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法)은 과연 ‘내편’ 일까
  • 모용복기자
법(法)은 과연 ‘내편’ 일까
  • 모용복기자
  • 승인 2019.03.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드라마 ‘하나 뿐인 내편’서
30년 간 살인 누명 강수일
가족도움으로 누명 벗게돼
현실에서도 잘못된 수사와
재판으로 고통받는 일 많아
법은 과연 누구의 편일까

[경북도민일보 = 모용복기자]나는 텔레비전을 거의 보지 않는다. 특히 드라마는 더욱 안 본다. 손흥민이 활약하는 영국 프리미어리그나 타이거 우즈, 박성현이 출전하는 골프경기 정도를 가끔 볼 뿐이다. 그것도 주로 새벽에 하는 바람에 주말이 아니고선 보기 어렵다. 평일 새벽시간대 중계하는 손세이셔널(해외언론에서 손흥민의 활약상을 센세이셔널에 빗대 부른 말) 경기를 뒤로하고 잠자리에 들 때면 세상 사는 재미가 좀 없어지기도 한다. 한 가정의 가장(家長)과 개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나이가 들수록 가장 쪽이 더 이기는 편이다. 손흥민이 넣는 골 횟수만큼이나.
내가 텔레비전을 멀리하게 된 것은 순전히 직업 때문이다. 한 때 나도 텔레비전 광(狂)이었다. 좀 이름이 알려진 드라마 중에서 안 본 드라마가 없으며, 가요 프로그램도 빼놓지 않고 시청했다. 심지어 1980년대 가요무대가 시작할 때부터 나이에 걸맞지 않게 즐겨 보곤 했다. 월요일밤의 무료함을 적셔주던 단비같은 프로였다. 그러다 신문사에 입사하고 나서부터 늦은 퇴근에 잦은 술자리, 불규칙한 생활로 인해 특정한 시간대에 방송하는 드라마를 더이상 시청할 수 없게 됐으며, 자연스레 브라운관도 거실에 있는 가구 정도로만 치부하게 된 것이다.
그러던 것이 지난 겨울 처갓집 식구들과 하룻밤 보낸 펜션에서 본의 아니게 ‘SKY캐슬’이라는 케이블방송의 인기 드라마를 접하게 된 것이 계기가 돼 그 후로 주말연속극을 다시 보게 됐다. 내용의 연속성으로 인해 연속극은 한 번 빠지면 잘 헤어나지 못한다. 특히 나같이 맺고 끊는 것이 불분명한 사람은 더욱 그러하다.
최근 들어 즐겨 보던 드라마가 어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KBS 드라마 ‘하나 뿐인 내편’이라는 주말연속극이다. 통속적이고 밋밋하게만 생각했던 드라마가 후반부에 들어 극적 긴장감이 상승하면서 시청률이 50%를 오르락내리락 했다니 우리 국민들의 드라마 사랑은 알아줄 만하다. 28년 만에 나타난 친부로 인해 인생이 꼬여버린 한 여자 김도란(유이 분)과 정체를 숨기고 살아야만 했던 아버지 강 기사 강수일(최수종 분)을 중심으로 씨줄과 날줄로 전개되면서 결국 ‘세상 단 하나뿐인 내편’을 만나며 삶의 희망을 찾아간다는 이야기다. 눈물샘을 자극하는 요즘 보기 드문 부녀간의 사랑과 시집의 박대(薄待)로 아내는 드라마를 보는 내내 눈물이 마를 새 없었다. 나도 어떤 장면에서는 가끔 마음이 울컥하다가도 옆의 아내를 돌아보면 눈물이 달아나 버리곤 했다. 솔직히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을 ‘주르르’ 흘리는 모습은 보기에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30년 가까이 살인범이란 낙인이 찍혀 살아오던 강수일이 살인사건의 목격자이자 진범(眞犯)인 사채업자 양영달(이영석 분)이 자백을 하면서 마침내 살인자라는 누명을 벗게 된다. 동시에 그동안 얽히고설킨 모든 문제들이 봄눈 녹듯 일시에 해결되면서 드라마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드라마를 보는 동안 현실에서의 사건이 오버랩 되면서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었다. 과연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하는 동안 범행을 숨겨온 진짜 살인범이 실제로 자백을 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현실에서는 경찰이나 검찰, 법원의 잘못된 수사나 판결로 억울한 피해와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지난 4일 KBS ‘제보자들’에서 방영된 한 사건은 수사당국과 사법부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기관들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다. 사업차 지방으로 내려간 남성이 자신이 묵던 작은 빌라에서 미성년 장애인 성폭행 혐의로 체포되는 일이 발생했다. 지난 2015년 12월의 일이다. 경찰은 신고자인 피해자측의 말만 일방적으로 듣고선 이 남성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CCTV 확인 등 현장조사 한 번 없이. 법원 또한 마찬가지였다. 명백한 증거도 없으며, 피해자의 진술이 오락가락 하는 등 경찰조사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이 드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6년 형이라는 중형을 선고했다.
6년 형, 어디서 본 듯한 숫자다. 그러고 보니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직장상사의 강제추행을 피해 달아나려다 아파트 베란다 창문으로 추락해 숨진 20대 여성의 어머니가 가해자를 엄벌해 달라며 올린 글 속에서다. 이 어머니는 딸이 상사의 강제추행을 파하기 위해 출구를 찾다가 떨어져 숨졌는데도 검찰은 상사의 추행이 딸의 사망과 인과관계가 없다는 내용으로 기소했다고 절규를 토했다. 다행이 1심 재판부가 준강제추행만 적용한 검찰의 구형량을 상회하는 형을 선고했지만 그래도 고작 6년. 딸을 원통하게 가슴에 묻은 부모의 한(恨)을 달래기에는 터무니없는 형량이 아닐 수 없다.
앞서 미성년자 장애인 성폭행 혐의로 복역 중이던 이 남성은 3년 만에 누명을 벗을 수 있게 됐다. 사건의 진실을 밝혀낸 것은 경찰도 검찰도 아닌 바로 남성의 둘째 딸이었다. 딸의 집요한 추적 끝에 마침내 사건의 전모(全貌)가 드러났다. 피해자의 진술에 의하면 고모가 남성을 가해자로 지목하도록 시켰으며, 성폭행범은 다름 아닌 피해자의 고모부였던 것이다. 만약 딸이 아니었더라면 이 남성은 6년을 고스란히 감옥에서 보내야 했을 뿐만 아니라 평생 동안 성폭행범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살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현실에서는 딸의 끈질긴 추적과 설득으로 피해자가 진실을 털어놓았으며, 드라마 ‘하나 뿐인 내편’에서는 사위의 물심양면(物心兩面) 노력 덕택에 진범이 자백을 하게 된다는 점에서 두 사건은 많이 닮아 있다. 하지만 드라마와 현실 어디에도 법은 없었다. 오직 억울한 누명을 벗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피해자와 가족만 있을 뿐이다. 법은 과연 누구 편일까? 피해자의 편일까, 가해자의 편일까, 아니면 법 스스로의 편인 것일까?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