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뉴스1] 영국 사람들은 1759년을 기적의 해(Annus Mirabilis)라고 부른다. 프랑스가 주적이었던 7년 전쟁에서 이겼기 때문이다. 처칠이 ‘18세기의 세계대전’이라고 불렀던 7년 전쟁은 유럽, 아메리카, 서아프리카, 인도, 필리핀까지 걸친 큰 전쟁이었다.
영국박물관도 같은 해에 세워졌고 1차 산업혁명의 태동기 중이었으니 1759년은 영국으로서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해다. 우리는 조선 영조 때다.
GKN(구 Guest, Keen and Nettlefolds)은 바로 이 해에 창업했다. 출발 시에 제철, 제강 기업이었는데 그 후 수많은 M&A를 통해 성장했고 그에 따라 사업이 다각화됐다. 2차 대전 때는 독일의 공습으로 생산시설들이 거의 다 파괴되었었다. 지금은 전세계에 약 5만6000명을 고용하고 있는 다국적 기계·자동차·항공기 제조 회사다.
올해 영국에서는 저성과, 저평가 기업의 인수를 전문으로 하는 멜로즈(Melrose Industries)가 바로 이 GKN을 81억 파운드(약 11조7900억원)에 적대적으로 인수했다.
투자전문회사의 유서 깊은 기계제작회사 적대적 인수여서 ‘파인낸셜 엔지니어링과 리얼 엔지니어링 사이의 싸움’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적대적 M&A는 근로자들을 포함한 해당 회사의 이해관계자들에게 불이익을 발생시키고 양사 주주들과 투자은행들에게만 이익이 준다는 시각이 있다. 특히 재무적 인수자가 회사 인수 후 과격한 구조조정을 하거나 자산 처분을 계획하는 경우 더 첨예한 대립을 발생시킨다. 이는 정치적인 논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맥락에서 영국의 테레사 메이 총리는 2016년에 보수당 대표에 출마하면서 적대적 M&A에 대해 과감한 규제조치가 필요하다고 역설한 바도 있다.
GKN의 노조가 멜로즈의 인수 시도에 강력히 브레이크를 걸면서 정부에 이 문제를 의뢰했다. 영국 정부는 특정 M&A가 공익에 반하거나 특히 국가안보에 문제를 발생시킬 위험이 있는 경우 개입할 수 있다. GKN은 방위산업체이기도 하다. 유로파이터 타이푼의 부품도 생산한다.
영국의 노동계는 메이 총리의 종전 발언을 들면서 영국의 제도가 적대적 M&A에 지나치게 우호적이라고 주장했다. 영국의 제도는 자본시장을 잘 아는 사람들을 우대하고 산업 혁신을 주도하는 사람들을 홀대한다는 것이다. 투자은행, 회계법인, 로펌들이 지난 30년 동안 적대적 M&A로 엄청난 돈을 벌었다. 노동계는 금융과 서비스업에 대비해 제조업이 위축되는 것은 영국에서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임에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노동계와 야당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멜로즈가 GKN 인수 후 국가안보 상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국방부와의 협의를 통해 만족스럽게 해결하는 것을 조건으로 이 M&A에 개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멜로즈는 GKN의 사업 중 국가안보에 관련되는 사업을 매각할 경우 정부와 사전 협의해야 한다.
GKN 주주의 88.5%가 멜로즈의 GKN 인수에 찬성했다. 260년 동안 영국의 역사와 함께한 유수의 제조업체가 적대적 M&A로 새 주인이 된 투자전문회사의 손에서 어떤 운명을 맞게 될지 모두가 예의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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