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은 가장 먼저 ‘부(富)’를 흡수한다. 강남은 1960-70년대 서울 확장 사업의 결과이다. 대부분 모래밭에 불과하고 지명이라 해봤자 말죽거리 정도 밖에 없던 땅이었다. 하지만 고삐 풀린 수출증대, 인구증가가 가져온 지가 상승의 엄청난 탄력은 강남 아파트단지에 제대로 걸려버린다. 여기에 어찌 아파트 한 채라도 구입했더라면, 그 인생은 이미 구원열차(?)에 올라 탄 것임을 당시에야 어찌 알랴. 하지만 강남은 80년대까지도 여전히 ‘졸부’들 사는 곳 정도로 인식되었다. 어쩌다 땅값 올라 벼락부자 된 곳, 서울의 종갓집 같은 종로와는 격을 비교할 수 없는 곳. 그래서 이시기의 키워드는 ‘오렌지족’이다. 강남 부잣집 자제들이 빨간 스포츠카를 타고 다니며 오가는 미녀들에게 오렌지를 던져준다는, 이 전설 같은 이야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강남 부자들을 혐오하게, 그러면서 속으로 은밀히 질투하게 만들어주었다.
1980년대의 강남은 이제 ‘교육’을 흡수한다. 졸부를 탈피하고 격을 높이는 데는 교육환경만한 것이 없었다. 유수의 고등학교들이 강남으로 이전하고, 건설로 돈을 번 재벌기업들도 이곳에 학교를 개설하기 시작한다. 거기에 자식 교육에 물불을 가리지 않던 사모님들의 치맛바람까지 작용하면서 교육 최고봉 8학군의 시대가 열린다. 그래서 이시기 키워드는 ‘강남 싸모님’이 되겠다. 강남 교육환경의 설계자들이며, 이를 통해 또 한 번 땅값을 부스트업한 주인공들이다.
1990년대로 넘어가면서 강남은 이제 ‘명예’를 흡수한다. 이른바 파워 엘리트라 부를 수 있는 정치인, 기업인, 법조인, 전문직 등이 강남으로 이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70년대에는 그들 중 불과 0.8% 만이 살고 있었지만, 1990년대 초반에는 무려 67.4%가 강남에 살고 있었다 한다. 강남은 더 이상 졸부의 땅이 아닌 부와 명예를 겸비한 영감님들의 땅으로 격상되어 간 것이다.
2000년대로 가면서, 강남은 이제 ‘문화예술’도 흡수해간다. 그 정점은 ‘강남 스타일’이었다. 원래 이 노래는 강남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안달 난, 천박하고 허세스러운 한 오빠를 풍자한 것이다. 강남에 대한 풍자일 뿐, 결코 찬양일 수 없었다. 그런데 이 B급 감성의 노래가 세계적 히트송이 되고, 졸지에 글로벌 수준의 문화로까지 격상되어 버린다. 급기야 강남구는 이 가수에게 지역 홍보상을 수여하기까지 한다. 강남을 풍자한 노래가 강남을 찬양하는 노래로 뒤바뀌어 버린 것이다. 풍자도 찬양으로 윤색해 버리는 것, 그게 바로 강남의 힘인가.
2019년, 우리는 또 다른 키워드에 익숙해지고 있다. 바로 ‘강남 좌파’이다. 부와 명예, 스타일을 다 갖추었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하층민을 위한 공정사회를 향하고 있다는 그들. 자못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두렵다. 혹시 강남이 마지막 남은 것 마저 흡수해가려는 것은 아닐까. 강남이 아직 가져가지 못한, 가져갈 수도 없었던 그것. 그것은 바로 ‘진보’라는 가치관이다. 과거에는 투박하고 거칠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이 단어가 이제는 꽤 스타일리시한, 보암직한 것이 되어버렸다. 부와 명예의 수트를 입은 사람이 진보적 가치관이라는 브로치까지 달 수 있다면, 캬, 그보다 멋진 게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말하고 싶다. 좀 가진 것들로 만족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부탁이니, 진보라는 가치관은 정말이지 억눌리고 억울해서 외쳐야만 하는 사람들이 가져가게 좀 놔두자. 영화 대사를 빌어 이렇게 말하고 싶다.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했냐!”
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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