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의 두 집 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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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의 두 집 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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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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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록 미래에셋 은퇴연구소장

[경북도민일보 = 뉴스1] 혼자 산에서 생활하는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을 보다가 아내에게 혼자 자는 것만 무섭지 않으면 나도 저렇게 살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따라 갈 마음 추호도 없으니 혼자 자연인 하든지 마음대로 하세요”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정작 노후에 얼마의 돈을 벌어야겠다는 재무적 이슈는 부부간 의견차가 크지 않지만, 주거, 부모봉양, 자녀교육과 같은 비재무적 이슈에 대해서는 인식차가 큽니다. 비재무적 인식차를 줄이는 게 중요한 이유입니다. 은퇴 후의 주거에 대해서는 특히 그러합니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가 2012년에 서울 및 신도시(일산, 분당)에 사는 30~49세 부부가구 400쌍(800명)에게 은퇴 후 살고 싶은 곳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400쌍 부부 중 80%는 은퇴 후에 주거를 옮길 계획이 있다고 답했습니다만, 이주지역에 대해서는 그중 절반의 부부가 다른 의견을 보였습니다. 다른 견해를 보인 부부의 특징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첫째, 남편은 비교적 전원생활이 용이한 서울근교에 살고 싶다는 비중이 46%, 지방 중소도시(시골)로 가고 싶다는 비중이 29%로 이 둘을 합치면 75%에 이르렀습니다. 반면에 서울과 신도시에 살고 싶다는 비중은 17%에 불과했습니다. 아내는 이와 정반대입니다. 아내는 서울과 신도시의 비중이 52%인 반면에 서울근교는 27%이고 지방 중소도시 비중은 8%에 불과했습니다.
둘째, 주택 유형을 보면, 남편은 전원주택에 대한 선호(51%)가 가장 높은 반면에 아내는 아파트를 가장 많이 선호(45%)했습니다. 단독주택과 빌라에 대한 선호는 각각 24%와 21%로 비슷했습니다. 특이한 것은 실버타운은 거의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택 유형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는 부부는 남편이 아파트를 선호하거나 아내가 전원주택을 선호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결과가 나오는 이유는 주거에 대한 남녀간 효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은퇴 후 주거공간이 갖추어야 할 조건으로 ‘공기 좋고 한적한 곳’, ‘야외의 여유로움’, ‘소일거리가 있는 곳’을 들고 있습니다. 서울근교 아파트가 싫은 이유는 갇혀서 할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바다나 산도 보고 산책을 하면서 텃밭을 가꾸고 싶은 곳을 찾습니다. 남자의 사냥본능, 농사본능이 있기 때문인 듯합니다.
반면, 아내가 생각하는 은퇴 후 주거공간 조건은 다릅니다.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서울진입 1시간 내’, ‘문화·레저·병원·편의시설’, ‘친구모임·쇼핑 가능’입니다. 덧붙이면 자녀 집에서 너무 멀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도 들어갑니다. 전원주택이 싫은 이유는 방범, 주택관리, 벌레 등이 있습니다. 진주에 살고 있는 형수님은 서울에 한번씩 올라오면 가슴이 확 트인다고 합니다. 남자들은 시골에 내려가면 가슴이 트인다고 하니 다르긴 다른가 봅니다.

주거에 대해 의견이 다를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요즘 50대 여자들은 남편이 다른 지역으로 근무지를 옮겨서 한 달에 두세 번 집에 들르면 전생의 복이라고 합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에도 남편이 지방으로 근무지를 옮기고 나자 부인의 얼굴이 활짝 피었습니다. 실제로 제 아내를 만나면 새 인생이라는 말을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보편적 현상입니다. 아내는 남편과 적은 시간을 보내고 밖에서 자유롭게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합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남편의 56%가 은퇴 후에 하루의 절반 이상을 아내와 함께 하고 싶어 하지만 그러기를 원하는 아내의 비중은 2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은퇴 후 주거는 ‘따로 또 같이’를 시도해보면 어떨까요? 수년 전에 60대의 저명인사께서 고민을 하나 이야기했습니다. 사연인즉, 시골에 전원주택을 마련하게 되었는데 아내는 절대 따라가지 않겠다는 겁니다. 저는 오히려 잘 된 일일지도 모른다고 답을 해드렸습니다. 아내 분을 좀 더 자유롭게 해드릴 뿐 아니라, 매일 둘이서 오랜 시간 보고 있으면 사이만 나빠지는데 가끔씩 보면 애틋하게 되어 부부 사이도 좋아질 수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어떻게 되었냐고요? 결과는 성공적이어서 그 생활에 대만족이셨습니다.
‘따로 또 같이’는 전원에 살고 싶은 남편의 선호와 도심에 살고 싶은 아내의 선호를 충족해 줍니다. 게다가 독립적인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어하는 아내의 바램을 만족시켜 줄 수 있습니다. 아내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남편의 바램은 어떻게 하느냐고요? 그건 전원생활에서 텃밭 가꾸기 등 다른 일을 하는 걸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부부 각각의 선호를 모두 충족해줍니다.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집을 하나 더 마련하려면 돈이 들어간다는 겁니다. 하지만 앞으로 지방은 주거비용이 별로 들지 않을 겁니다. 일본은 빈 집이 800만 채라 빈 집에 살아 주면 돈을 주기도 한다는데, 우리나라도 고령화가 진전되면 빈 집들이 많아지고 지방의 주거비용도 내려가게 됩니다. 그리고 소도시는 생활비가 싸다 보니 추가적인 주거 비용을 어느 정도 커버해줄 수 있습니다.
심리학자 앤드류 클라크, 에드 디너 등은 결혼을 전후 한 인생의 만족감에 대해 조사를 해보았습니다. 그래프를 보면, 결혼 전후하여 3년 동안은 만족감이 크게 증가했다가 그 이후 다시 원래 수준으로 하락합니다. 이건 결혼이라는 한 요인 때문만은 아닙니다. 남편이 있어 행복하기도 하지만 아이를 키우느라 친구와 만나지 못하고 사회생활의 폭이 좁아져 불행할 수 있습니다. 어떤 면은 좋아지고 어떤 면은 나빠집니다. 행복은 결혼이라는 큰 사건 자체보다는 그로 인해 수반되는 각각의 행복경험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노후에는 행복경험에 영향을 주는 요소를 구체적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노후의 주거는 행복경험에 영향을 주는 주요 요소입니다. ‘부부이기 때문에’ 세트로 다녀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부부 각자의 행복을 모두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결정하는 게 좋습니다. 선호가 다를 때 노후의 두 집 살림은 한 방법입니다. 물론 다른 좋은 방법도 있을 겁니다. 부부가 서로 터 놓고 의논하여 노후의 행복지수를 높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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