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타가 숨죽여 우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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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타가 숨죽여 우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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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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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은의 사적인 LP
-조지 해리슨의 ‘While My Guitar Gently Weeps’를 들으며
-기타에게 바치다

십 년도 지난 일이다. 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한 무렵 ‘편지 쓰는 작가들의 모임’이라는 낭독회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른 적이 있다. 독자를 초청해 작가의 편지 혹은 일기를 읽는 문학 행사였다. 나는 어디까지나 낭독을 위한 연주자였고, 공간을 풍성하게 만들기 위한 세션이었다. 노래를 부른 후에는 좋아하는 작가들의 음성을, 그들의 사적인 편지를 엿듣겠다는 마음만 있을 뿐이었다. 나는 떨리는 마음을 감추기 위해 짧게 인사하며 노래를 할 참이었다.

“이 노래를 제 기타에게 바칩니다.”

그런데 내가 노래를 시작하기 전에 했던 그 인사말이 한 시인에 의해 시가 되고 말았다. 시인은 내가 노래를 바치고자 한 기타에 대해 코멘트를 했고, 마치 그것이 자신이 읽어줄 편지와 다름없는 한 편의 시와 같다며 무대를 이어나갔다. 나는 시인의 말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순간 나는 기타에게 편지를 쓴 것이다.



-기타는 나의 꿈

사물에게 무언가를 바칠 수 있다면, 꿈속에서처럼 그런 일이 정말로 가능하다면, 어쩌면 나는 그 사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만약 사물이 될 수 있다면, 그건 기타가 좋을 것 같다. 풍성한 바디와 매끈한 넥과 팽팽하게 줄을 조이는 헤드를 가진 완벽한 기타 말이다. 손가락이 부드럽게 줄을 퉁기면, 프렛 위를 노닐던 음파는 나뭇결을 따라 바디의 홀로, 그 매혹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러면 나는 어두컴컴한 홀에서 입을 쩍 벌리고 앉아 소리를 삼키는 것이다. 이내 소리는 안으로, 속으로, 몸으로 들어온다. 나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소리를 샅샅이 해부한다. 소리의 태곳적 형태를 찾아 깊이 탐구한다.

하지만 내가 소리를 만나는 것은 찰나에 불과하다. 나는 소리를 오래 머금을 수 없다. 내가 받아들인 소리를 도로 뱉어내야만 한다. 나를 통과한 소리는 증폭되어 그 둥글고 어두컴컴한 홀을 통해 밖으로 퍼져나간다. 나는 소리가 잠시 머무르는 곳에 불과하다. 나는 소리의 무의식일수도 있다. 나는 소리의 꿈이자, 꿈결이다. 나는 소리의 집이자, 안식처. 나는 소리가 머무는 소리의 골. 나는 소리다. 나는 소리의 꿈이다.



-그녀의 움직임에는 무언가 특별한

사실 내가 되고자 하는 기타는 형체가 없다. 나는 아우라를 가진 영혼, 기타의 이데아. 나는 세상의 모든 기타이자, 기타의 세상이다. 그런데 가만, 기타 줄이 꼭 팽팽할 필요가 있을까. 넥이 매끈해야만 하는 건가. 바디는 좁고 날렵하면 안 되는 건가. 내가 만약 기타로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번쩍이고 화려한 것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기타라면 본디 조지 해리슨 같은 연주자를 만나길 바라야 하는 것이다. 기타를 향해 ‘gently weeps(가만히 우는)’라고 노래해 줄 사람을 찾아야 한다. 정확하고 섬세하게 연주하는 이와 동행해야 한다. 그의 꿈은 내가 되고, 나의 꿈은 그가 되어야 한다. 느슨하고, 느긋하고, 느닷없는 삶에야 비로소 같은 곡이 태어난다.

조지 해리슨이 만든 이 곡의 첫 가사는 이렇다. ‘Something in the way she moves(그녀의 움직임에는 무언가 특별한)’ 1968년에 발매된 제임스 테일러의 와 69년 발매된 비틀즈의 은 첫 가사가 같다. 이 두 노래는 겨룰 수 없이 아름답지만 두 곡의 도착 지점은 확연히 다르다. 제임스 테일러의 경우는 그녀의 움직임으로 비롯한 세상에 대한 확신(I feel fine)이, 조지 해리슨의 경우는 불확신(I don‘t know)이 있는 것이다.

확신과 불확신 사이에서 기타는 가만히 운다. 사랑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 건지, 무엇도 알 수 없는 동안, 그런 순간에야 비로소 나는 내 기타가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슬피 우는 건 오직 내 기타다. 조용히 우는 것은 무엇도 아닌 유일한 나의 기타다. 기타가 숨죽여 우는 동안 나는 바닥을 내려다본다. 울음을 그칠 때까지, 해가 밝아올 때까지.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기타는 나를 바라보고, 나는 기타를 바라본다. 나는 기타의 무의식일수도 있다. 나는 기타의 꿈이자, 꿈결이다. 나는 기타의 집이자, 안식처. 나는 기타가 머무는 소리의 골. 나는 기타다. 나는 기타의 꿈이다. 오성은 작가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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