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우는 도시계획 vs 비우는 도시계획
  • 경북도민일보
채우는 도시계획 vs 비우는 도시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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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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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일의 도·시·공·감
매일 출퇴근길에 지켜보게 되는 도시개발 사업지역이 있다. 원래는 울창한 숲이었던 곳이다. 지형도 굴곡이 심해, 개발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무가 다 사라지고 트럭이 드나들며 골짜기가 메워지기 시작한다. 도시개발 사업지역으로 지정된 것이다. 숲 대신 들어설 아파트를 생각하며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모든 작업이 멈추어 버렸다. 수많은 트럭이 드나들며 메워놓은 지반은 다시금 잡초밭으로 변해가고 있다. 아마도 개발과정에 문제가 생겼나 보다. 개발사가 부도났던가…

구획정리사업, 신도시, 재개발, 재건축 - 우리나라 도시개발의 역사는 그야말로 쉼 없이 달려온 과정이었다. 인구는 많고 주택은 부족하다 보니 국가정책이나 대통령의 공약 1순위는 늘 주택공급 정책이었다. 택지를 늘리기 위해 도시 내부의 구릉지는 물론 주변의 녹지, 농지까지도 다 개발하였다. 엄격하게 지켜오던 그린벨트도 택지개발을 위해 해제한 지 오래이다. 마치 얼마 안 남은 치약을 짜내듯, 개발 가능한 토지를 모두 짜낸 것 같은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그런데, 영원히 부족할 것 같은 택지가 이제는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주택공급률도 어느덧 103퍼센트를 넘고 있다. 지방 도시를 가보면 이곳 저곳에 빈집이 늘어나고 있다. 도심부의 상가도 태반이 비어있는 상황이다. 모든 경제지표보다도 무서운 지표라는 인구증가율이 이미 정체 상태로 돌입하고 있다. 맹렬하게 진행된 도시개발 시대와 거의 간격도 두지 않고 인구 정체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도시개발의 경착륙 시대를 맞고 있다고나 할까.

독일 통일 이후 베를린을 재건하기 위한 재정비 계획이 유명 건축가인 램쿨하스에게 맡겨졌다. 그런데 그는 여기서 기상천외한 접근을 시도한다. 도시를 어떻게 개발할까가 아닌 어떻게 공백을 둘까에 초점을 두고 계획한 것이다. 도시 내부에도 널찍한 땅을 빈 곳으로 남겨놓는가 하면, 개발될 곳은 최소한으로 지정해 ‘컴팩트’한 개발을 유도한 것이다. 공백이 있는 도시계획? 낯설지만 의미 있는 접근이다. 도시는 한 시점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후손 대대로 물려줄 가장 큰 유산이며, 시대에 따라 계속 변화해가야 할 대상인 것이다. 그래서 쓸 만큼만 쓰는 접근이 필요하다. 개발을 위한 개발이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공백을 허용하는 도시계획, 바로 오늘날 우리나라에 필요한 접근이 아닐까.

포항은 유독 지금도 많은 도시개발 사업이 진행되는 도시이다. 진행 중인 시가지 외곽의 도시개발사업만 해도 10곳이 넘는다고 한다. 그뿐인가. 구 철도역사부지 개발, 케이블카 설치사업, 민간공원개발, 각종 도시재생뉴딜사업 등 다른 어느 도시보다도 많은 개발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이 많은 개발들이 우리에게만 주어진 것일까? 도시는 후손 대대로 물려줄 유산이다. 후손들이 물려받은 도시에도 여전히 공백이 있고, 그들이 활용할 가용지가 남아 있어야 한다. 그들이 겪을 미래는 지금보다 더 불안정하다. 최소한의 토지자원이라도 그들에게 남겨주어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둘째로, 도시를 바르게 완성할 만한 능력이 지금 우리에게 있는가? 재정적 능력도, 아이디어도 부족하다면 차라리 공백으로 두는 것이 옳은 대안이다. 공백은 실패가 아니다. 미래의 가능성이다. 언젠가 능력이 충족될 때 공백은 오히려 좋은 자원이 된다.

공백이 필요한 또 하나 무시하기 어려운 이유는 유지관리 비용이다. 일단 개발된 도시의 유지관리 비용은 고스란히 이후 세대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수요가 불분명한 사업들로 과도하게 개발된 도시, 과연 후손들은 어떻게 느끼게 될까. 인구정체라는 초유의 상황 속에서, 후속 세대는 도시의 유지관리비라는 부담까지 어깨에 올려놓게 되는 것이다. 마치 몸에 맞지도 않고 유행도 지난 허름한 교복을 물려받은 동생과 같다. 교복이야 버리면 그만이겠지만, 도시는 싫다고 버릴 수도 없는 것이다.

도시개발의 패러다임이 이제는 빨리 바뀌어야 한다. 개발하는 것만이 도시계획은 아니다. 미래를 위해 때로 개발을 유보하는 것도 도시계획의 역할이다. 공백을 두는 것이 오히려 지혜로운 결정일 수 있다. 역사상 최초로 ‘성장한계’ 시대를 맞이할 다음 세대들에게 ‘낡고 허술한 완성품’을 남겨 주어서는 안 된다. 무리한 개발의 뒤처리를 맡겨서도 안 된다. 공백은 미래를 위한 가능성이기도 하다. 비워두는 것이 오히려 좋은 도시계획일 수 있다.

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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