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도 짧은 음악이라는 등에 기대어
  • 경북도민일보
길고도 짧은 음악이라는 등에 기대어
  • 경북도민일보
  • 승인 2020.03.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Long Playing에 대하여
-음악은 방향이다
간단하지 않은 세상이다. 난감하고 난처한데 누구에게도 난색을 표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종잡을 수 없이 어디론가 이끌려가는 듯 하고, 그 속의 나도 마찬가지로 무력하다. 그런데 이 우울감보다 더 깊은 감정을 재즈에서 맛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우선 쳇 베이커와 마일스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과 허비 행콕, 팻 매스니와 찰리 헤이든 같은 연주자들은 줄곧 우울에 대해 탐구했지만 우울을 찬양한 적은 없다. 지독한 고독이나 외따로이 돋아난 감각은 그저 생을 향한 반작용에 가깝다. 그늘 속에서 양지를 꿈꾸는 일 마냥 악기와 목소리를 통해 우울의 안과 밖을 뒤집을 준비를 어느 때고 하는 것이다. 그들은 다만 음악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보고 싶었을 따름이다.

록에 대해서는 특히 할 말이 많다. 머리를 기른 이유도, 삭발을 하고 반항을 한 경험도 모두 록의 정신을 카피(copy)하기 위해서였다. 카피가 지속될수록 커버(cover)가 되었고 이내 본질과 복사물의 경계가 사라져버려 나는 이따금 록이 되는 기분을 느꼈다. 그런데 이 록은 단단하기보다 오히려 연약한 것들에 가깝다. 솜털이나 계란이나 구름이나 흐르는 물 같은 거. 이 폭신폭신한 것들이 바위를 깎고 산을 움직이고 길을 내고 지구를 굴린다. 다만 록은 움직이는 방향, 즉 운동성에 중심을 둔다. 무엇이 약하고 무엇이 강한지는 애초에 중요하지 않다. 롤링 스톤즈와 라디오 헤드와 림프 비즈킷과 시나위가 그러했다. 록의 정신이 시대를 굴리고 있다.



-장르는 무용할 뿐

팝과 흑인음악에 대해 나는 짝사랑을 고백하고 싶다. 대학에서 동아리를 창단할 정도로 매혹에 빠져버렸고, 헤어 나오지 못했으며, 그것에 대한 후회는 조금도 없다. 태생적인 몸치임에도 기본적인 박자를 탈 수 있는 정도의 리듬을 가지게 된 건 모두 그들 덕분이다. 좌로 우로 몸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결국 음악의 모양이라는 걸 나는 이제 알 것 같다. 음악을 그리시오. 누군가 내게 이러한 숙제를 내준다면 나는 한가로운 광장에서 버스킹을 하는 청년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한 노인의 입모양을 그릴 것이다. 아, 이건 포크라고 제목을 붙여도 좋겠다. 아니다. 음악의 장르는 무용할 뿐이니, 통칭해서 음악이라고 하자.

그런데 이 음악이 점차 짧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당신도 눈치 채고 계셨는지요. 혹은 원치 않게도(어쩌면 당신이 원해서) 당신이 고른 음악, 그 다음 곡은, 그 다음 다음 곡은 당신과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들었던 음악이라는 명목으로 자동 재생되지는 않았는지요. 그저 이 음악을 한번 찾아들어본 것인데, 당신은 그런 취향으로 규정된 건 아닌지요. 그러니까 누군가의 취향에 의한 재생목록이 자동 설정되었고, 취향은 객관화되고 데이터화 되면서 전파를 타고 타인의 취향에 기여하고 있던 건 아닌지요. 이것에 대한 순기능은 무수하겠지만 나처럼 조금 비딱하게 세상을 보자면 나는 이 사태가 조금은 무섭습니다만.



-Long playing

내 차가 어느 위치에서 어떤 도로를 달리고 있는지 위성에서 모두 파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내가 본 영화 다음에는 이런 영화를 보지 않겠냐고 곧장 알람이 뜬다는 것이, 내가 들은 음악과 비슷한 박자와 코드와 영향력을 발휘하는 가수들이 줄줄이 자동으로 재생된다는 현실이, 어쩌면 내가 그들에게 또 하나의 취향으로 기여하고 있다는 실정이, 내가 만든 음악이 명확히 어떤 장르라고 체크 되어야지만 세상에 출시될 수 있다는 사실이, 간단치만은 않게 취향을 포섭하고 있다. 나의 취향 변화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점차 짧아지고 빨리 변하고 있다.

LP는 Long Playing을 뜻한다. 장르고 취향이고 간에 사실 이 말을 하려고 여기까지 왔다. 긴 재생. 음악은 조금 길게 들어도 좋다는 말이다. 두꺼운 책 한권을 끝까지 읽어냈을 때의 쾌감이 음악에게도 있다는 말이다. 한 평생을 살아간 이후에야 느낄 수 있는 복합적인 감정은 생이 무르익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물론 이 Long Playing은 보기보다 Long하지 않고, 격동적으로 Playing하지도 않다. 그저 납작하게 엎드려 자신의 등을 긁어내는 톤암에 슬그머니 반응을 할 뿐이다. 판의 끝에 닿으면 숨을 죽여 버리는, 그렇다 음악은 그 정도의 길이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긴, 짧고 긴 게 다 무슨 소용인가. 다만 음악은 어느 때고 등을 내어줄 정도로 당신 곁에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할 뿐. 오성은 작가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기사
  • 경북 포항시 남구 중앙로 66-1번지 경북도민일보
  • 대표전화 : 054-283-8100
  • 팩스 : 054-283-5335
  • 청소년보호책임자 : 모용복 국장
  • 법인명 : 경북도민일보(주)
  • 제호 : 경북도민일보
  • 등록번호 : 경북 가 00003
  • 인터넷 등록번호 : 경북 아 00716
  • 등록일 : 2004-03-24
  • 발행일 : 2004-03-30
  • 발행인 : 박세환
  • 대표이사 : 김찬수
  • 경북도민일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북도민일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HiDominNews@hidomin.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