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故鄕)은 누가 지킬꼬?
  • 경북도민일보
고향(故鄕)은 누가 지킬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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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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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대학교
벤처창업학과
교수/경영학 박사

시월에 들른 가을, 결실이 익어가는 고향. 거기엔 어릴 적에 비 오면 자주 끊어지던 작은 다리와 구겨진 꼬부랑 도랑 길을 지나면, 정겨운 누른 황금 들판이 한눈에 펼쳐진다. 퍼즐 같은 동네는 감과 밤, 빨간 대추와 고추, 터질 것 같은 석류와 누렁이 호박들이 주렁주렁 열리고 있다. 동네 어귀에는 300년여 동안 수호신처럼 늘 고향을 지키는 키 큰 정자나무 위로 개 짖는 소리와 저녁연기가 반기고 있다.

곧 한가위(추석)이다. 고향, 이는 매번 듣기만 하여도 늘 설렘이 앞선다. 고향은 인간의 욕망추구에 필요한 가장 공통적인 추억의 밑거름이요, 성장과 행복의 중요한 촉매제요, 종종 나침반 같다. 어쩌면 중·장년 세대에게는 ‘고향과 어머니의 보따리’라는 단어가 이 험한 세상에 인간의 마음을 따뜻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 아닐까?.

‘고향의 봄’을 비롯한 수많은 노래와 시, 영화나 소설, 그림과 설화, 수구초심(首丘初心)과 금의환향(錦衣還鄕)과 낙향(落鄕), 귀향(歸鄕)처럼 고향을 주제(소재)로 한 테마들이 엄청난 이유이다. ‘고향 까마귀만 만나도 반갑다’고 할 정도가 아닌가? 이는 전통적으로나 세계적으로 시공간의 차이는 있어도, 고향을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는 이유는 모두의 조상과 부모, 친구와 고향산천 등 수많은 소싯적 추억의 공통점과 공감, 소통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들의 고향은 어떤가? 점차 우리들의 마음과 현실에서 벌써 고향이 사라지고 있지는 않은가? 고향마다 차이는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고향산천은 이미 축사(畜舍)나 전원주택, 시골별장, 공장 등으로 옛 정취는 거의 없어지고 있다. 각종 선거 때마다 난무하는 무책임하고 무분별한 지역균형발전과 농어촌 살리기 대안 등 공약(空約)정책의 남발(濫發로 온통 몸살을 앓고 있는 실정이다. 친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엄청난 농약 살포와 과거의 잘못된 정책 등으로 인해, 도랑에 가재나 다슬기, 피라미 등 자연생태계는 이미 파괴된 지 오래다. 우리들의 고향, 현재진행형 자연생태계와 사회풍속도(社會風俗圖)가 크게 바뀌고 있다. 마치 슬슬 녹고 있는 북극의 해빙(解氷)처럼.

필자의 고향도 마찬가지다. 경남·경북에 걸쳐진 3군(郡)의 경계선, 하늘 아래 첫 동네 같은 무한청정지역, 오지라 10여 호에 겨우 10여 명 옹기종기 사는 곳. 평균연령이 75세 이상이다. 지난 시대의 농어촌 탁상공론 정책들이 증오스럽다. 넘 아쉽고 개탄스럽다. 정부와 지자체의 어이없는 각종 정책과 작태(作態)들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참 어이가 없다. 어이는 맷돌 손잡이다. 이미 어이가 사라진 고향의 현실은 한평생 고향을 지키고 있는 어른들만 알 것이다.

유독 올해는 코로나 19로 인하여 더 썰렁하다. 지난 설날처럼 이번 추석도 고향방문을 자제하자는 캠페인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감염증 확산을 막기 위한 최선책의 공론화 영향이다. 자식과 가족은 물론 외지인(外地人)의 출입도 수시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마을회관은 이미 문이 닫혀 있다. 오죽하면 ‘이번에도 고향 오지 말거라, 너거나 잘 있거라!’를 외치는(?) 현수막과 노모(老母)의 영상이 있으랴?

이뿐만 아니다. 우리의 오랜 명절 전통과 문화관습, 제례들도 종교적인 의식행태와는 무관하게 이미 빛의 속도로 변하고 있다. 귀성행렬에 버금가는 역상경, 벌초와 성묘, 묘사(墓祀)의 대행(代行), 제례 방식의 큰 변화(모아지내기와 없애기 등), 급속한 농어촌 초고령화와 초저출산현상, 초중고 폐교의 증가추세가 주요 원인이다. 벌써부터 시작된 심각한 농어촌 공동화(空洞化)현상, 중장기적인 극약처방이 없다면 20~30년 이내에 분명히 우리의 고향마을이 곳곳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동안 무분별한 귀농·귀촌지원정책제도의 난무(亂舞), 현지인과의 갈등, 행정력의 오랜 관리부재와 무책임, 무관심, 무능력의 결과다. 이미 고향산천도, 시골인심도 크게 변하고 있다. 어디에 명쾌한 대책이 있는가? 없다. 어쩔 것인가? 그럼 이제 우리의 고향은 누가 지킬꼬?

지난해 필자가 방문한 독일과 일본의 사례를 보자. 독일의 작은 마을에는 중장기농촌정책 설계단계에서부터 공기순환시스템과 심지어 ‘독일 개구리 전용도로?(통로)’가 있다. 쾌적한 자연환경보존과 생태계보호정책시스템을 만들어 이미 시행하고 있다. 일본은 2006년 후쿠이현에서 고향세(기부금)에 대한 공론화를 시작했다. 고향사랑을 기치로 당시 아베 정부가 표몰이 선거운동으로 불을 지펴, 2008년부터 고향납세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일본 총무성 자료(2019)에 따르면, 지난 11년 사이 고향납세액이 5천127억엔(약 5조7천311억원), 건수가 2,322만 건으로 시행연도 대비 약 63배 증가하였다. 그들이 부러울 뿐이다.

고향세(故鄕稅)는 개인이 고향이나 후원하고 싶은 농어촌에 기부하면, 기부금의 일정 부분을 소득세(지방소득세)에서 환급해주는 제도. 즉, 기부금에 대한 세액공제 제도다. 한국의 <고향사랑기부제(고향세)>는 일본의 <고향납세제도>를 벤치마킹한 제도다. 이미 ‘100대 국정과제와 자치분권 로드맵의 30대 과제’로 선정되었다. ‘고향세’ 논의 시작 후 무려 10년. 이제야 국회 상임위원회(2020.9.22.) 문턱을 넘었다. 열악한 지방재정에 단비가 될지 관심이다. 현재 거주지를 제외한 모든 자치단체에 고향 사랑 기부금을 낼 수 있는 제도다.

‘고향과 어머니의 보따리’, 이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옛 고향의 정취들, 한 번이라도 더 가보고 싶은 고향이건만. 어쩌다 세상이 이 지경까지 왔는가? 가족과 형제, 부모와 자식마저도 생이별을 만드는 명절이 되었는가? 환경 친화를 무시한 채 눈앞의 이익과 욕심만 채우기에 급급한 악순환의 결과가 아닐까? 훤히 피어오르는 한가위 보름달처럼 늘 독자여러분의 건승을 기원한다. 다음 명절에는 가족사랑과 정을 모두가 듬뿍 나누기를 기대하는 맘 간절하다. 또 참고 기다려보자. 김영국 계명대 벤처창업학과 교수/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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