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없는 맨손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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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 맨손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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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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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복자로 태어나 할아버지 수술비 마련 위해 과수 농사 시작
수익 생기는 족족 땅 사다 보니 밭 만평에 산 10만평 이뤄
13년간의 이장 생활부터 의료보험공단 자문위원 등 활동
손만호 씨 부부 현재 모습.
손만호 씨 부부 결혼식 모습.
손만호 씨 부부 결혼식 모습.
손만호 씨 군 복무 시절.

손만호의 포항이야기<29>

기억이 잘 없다. 할아버지 이야기로는 피난을 갔는데 미국 폭격기가 보경사에서 조사리까지 폭격을 했다. 아버지가 낭심을 다쳤다. 그 당시 병원이 없으니까 피를 많이 흘렸고, 목이 말라 물을 마시고 돌아가셨다. 어머니를 통해서 그 내용을 알게 되었고, 지금 남아 있는 아버지 사진은 하나도 없다. 동네 아버지 친구분들 결혼식 사진에서도 아무리 찾아봐도 안보였다.

일본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조혼하던 시절, 어머니는 18세에 결혼해서 21세에 혼자가 됐다. 3개월 유복자를 키웠다. 구룡포중학교 졸업 후, 경주공고는 삼촌이 있어서 가게 됐다. 공고 건축과를 졸업하고 영남대학교 건축학과 진학 후, 할아버지의 암으로 집안이 어려워지자 휴학계를 냈다. 논 서 마지기 밭 두 마지기가 수술비로 들어갔다.

강동면 과수원에서 일하던중 부사 1호 사과를 접하게 됐다.

신품종이었다. 7000평 도지를 내서 시작했는데 사과밭으로 기반을 잡게 됐다. 그때 돈으로 1000만원을 남겼다.

논 15마지기 살 수 있는 돈이다. 3년 간 하고 다시 송라로 와서 4200평 사과 농사를 시작해서 6년 정도 했다. 매년 1000만원 이상의 수익이 났다. 어머니와 나 그리고 집사람이 과수 농사를 지어 그 옆에 밭을 샀다. 수익이 생기는 족족 밭을 사서 과수를 심었다. 사과밭 만 평을 사게 돼 모종을 다 옮기게 됐다. 그때 순수익이 2억원이나 됐다. 지속 되는 수익으로 인해 재산이 불어났다. 그러던 중 누가 돈이 있으면 송이 산을 사라고 했다. 송이가 많이 나서 재미를 많이 보았다. 울진 불영계곡에 산을 샀는데 국립공원이 되는 바람에 팔게 됐다. 그 후, 영덕에 산을 샀는데 송이가 안 나서 다시 팔았다.

10만평 정도 되는 산을 팔고 난 후 부동산 정보를 얻게 되는데 산에 투자를 하면 큰 수익을 얻게 된다는 정보를 얻게 됐다. 아무것도 없는 맨손에서 일어났다.

지금은 산을 다 팔아서 황토방을 인수하게 됐다. 보경사 오토캠핑장을 허가 받았다.

주말에 만석까지 가던 그 당시 인기가 있던 시절이었다. 딸과 사위가 일을 했다. 3년간 잘 되다가 안 되어서 전원주택지로 철거하게 된 시기에 지진이 일어났다. 철거 신고하면 바로 허가가 나서 철거했다. 그래서 지진 보상도 한푼도 못 받았다. 돈이 생기면 밭만 샀는데 지금은 논보다 밭이 비싸다.

아내는 ‘본동댁’이 택호다. 아내는 머슴이 있는 집안 이어서 결혼 반대가 심했다. 워낙 차이가 나니까 반대했던 것 같다. 맏딸이 시집가니까 우리 복이 다 그 집으로 갔다고 장인이 말했다. 딸을 대구에 보냈는데, 내려와서 바로 결혼했다.



47세 때, 우리 동네에

골프장이 들어오게 됐다. 모두 반대했지만 나는 찬성했다. 당시 나는 청년회장이어서 골프장 사장을 만나니 동네에 진입로와 발전기금을 약속받고 타결시켰다. 골프장 들어오고, 이장을 하게 됐다. 13년간 이장을 했다. 의료보험공단 자문위원, 개발자문위원장 등 많은 활동도 했다.

2남 2녀의 자녀들에게 ‘땅은 지니고 있어라’ 땅은 삶의 근본이기에 뿌린 대로 거둔다. 땅은 할아버지 것이다. 후손에게 물려준다는 마음으로 농사짓고, 나오는 수익만을 가져라. 자녀들이 재산정리하라고 말을 했을 때가 가장 서운했다.


자료제공=콘텐츠연구소 상상·도서출판 아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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