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TV광고의 한 장면이다. 대추격전이 벌어지자 위기에 놓인 주인공이 달리는 기차 위에서 휴대폰에 대고 황급히 구조를 요청한다. 그러자 구조 대원이 바로 나타나 구조를 한다.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실제로는 이뤄질 수 없는 일이다. 주변 모든 소리를 무차별적으로 듣는 휴대폰, 즉 기계의 입장에서는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유독 사람의 말만 선택해 인식할 수는 없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사람은 다르다. 귀의 내부 구조상, 주위 소음이 요란하더라도 옆 사람의 말을 어느 정도 들을 수 있다. 이쯤 되면 휴대폰 소음은 제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피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휴대폰 통화와 같은 `가상대화’에서 생기는 `소음’은 더 참기가 어렵다. 스티븐 밀러는 `대화의 역사’에서 서로 마주보고 이야기하는 `진짜 대화’가 쇠퇴하고 있는 원인으로 `화의 이데올로기’를 꼽는다. 1960년대 `예절은 대중을 억압하는 힘’이라고 주장하는 저항문화운동이 호응을 얻으면서 사람들은 화를 내는 것을 그대로 표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휴대폰 소음은 물론, 음악 장르인 랩도 `화의 이데올로기’가 표출되는 대표적인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 따르면 휴대폰의 정도가 넘는 `가상 대화’는 분노의 정서를 담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미국에서 휴대폰 전파 차단 장치를 사용하는 사람이 최근 늘고 있다고 한다. 이 장치는 반경 30피트(약 9m) 이내의 휴대폰 통화를 중단시켜 버리는 강력한 전파 방해장치다. 적발될 경우 1만1000달러까지의 벌금을 물 수 있지만, 휴대폰 소음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고 한다. 휴대폰 소음이 극심한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몇 년 전부터 공공 장소에서 휴대폰 방해장치를 설치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통신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도 만만찮은 현실이다.
/金鎬壽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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