간은 줄어든다. 그는 단 1초의 여운도 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연주가 끝나는 순간, 그가 손가락을 내리고 비로소 긴장된 어깨에 힘을 푸는 순간, 관객은 블루지한 여백을 만끽하게 된다. 재즈의 결정적인 아름다움은 연주를 마친 그 지점에서 찾아온다. 기타는 그의 몸과 다름없다. 그는 자신의 몸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는 중이다. 모자 안에 숨겨둔 음표를 내보이려는 듯 마술이 펼쳐지는 것이다.
△마술, 재즈 그리고 기타
어머니의 권유로 클래식 피아노를 치던 어린 조던은 지미 핸드릭스에게 경도되어 기타를 잡는다. 기타를 거꾸로 들고 넥을 구부리고 무대 위에서 자유롭게 뛰어노는 핸드릭스는 조던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블루스, 알앤비 등 무엇이든 표출하고 싶던 11살의 조던은 풍부한 사운드를 연출하기 위해 피아노와 기타를 접목시킬 방법을 찾아 나선다. 그것은 재즈라는 신세계에 발을 디디는 계기가 되었고, 태핑 주법이라는 마술을 이용해 오케스트라적인 특색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혼자서 두세 명의 몫을 해내는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아이 같은 미소가 슬그머니 비쳐든다.
그는 무대에 도착할 때까지 자신이 꾸려나갈 연주에 대해 혹은 퍼포먼스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즉석에서 이뤄진다. 그가 딛는 발끝에서, 흔드는 고개와 몸짓에서, 손가락이 즉흥적으로 만들어내는 음표의 축제 속에서 재즈가 자아낼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하고 있다. 어쩌면 재즈란 높은 절벽 위에서 번지 점프를 하는 것이다. 끊어지지 않는 고무줄을 허리에 매달고 죽음을 잠시 맛보는 것이다. 육신은 중력에 못 이겨 아래로 추락하지만 극점에 도달한 이후로 다시금 치솟아 오르기 마련이다. 저 멀리 나아간 음들이 정상 궤도로 돌아오는 마술을 스탠리 조던은 연주하고 있다. 되돌아온 음들은 이탈하기 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들린다. 끝 간 데 없이 나아간 음들의 화려한 회귀야말로 우리가 재즈라고 부르는 어떤 마술이지 않을까. 이젠 신화가 되어버린 젊은 기타리스트의 연주는 지금도 유효하다. 그것이야 말로 진짜 마술이며 진짜 재즈라는 것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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