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말에서 내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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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말에서 내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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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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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면서도 완벽하게 인생이 파괴되는 사람이 있다. 좋은 직장을 다니며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하는 일마다 꼬이고 잘 풀리지 않아 그는 한평생 괴로운 삶을 살고 있다. 그런 일상이 지속되자 결국 사회적, 정서적, 인지적인 정신 상태는 고장이 났고 마음은 버려진 들판처럼 황폐해져 버렸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고통스런 그의 삶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를 바라보며 인생이 불행해지는 이유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생에서 좋지 않은 일들이 되풀이된다면 분명 원인이 되는 결정적인 인자(원인이 되는 요소)가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결정적 실패요인은 인간관계의 파탄이었다. 가정은 일찌감치 깨어졌고, 직장동료들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마음을 터놓고 의지할 변변한 친구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늘 세상 탓이나 팔자타령만 했다. 납득되지 않는 자신의 성격이나 감정, 행동과 더불어 만족할 수 없는 욕구불만을 다른 탓으로 돌리고 자신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여겼다. 대학교까지 정상적인 교육을 받고, 세상을 저만큼 살았으면 스스로 깨달을 텐데 왜 저리 평생을 악순환의 반복 속에 살아갈까란 생각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 이유를 그가 속마음을 털어놓은 후에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소심하면서도 아집이 강한 그의 성격도 문제였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근본적인 문제는 그의 과거에 있었다. 살아오면서 받은 많은 상처들이 그의 가슴속에 생생하게 살아 그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늘이 아무리 맑아도 붉은색 안경을 끼고 보면 세상이 모두 붉게 보이듯 그는 온 세상과 사람들을 과거기억을 투영하여 증오와 환멸의 창을 통해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감동의 눈물자리에서 냉소했고, 유쾌한 자리에서 무표정했다. 가족이나 지인의 사소한 잘못이나 실수를 용납하지 않고 질리도록 곱씹으면서 들춰냈으며, 자기보호본능에는 지독하게 집착했다. 모든 것으로부터 버림받기에 충분하고도 완벽한 조건을 스스로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의 뇌는 기뻤던 일보다 슬펐던 일을 훨씬 더 오랫동안 또렷하게 기억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 받았던 일은 쉽게 잊어버리지만 타인으로부터 손해를 당했거나 섭섭한 일은 평생 동안 잊지 못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슬픈 기억이나 아픈 상처에 매여 현재를 무참하게 만든다. 나는 그에게 지나간 일들을 잊으라 했다. 과거에 매여 살면 오늘과 미래까지 망칠 수밖에 없으니 모두 잊으라했다. 과거의 문을 닫지 않으면 미래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 했다.

그는 이렇게 반문했다. “자꾸 생각나는 것을 어떻게 잊는단 말인가. 사람의 기억을 컴퓨터 데이터처럼 삭제해 버릴 수도 없지 않는가.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니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얕은 지식의 한 부분을 지껄인 것에 불과했다. 그 반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몇 날 며칠 몇 개월을 고뇌했다.

나는 이제 그 방법을 이렇게 제시한다. 지난 과거를 잊는다는 건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과거와 화해하여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핵심이 있다.

“용서하라” 과거에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 척박한 운명까지 모조리 용서해야 한다. 최후로 스스로 용서하지 못한 자신까지 용서해야 한다. 거기서부터 새로워지는 것이다.

과거에 매여 산다는 건 죽은 말을 타고 달리려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자신의 과거사에 대해 연민을 품고 애잔하게 바라보지 마라. 상처 없고, 오류 없고, 잘못 없는 흰 눈 같은 인생 그 누가 있으랴. 과거와 화해하고 용서하라. 마음속에 간직한 과거에 대해 분노를 품고 있으면 현재를 사랑하지 못하고 충실할 수도 없다. 과거에서 유용하게 얻을 수 있는 건 교훈뿐이다. 이제 그만 과거와 화해하라. 그리고 용서하라. 용서하지 않으면 청산도 되지 않는다. 이철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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