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 아들 대학 낙방과 교수 사외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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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 아들 대학 낙방과 교수 사외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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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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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는 회사법이 50개 있는데 델라웨어주 회사법이 가장 인기가 있다. 기업활동에 편리해서 창업자, 대주주, 경영자 다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대다수 대기업이 델라웨어에 적을 두고 있고 소송은 델라웨어에서 벌어진다. 델라웨어 법원과 회사법 판례가 미국 기업들에게 가장 중요한 이유다.

델라웨어주 대법원장은 레오 스트라인(Leo Strine)이다. 현대 미국 회사법의 역사에 가장 큰 족적을 남긴 법관으로 기록될 것이다. 중요한 판결을 앞두면 미국 언론은 “레오가 으르릉거릴까?”(Will Leo Roar?)라는 표현을 즐겨 썼다. 스트라인은 약 20년의 판사 생활을 마감하고 올가을에 은퇴한다.

스트라인이 내린 무수한 명판결 중에 사외이사의 독립성에 대한 판결은 두고두고 전범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2003년 6월 17일자 판결(In re Oracle Corp. Der. Lit.)인데 스트라인이 1심법원 판사일 때 주심이었다.

오라클의 엘리슨 회장을 포함한 사내이사 4인이 내부자거래를 했다는 이유로 주주대표소송을 당했다. 이 경우 미국 법원은 회사가 독립위원회를 만들어 소송의 타당성에 대한 의견을 내게 한다. 오라클은 사외이사 2인을 위원으로 선임했다. 스탠퍼드대 컴퓨터공학부 가르시아-몰리나 교수와 스탠퍼드대 로스쿨 그룬트페스트 교수였다.

두 사외이사로 구성된 위원회는 대표소송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수행했고 1110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결론은 주주대표소송이 타당하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그다음 단계는 법원이 두 교수가 사내이사들에 대해 ‘독립적’인지를 심사하는 것이다. 독립적으로 판단되면 위원회의 의견이 받아들여진다. 아니면 주주들이 소송을 계속한다.

오라클과 엘리슨은 스탠퍼드대에 오랜 동안 많은 액수의 기부를 해왔고 미래에도 그런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이 두 교수의 독립성을 침해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었다. 즉 법률적으로는 독립성을 갖춘 사외이사들이 사회적, 인간적 관계 때문에 독립적이지 못한 것으로 인정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다루어졌다. 법원은 두 교수가 독립적이지 못하다고 보았다.

우선 법원은 두 교수가 오라클과 사내이사들로부터 거액의 기부금을 받았고 앞으로도 받을 예정인 스탠퍼드대의 통제를 받는 지위에 있지는 않다고 봤다. 또 소송이 계속된다 해서 두 교수의 성공적인 인생에 어떠한 장애도 발생할 일이 없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법원은 델라웨어 주의 법이 인간이 경제적인 동기에 의해서만 움직인다는 단순한 시각이 아니라 복잡한 사회적?심리적 제반 동기에 의해 행동한다는 관점에서 해석돼야 한다고 했다.

엘리슨 회장의 아들은 스탠퍼드대에 낙방한 적이 있다. 주주대표소송 피고측은 학교나 교수가 거액기부자의 자제에게 입학 특전을 주지 않을 정도로 독립적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법원은 엘리슨 회장의 아들이 스탠퍼드대에 낙방했다는 사실이 두 교수가 소속되어 있는 스탠퍼드 커뮤니티에게 중요 기부자인 엘리슨 회장을 두 번 상처받지 않게 하려는 잠재적 동기를 유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 피고 중 한 사람인 보스킨 이사는 그룬트페스트 교수가 경제학 박사과정에 있을 때 가르친 교수였다는 점, 그리고 그 후로도 학내외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지속적인 인간관계를 유지했다는 점 등도 그룬트페스트 교수의 독립성을 의심하게 할 만한 일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러한 사실이 동 교수로 하여금 통상적인 경우보다 더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태도를 견지하게 할 수도 있지만 이러한 유형의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인간의식의 근저에 있는 성향은 그를 능가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법원은 두 교수가 엘리슨 회장과 오라클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그 결과 스탠퍼드대가 재정적인 불이익을 받을 잠재적인 가능성이 있다 해도 그 때문에 두 교수가 객관성을 상실할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고 하면서도 인간행동의 보편적인 특성에 비추어 보통 수준의 양식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자신이 속해 있는 커뮤니티에 대한 로열티 의식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판결에 의하면 같은 학교 출신들로만 채워지고 나아가 회사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교수들로 구성된 이사회를 가진 기업들은 주주대표소송에서는 불리해진다. 독립적인 위원회를 구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판결에 대해 미국의 재계에서는 앞으로 이사회는 서로 적대적이거나 서먹서먹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로만 구성돼야 하는가 하는 불만이 제기됐다.

우리 기업의 사외이사들도 모두 법률적인 독립성 검증을 거쳐 선임된다. 그러나 법률이 ‘회장과 친한 사람’을 결격사유로 규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사회적 관계는 검증이 불가능하고 검증돼도 예단이 허용돼서는 안된다. 결국 사외이사 개개인의 양식에 달려 있다. 양식과 양심은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 앞에서는 종종 위력을 발휘하지만 사회 전반의 분위기와 관행 앞에서는 무력해지기 쉽다. 사외이사의 독립성 확보가 지속적인 과제인 이유다.

김화진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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