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울린 카톡’
  • 경북도민일보
‘나를 울린 카톡’
  • 경북도민일보
  • 승인 2019.12.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철우 시인.칼럼니스트
이철우 시인.칼럼니스트
아빠! 그때는 아빠가 하는 말이 짜증스럽기만 했어. 몇 마디 듣다 보면 화가 나서 뛰쳐나가고 싶었어. 근데 아빠, 내가 군대 가서 고생도 해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시간을 견뎌내는 것 뿐이었고, 보초를 서면 게임도 할 수 없는 캄캄한 밤에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고독하기도 했었어. 왠지 눈물도 났어. 제대하고 복학하여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따라가려니 많이 힘들고 지치기도 해. 문득 기숙사 창문을 열고 군대에서 보던 것과 똑같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가슴 깊이 깨달았어. 깨닫고 나니 진심으로 후회도 밀려와. 그땐 몰랐어. 아빠가 눈물을 글썽이며 해준 말들이 몸소 세상과 부딪히며, 지식으로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세월의 가르침을 내게 미리 전해주려 했었다는걸….

이제 23살 된 아들이 어느 날 밤에 내게 카톡으로 보낸 글귀다.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읽었다. 자꾸 읽자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들이 철이 들고 내 맘마저 알아준다는 것이 너무 고마웠다. 지난날 기대를 허문 실망감들이 그 문자 하나에 둑 터진 거센 물살에 휩쓸려가듯 모조리 씻겨졌다.

어찌 가만 있으랴! 나는 혼을 담아 답장을 보냈다. “아들아 고맙구나. 아빠는 네가 그리 생각해준 것만으로 가슴이 벅차다. 벅차서 터질듯하구나. 후회하지 마라. 지금의 자리는 우리 모두에게 최선의 자리다. 우리는 되돌릴 수 없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깨우친 그 자리가 별이 되는 자리다. 아빠도 그랬단다. 인생살이 고달파 이리저리 돌고 떠돌며 갖은 좌절과 실패와 고생을 겪으면서 두부 잘려나가듯 어리석게 청춘의 세월을 뭉텅그리 잃어버리고 결국은 진리를 곱씹다가 “그 말이 맞는 말이다”라고 깨닫고 울고 울면서 되돌아 왔단다. 왜 나는 처음부터 그리 살지 못했을까… 처절한 후회를 했단다. 그 후회의 자리에서 비로소 나는 새 출발을 했단다.”

“아빠 고마워, 나는 아빠가 자는 줄 알았는데… 나도 갑자기 마음이 홀가분해”

“아들아! 아빠가 한마디만 더 할게. 치열한 경쟁의 이 세상을 살아남기 위해서는 많은 겸비요건이 필요하지만, 성공의 조건은 간단하단다. 진리 속에 거하는 것이란다. 진리 속에 사는 것이 진정 너의 영혼까지 자유롭게 해준단다. 삶도, 사랑도, 죽음까지도 그 범주 속에 있단다. 깨닫는다는 것은 아무도 몰랐던 새로운 경지에 이르는 것이 아니란다.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단다. 깨닫는다는 것은 벗어남이 아니라 오히려 진리 속으로 파고들어 그 품에 순복하는 것이란다. 예를 들어볼까?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라” 이 말은 다섯 살배기도 알고 있는 온 시대를 관통하는 진리란다. 이 평범한 진리만이라도 지키고 살면 그게 곧 인생 전체의 토대가 된단다. 그렇지 아니하냐! 성실하지 아니하고서 어찌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으며 정직하지 아니하고서 어찌 높은 곳까지 이를 수 있으랴! 저 들판에 풀 한 포기도 햇빛만으로 살지 못한단다. 바람불어와 비도 내려주고 흙 속에 양분도 있어야 한단다. 풀 한 포기 삶에도 여러 가지 조건이 얽혀 있듯 어느 하나의 진리는 모든 진리로 잇대어 있으니 지키지 못할 많은 이론보다 하나의 진리에 충실하면 모든 진리에 이르는 것이란다.”

“아빠! 왜케 어려워 bb… 글치만 조금은 알 것도 같아”

“ㅎㅎ 그래. 딱딱한 누룽지를 한번 씹어 고소함을 느낄 수 없지. 자꾸 곱씹어야 비로소 고소함이 우러나오지. 여러 번 곱씹으면 알게 될 거야. 잘 자라 울 아들! 내일 다시 톡하자.”

“아빠도 잘자”

그리고 나는 한참을 더 생각했다. ‘절대적인 진리는 먼 곳에 있지 아니하고 쉽게 붙잡을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있다. 그것은 타인의 손에 의해서 붙드는 것이 아니고 자기 스스로 붙드는 것이다’라는 말을 되새김질했다. 이 밤이 지나고 내일이 오면 아들에게 해준 말처럼 나도 그리 살자. 해가 뜨면 그 찬란함으로, 비 내리면 비에 젖으며 눈 내리면 그 하얀 설원에 뒹굴며 진리와 섭리를 받들어 살아가자고. 먼지가 되어 사라지겠지만 살아있다는 게 전부이므로 어제는 돌이켜 반성하고 미래는 먼 곳까지 내다보며 전체 속에 전부가 되어가자고….

이철우 시인.칼럼니스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
  • 경북 포항시 남구 중앙로 66-1번지 경북도민일보
  • 대표전화 : 054-283-8100
  • 팩스 : 054-283-53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모용복 국장
  • 법인명 : 경북도민일보(주)
  • 제호 : 경북도민일보
  • 등록번호 : 경북 가 00003
  • 인터넷 등록번호 : 경북 아 00716
  • 등록일 : 2004-03-24
  • 발행일 : 2004-03-30
  • 발행인 : 박세환
  • 대표이사 : 김찬수
  • 경북도민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북도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HiDominNews@hidomin.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