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게 본보기가 되려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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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본보기가 되려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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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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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쯤 누군가 예천에서 출시되는 곶감 한 상자를 보냈다. 일면식도 없는 분이 보낸 귀한 선물이었다. 나는 무심코 선물 포장을 뜯어보았다. 그 안에는 곶감뿐만 아니라, 삶의 보람을 불러일으켜 준 선물들이 있었다. 보람이란, 간절히 원하는 한 가지에 무심코 집중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을 때, 다가오는 충만한 감정이다. 그 안에는 부천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시는 한 사범의 편지와 태권을 수련하고 있는 12명의 제자가 보낸 손편지가 있었다.

사범은 10년 전, 아이들에게 삶의 문법과 태도를 가르치기 위해서 태권도 지도자 길에 들어섰다. 2019년, 그녀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지도자 8년 차로 관원생이 100명 이상 되었고 나름대로 많은 대내외적인 성과를 이뤘지만, 자신이 원하는 만큼 초중등 제자들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도장에서는 수련생처럼 훈련하지만, 도장 밖을 나서면, 이길 수 없는 ‘괴물’과의 대결에서 항상 완패했다. 바로 휴대폰과의 1대1 대결이다. 도장에서 1시간 수련하여 몸과 마음을 정성스럽게 닦았지만, 도장 밖에선 그 조그만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게임이 그들의 눈, 손, 온몸, 정신, 그리고 영혼을 삼켜버렸다. 이들은 이 작은 기기 안에 숨어있는 주인에 더 충실하게 복종하기 위해, 약간의 건강이 필요했다. 태권 수련이 그런 건강을 유지시켜주었다.

집중과 훈련은 온전한 인간이 되기 위한 두 가지 기둥이다. 불행히도 현대인들은 자신에게 감동적인 분야를 찾지 못해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정신적인 방랑자로 떠돌고, 인내를 가지고 그 분야를 반복하여 자신만의 기술과 아우라를 도출시키지 못한다. 우리 시대 이 두 가지를 방해하는 요소는, 지난 50년 전부터 현대문명과 문화를 재편한 스마트폰, 인터넷, SNS다. 스마트폰은 이 어린 수련생들뿐만 아니라 남녀노소를 막론하여 그 누구도 몇 초 만에 KO 시킨다. 아니 사람들은 처음부터 대련할 생각이 없다. 그 안에 장착된, 혼을 빼놓는 절대자 앞에 바로 무릎을 꿇는다.

사범의 고민은 이것이다. 제자들에게 발차기와 손 뻗기를 넘어서, 그들의 삶에 고삐를 채워, 매일 매일 자신이 원하는 인간이 되기 위해 정진하는 삶을 마련해 주고 싶었다. 사랑하는 제자들이 휴대폰에 무참히 패배하는 것을 보고 휴대폰보다 더 강력한 무기를 준비했다.

바로 ‘독서’였다. 그녀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독서를 통해 마음속에 영원히 머무는 스승을 갖게 되면, 또한 자신에게 리더인 사람이 되면, 외부 스승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지속적인 변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녀의 영감은 간결하고 강력하다. 교육의 내용과 목적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그녀의 말대로, 유튜버, 건물주, 아이돌이 꿈인 아이들에게, 아니 어른들에게도,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독서다. 독서는 좋은 글을 통해, 자신을 가만히 돌아보는 정신적이며 영적인 훈련이다.

사범의 새로운 독서 시도는 무엇보다도 자기-확신이 필요했다. 성공적으로 도장을 잘 운영하고 있는데, 제자들의 독서까지 챙겨야 하나! 그녀는 제자들에게 최고의 선물을 주기로 결심했다. 태권도를 통해 건강한 신체(체)를, 인성교육을 통해 훌륭한 인격(인)을, 그리고 독서 교육을 통해 지적인 능력(지)을 지속적으로 펼치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위한 착한 마음씨를 실행에 옮기는 것으로 새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그녀가 떠올린 ‘체인지’ 교육은, 젊은이들을 위한 고전교육 프로그램인 ‘서브라임’의 철학 ‘체덕지’ 훈련과 일치한다. 그런 정결한 결심은 지극히 사적이지만 지극히 보편적이고 우주적이다. 누구든지 자신의 깊은 마음속에서 건져 올린 숭고한 생각은 ‘보화’(寶貨)다. 그 보화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귀중하고, 그 의도가 선하기 때문에 찬란한 빛을 낸다. 신은 언제나 그런 인간의 깊은 고민과 그 고민을 해결하려는 자비로운 마음에 응답한다.

몸을 훈련하지 않는 인격은, 오래가지 않고 말장난으로 끝날 소지가 농후하다. 몸을 훈련하지 않는 지력은, 머리만 큰 기형아로 변모하여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고 자신의 이익과 쾌락을 증진하기 위한 이기적인 괴물로 변형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 주위의 태권도장을 코로나 시대, 새로운 교육 혁명의 거점으로 삼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사적인 결심은 대한민국 모든 태권도장의 밝은 미래를 보장하는 거룩한 씨앗이 될 것이다.

그녀는 2020년 1월부터 독서클럽을 시작했다. 그 성과는 태권도를 통해 몸과 마음 수련을 온전히 잡아주는 튼튼한 기반이 되었다. 1년 동안 기적이 일어났다. 코로나 덕에 제자들 반이 도장에서 떨어져 나갔지만, 24명의 제자를 데리고 집중 독서 교육까지 병행하기 시작했다. 제자들은 독서에 재미를 느끼게 되고 주중뿐만 아니라 주말까지 독서삼매경으로 진입했다. 아이들은 아침 7시에 도장에 나와 청소를 하고 책을 읽고 일요일에는 7시간 이상 독서에 심취하기도 했다.

그녀는 놀라운 변화를 내게 말했다. 집중력이 좋아지니, 태권도 기량도 일취월장하게 됐다. 초등 6학년 학생의 이중 뛰기(줄넘기 쌩쌩이) 기록이 715개로 치달았고, 7살 초등 학생 기록도 300개에 이르게 됐다. 생각이 변하면, 몸이 간결해진다. 줄넘기를 위해 가장 단출한 복장과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에서 군더더기를 벗겨내기 시작했다.

사범은 이렇게 말한다. ‘스마트폰은 저절로 정리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SNS 앱, 게임 앱을 삭제하고 유튜브 구독을 취소하게 됐다. 스스로 휴대폰 관리 앱을 설치하고 자신의 활동을 관리하고 관찰하게 됐다. 온전한 하루를 살기 위해, 취침 시간과 기상 시간을 조절하고, 개인톡을 안 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사범님의 편지를 읽으면서, 과연 그런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새벽 5시에 부모보다 일찍 일어나 독서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에 5~6시간, 주말에 10시간 독서에 몰입하여 매일 매일 성장하는 아이들이 되었다. 그녀는 그런 변화하는 제자들을 보며, 자신을 대한민국에서 가장 행복한 관장이며, 하늘이 보내주신 선물을 소중히 키우겠다고 다짐한다.

사범은 스스로 변화가 되어 주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따라 오도록 감동을 주는 존재다. 나도 그런 사범이 되고 싶다. 사범이 필자의 책 과 을 모두 필사하여, 제자들에게 그 마음을 전달하니, 제자들도 이 책들을 모두 필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범 말로는, 한 문장도 쓰지 못하던 아이들이었는데, 내게 보낸 편지는 간결하고 훌륭했다. 아이들이 1년 독서를 마치고 손글씨로 쓴 12통의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들은 가르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그리고 보람이란 것이 얼마나 좋은지를 알려주는 보물이다.

나도 그런 사범이 되고 싶다. 사범이란 스스로 본보기가 되는 사람이다. 나는 그녀와 같은 스승인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사범은 무엇을 가르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다. 특정한 분야의 지식을 전달하는 ‘선생’ 이상이다. 사범은 자신에 ‘어둠’의 구석이 있는지 끊임없이 제거하려고 노력하는 자다. 그 진심은 제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어 존경을 얻는다. 나는 지식의 전달자인가? 아니면 자신의 잘못을 깨우치고 매일 매일 조금씩 정진하는 사범인가?

배철현 고전문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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