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부머의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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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부머의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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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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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을 퇴직한 친구가 시골집에 내려 가 딸기 농사나 짓겠다는 말을 하더군요. 수도권에 사는 50~60대 베이비부머들은 지방에서 올라 온 사람들이 많다 보니 주변에서 종종 듣는 얘기입니다. 실제로 얼마나 고향에 가 살 지는 모르지만 다른 어느 세대보다 귀향의 잠재성은 있습니다. 국회의원 선거가 있을 때면 고향에서는 누가 되었는지 아직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으니까요. ‘타향살이 몇 해 던가 손꼽아 헤어보니’라는 가사가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베이비부머의 고향 탈출 현황을 함 볼까요? 출생지와 현 거주지를 비교해서 찾으면 되는데요, 마강래 교수의 <베이비부머가 떠나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에 잘 나와 있습니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베이비부머가 2015년 현재 805만 명인데 이 중 440만 명(55%)이 지방에서 출생했습니다. 수도권에서 만나는 베이비부머 2명 중 1명은 수도권에서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수도권 출생자는 90%가 수도권에 머무르고 지방에 거의 내려가지 않았으며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울산 출생자는 50~60%가 출생지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반면 강원도, 호남, 충남 등은 대략 30% 정도가 고향에 머무르고 50%는 수도권으로 옮겼습니다. 나머지 20%는 근처 도시로 옮겼습니다.

이들이 아직 귀향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2년 전 귀농 관련 회의에 갔더니 귀농·귀촌을 하는 사람들이 매년 50만 명 정도가 된다고 하여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실상은 달랐습니다. 2018년의 귀농인구가 1만 2천명, 귀어(歸漁)인구는 1천명, 귀촌인구가 무려 47만 2,400명이었습니다. 여기서 귀촌인구는 사실상 젊은 인구가 도심 집값이 비싸거나 혹은 신도시 개발로 도시 외곽으로 간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촌이라 하면 읍과 면을 말하므로 동에서 읍이나 면으로 옮기면 귀촌이 됩니다. 서울이나 부산에 살다가 남양주나 양산으로 옮기면 귀촌이 되는 거죠. 남양주시나 양산의 읍 단위는 웬만한 도시 이상의 인구가 살고 있습니다. 귀농, 귀어 인구만을 본다면 아직은 베이비부머는 마음만 있지 몸은 본격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뜻입니다.

베이비부머들이 은퇴 후 고향으로 이주하면 어떨까요? 마강래 교수는 그 장점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선, 세대간 공간분리 전략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젊은층은 도시에 적합하지만 베이비부머들에게는 지방 중소도시가 여생을 보내기에 유리한 터전이 될 수 있습니다. ‘서울도 일자리가 없는데 지방에 무슨 일자리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만 실버산업 등 다양한 일자리가 지방에서 생겨날 수 있습니다. 일본은 IT산업을 중심으로 스마트 실버산업이 커지고 있는데 베이비부머는 고령화가 빨리 진행되는 지방 중소도시에서 관련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베이비부머는 학력 수준이 높은 데다가 젊은층보다 고령자를 잘 이해할 수 있고 고향에 기반도 갖고 있습니다. 관련 상품을 팔고 사용법을 알려 주는 일 들이 필요할 것입니다. 물론 임금은 많지 않지만 자녀를 다 키운 상황에서 많은 소득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둘째, 나이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젊은층은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기술을 잘 익히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걸 좋아합니다. 대도시의 첨단산업이나 디자인 기초과학 등에 적합합니다. 반면에 나이가 들어가면 이런 능력은 떨어지지만 경험과 연륜이 증가합니다. 긴 시간에 걸쳐 축적된 경험과 네트워크가 이들의 강점이어서 관리, 행정, 서비스 등에 맞습니다. 영화 <인턴>에서 로버트 드니로가 보여 준 능력입니다. 고향에서 음식이나 관광 등 지방 고유의 문화사업을 일으키기에도 적합합니다. 은퇴하고 치킨집을 내는 것보다 실패 가능성이 낮습니다.

마지막으로, 건강을 챙기면서 생활비를 절약할 수 있습니다. 대도시에 비해서는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챙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도권에 비해 지방에 거주하면 주거비와 생활물가가 낮기 때문에 20% 남짓 생활비를 절약할 수 있습니다.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병원 및 문화시설의 부족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병원 가까이에 살아야 합니다. 실제로 농어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도시와의 가장 큰 격차로 들고 있는게 ‘보건의료’입니다. 종합병원과 응급시설의 근접성이 좋아야 합니다. 종합병원이 차로 20분 이상 걸리는 거리 밖에 거주할 때 취약지구라고 하는데 서울은 그 비율이 거의 0%인데 반해 지방은 30~50%대에 달합니다. 작은 병원도 지방은 서울에 비해 거의 다섯 배 먼 거리에 있습니다.

서울 시내는 한 블록 건너 스타벅스가 있습니다. 심지어 앉아 있는 스타벅스에서 다른 스타벅스가 보일 정도입니다. 하지만 지방에 강의를 가 보면 스타벅스 찾기가 어려우며 그 흔한 카페 하나 찾기도 어려워 시간 보내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귀향하는 사람이라고 한적하고 다른 사람과 격리된 삶을 원하지 않습니다. 병원시설과 문화시설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아이디어들이 필요합니다. 마강래 교수는 지방의 압축화, 은퇴주거단지, 대학과의 연계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지방의 마구잡이식 개발보다 전략적 선택과 집중이 필요해 보입니다.

무엇보다, 귀향에서 가장 중요한 게 가족의 동의입니다. 국회의원 나가려면 우선 ‘집안 공천’을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배우자와 자녀가 동의해주어야 한다는 뜻이죠. 실상은 집안 공천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합니다. 귀향 역시 배우자는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에 대해 서로 동의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지방에 작은 집을 얻고 두 집 살림을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국어 선생님께서 약주를 한 잔 하시고 밤에 교실에 들어와 칠판 가득 한시(漢詩)를 하나 써 놓고 나간 적이있습니다.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였는데 그 첫 문장이 기억에 생생합니다. 귀거래혜(歸去來兮), ‘돌아가자’라는 뜻입니다. 베이비부머는 선배 세대가 닦아 놓은 기초에서 고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처음으로 많이 공부한 세대이기도 합니다. 이제 이들이 저성장, 초(超)장수 사회에서 은퇴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존재 자체가 짐이 되고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해법이 필요한 때입니다. 소비력과 생산력을 갖춘 ‘베이비부머의 귀향’도 한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경록 미래에셋 은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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