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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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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의 존재와 생존의 밤
Not at all

어느 한적한 밤의 텔레비전 세계. 부활의 김태원 씨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이런 말을 했다.

“뮤지션이니까, 요새는 뮤지션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박수 쳐줘야 해.”

그저 웃자고 한 말은 아니었고, 당연히 우습게 들리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예능의 본질은 웃음을 주는 데 있다. 그러므로 갖은 리액션이 그 말을 재빠르게 휘발시켜버렸다. 하지만 방송이 끝나고 나서도 내게 기억되는 건 바로 김태원 씨의 그 말이었다.

뮤지션이라고 하기에 다소 민망한 나는 간혹 이런 전화를 받을 때가 있다.

“신인 뮤지션 오성은 씨, XX기관에서 조사를 하고 있는데요, 올 한 해 활동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을까요.”

중요한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오래 통화할 수는 없었지만 짧은 시간이라도 응답하고 싶었다. 조사 내용은 이런 종류였다. 2020년에 얼마나 많은 공연을 했는가. 전혀요. 얼마나 많은 수입을 벌었는가. 전혀요. 얼마나 많은 음원을 제작했는가. 전혀요. 뭔가 불성실한 조사자가 된 듯하여 다른 답을 말하고 싶었지만 전혀라는 표현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Not at all. 그야말로 나의 현재를 나타내는 문장이었다.



생존의 밤

한 달에 한 번 음원 유통사에서 수익을 열람할 수 있는 링크를 보내준다. 나는 음원을 발매하고 초반 6개월 가량은 링크를 타고 들어가서 나의 노래가 몇 회나 재생되었고, 몇 번이나 다운로드 되었는지 확인했다. 누군가 내 노래를 듣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고, 적정 금액이 입금되는 일조차 신비로웠다. 그러나 대략 4개월이 넘어가는 시점부터는 급격히 조회수가 줄어들었다. 저작권료는 말할 것도 없다. 시장 논리에 의한 당연한 결과다. 하루에도 수천 개의 새로운 음원이 쏟아지고, 수백 명의 신인 뮤지션이 탄생한다. 그러니 더 열심히 음악을 만들어야 하고, 더 많은 활동을 해야 하며, 또한 나의 색깔을 찾아가는 게 중요한 과제로 남았다. 그래서였을까. 채널을 돌리다가 마주한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대화가 문득 서글퍼졌던 까닭이.

뮤지션이 생존하기 힘든 시대다. 언제는 그렇지 않았냐고 되물을 수도 있겠지만, 불행하게도 나는 음악이 음악으로만 들리던 시대를 지나쳐버린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럼 언제가 좋은 시대였냐고 되물을 수도 있겠지만, (또다시 불행하게도) 나는 그걸 알 도리가 없다. 그저 어느 날, 밤기운의 나른함을 날카롭게 베어내고 있는 한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의 현실적인 농담을 긍정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신의 알림

XX기관의 조사원은 내 대답들이 시원찮아 보였던지, 좀 단호하게 내가 왜 활동을 못 했으며, 왜 수입이 없었는지 물었다. 그게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인지도 함께 물어보았다. 나는 조사원의 권유하는 듯한 말투 때문에 순간적으로는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그렇게 대답하기 싫었다. 나는 뮤지션이 활동할 수 있는 무대가 많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길 위에서 노래하던 나를 돌아보면, 가당찮은 대답이다. 조사원이 뮤지션의 활동명을 물었을 때 기다리던 중요한 전화가 걸려왔고, 나는 나의 이름을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그러던 어느 밤, 김태원 씨의 농담 같은 그 말이 뮤지션의 생존 방식과 음원 수익과 공연의 현 실태를 상기시켰다. 아울러 다소 무성의하게 조사에 임했던 나를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조사원은 종일 나와 비슷한 부류에게서 비슷한 대답과 비슷한 한숨 소리를 들었을 것만 같았다. 일순간 나는 조사원에게 미안해졌다. 아니, 사실은 그 전화를 받는 동안에도 나는 제법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조사원이 빠르게 자신의 업무를 진행해나가면서도 중간중간 추임새를 넣어주었기 때문이었다. 수입은? 전혀요. (에구머니나.) 공연은? 전혀요. (아유, 참 그렇죠?) 제작은? 전혀요. (침묵.)

간혹 시간이 날 때면 나는 소식이 뜸한 몇몇 뮤지션을 검색해보고는 한다. 그들의 새 앨범이 나오면 문자나 메일로 소식을 전해주는 기능도 있어서 ‘알림신청’도 해놓는다. 언제 그 알림이 내게 도착할지는 알 수 없다. 뮤지션 역시 언제 자신이 앨범을 내게 되고 다시 활동할 수 있을지 몹시 궁금한 상태일 수도 있다. 희망의 상태로, 절망의 상태로. 그러나 김태원 씨의 말에 따르자면 뮤지션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박수를 받아야 한다. 누군가는 오늘도 당신의 알림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 오성은 작가(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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