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경제강국으로 만든 여섯번째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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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을 경제강국으로 만든 여섯번째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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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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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경북도민일보 = 뉴스1] 독일 경제의 성공 요인에 대한 필자의 칼럼(관련기사:독일을 경제강국으로 만든 다섯가지 힘)에 독자들이 많은 관심을 보여주셨다. 그런데 거기서 미처 언급하지 않은 또 한가지가 있다. 법률을 철저히 대하는 국민성이다. 독일은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에 민법전이 오르기도 하는 나라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벽에 낙서가 잔뜩 있는 것을 보고 옆에 서서 내려가던 두 아주머니가 하던 말이 기억난다. “저런 걸 처벌하는 법조항이 있을텐데…(Es muss Paragraphen geben…)”
필자는 법질서의 수호자 독일 경찰의 진면목을 1987년의 초가을 남부지방 여행 중에 경험할 수 있었다. 필자가 살던 뮌헨에서 베르히테스가덴은 약 세시간 거리다. 잘츠부르크행 고속도로를 따라가다가 지방도로로 접어들어 이리저리 구경도 하며 첫번째 목적지 베르히테스가덴에 도착했다. 이 자그마한 마을은 1938년 9월 영국수상 챔벌린이 히틀러와 주데텐 문제를 협상하던 바로 그곳이다.
여기서 하룻밤을 지내고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알프스의 산지 사이로 깨끗하게 닦인 한적한 도로를 따라 잘츠부르크로 향했다. 그러던 중 독일-오스트리아 국경 세관에 도착하게 되었고 거기서 한 독일 경찰관과 만나게 되었다.
경관은 내 여권을 체크한 다음 운전면허증 제시를 요구했다. 국경에서 운전면허증을 보자고 한 적은 처음인데 아마 외국인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독일 운전면허증(Fu?hrerschein)은 가지고 계시죠?”
“독일 면허증은 없고 국제면허증이 있어요.”
“어디 좀 볼까요?”
잠시 면허증을 들여다보던 경관은 뭔가 확인하겠다며 안으로 들어갔다. 한참 후에야 그는 다시 나와서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저… 이 면허증은 인정할 수 없는데요. 잠시 내려 주시겠습니까?”
“뭐가 잘못됐습니까?”
“안으로 들어가서 설명을 해 드리지요.”
그 경관의 설명에 따르면 필자가 가졌던 국제면허증은 발급된 지 1년이 지나지 않았으므로 유효한 것은 사실이지만 자기가 입국 사실을 조회해 본 결과 소지자가 독일에 유학할 목적으로 입국한 지 1년이 경과 되었기 때문에 “외국인이라고 해도 운전면허에 관해서는 내국인으로 취급되어 반드시 독일 면허증을 소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필자는 국제면허증을 한국에서 새로 발급받은 뒤 우편으로 전달받아 사용하고 있었다. 경관은 두꺼운 법전을 펼쳐서 조문을 찾아 보여주었다.
“잘 이해가 안 되는데요. 그래서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 무면허 운전이 되지요.”

그 경관은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자기도 처음 경험하는 상황이고 복잡한 관계규정에 다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자기 직무상 어쨌든 무면허 운전처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 조서작성을 시작했다.
“별일은 없을 겁니다.”
“...”“독일에서는 벌금액수가 소득에 비례합니다. 귀하는 학생이니 수입이 없고, 따라서 벌금 액수는 0마르크로 나올 겁니다.”
“(그럼 이런 걸 왜 합니까?)”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그러면 이제 집에는 어떻게 돌아가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 경관도 한참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는 몇가지를 제안했다.
“뮌헨에 있는 친구한테 전화를 해서 데리러 오라고 하시지요.”
이에 친구에게 전화를 했으나 마침 집에 없었다. 있었다 해도 그 먼 시골까지 누군가 또 한사람을 데리고(차가 두 대이므로) 필자를 데리러 올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러면 이렇게 하시지요…. 저~기 보이는 것이 오스트리아 세관입니다. 한 200 미터 되지요. 거기까지 제가 운전해서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이 면허증이 유효하기 때문에 잘츠부르크까지 가셔서 거기서 차를 세워두고 기차로 뮌헨으로 돌아간 뒤 독일면허증을 발급받으셔서 차를 가지러 돌아오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상당히 좋은 아이디어를 내놓았다는 표정이었으나 필자로서는 실행 가능성이 까마득한 무리한 계획이었다.
난처한 표정을 짓고, 고민하는 척도 하면서 시간을 끌어보기로 했다. 약 5분이 지나갔다. 그러자 그 경관은 마침내 밖으로 나갔고 잠시 후 어깨에 뭐가 많이 붙은 콧수염을 기른 다른 경관이 들어왔다. 그 경관은 자초지종을 들었다고 싹싹하게 말하고는 비밀 이야기라도 하듯이 조용조용 말을 꺼냈다.
“우리는 지금 바쁘기 때문에 당신 일에 더 이상 매달려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하시지요. 오던 방향으로 약 3~4km 돌아가면 길가에 레스토랑이 하나 나옵니다. 거기에 공중전화가 있어요. 그곳까지 모셔다 드릴 테니 거기서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세요. 그런데 말씀드렸듯이 우리는 바쁘기 때문에 당신을 데려다 주고는 금방 돌아와야 합니다.”
“…….”
“내 말뜻을 이해하셨기 바랍니다.”
예의 그 경관이 필자의 차를 운전하고 뒤에는 그를 태워 돌아가기 위한 순찰차 한 대가 따라왔다. 경관은 필자를 길가의 그 식당 앞에 내려 주고는 뒤따라온 순찰차를 타고 서둘러 떠나버렸다. 식당 앞에는 노란색의 공중전화 부스가 서 있었다. 필자는 순찰차가 시야에서 사라지기를 기다렸다가 잘츠부르크 여행계획을 백지화하고 조심조심 뮌헨으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약 한달 후에 바이에른 주의 검찰청에서 그 때 있었던 무면허 운전 건은 ‘사안이 경미하므로’ 형사소송법의 관계규정에 따라 절차 진행을 중단한다는 통고가 집으로 날라왔다.
법률을 대하는 독일인의 진지한 태도는 독일을 강국으로 만든 여섯번 째 힘이 아니라 첫번째 힘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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