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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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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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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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음악에 대한 단상
오성은 작가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지극히 은밀하고 사적인 전류
한 해를 마무리하는 즈음이면 거리마다 캐럴이 들려오곤 했는데, 이젠 그마저도 생경한 풍경이 되었다. 소음에 대한 인식 변화나 저작권 문제만 살피더라도 음악이 들리지 않는 원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나의 흥미를 이끄는 건 곳곳에서 개인적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다. 거리에서, 지하철 의자에서, 에스컬레이터에서, 백화점 소파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자세로 이어폰을 낀 채 휴대전화 액정을 들여다보고 있다. 나 역시도 산책이나 조깅 중에는 콩나물 대가리(음표를 낮잡아 부르는 말)라는 별칭을 가진 블루투스 이어폰을 착용하고선 AI가 판단하여 선곡한 음악을 스트리밍하고 있다.

휴대전화 액정은 사각형이고, 날카로운 경계(프레임)를 짓고 있어, 퍼블릭 스페이스에서의 프라이빗한 환상을 만들어낸다. 이는 1895년 12월 28일 한 카페에서 뤼미에르 형제가 상영한 최초의 영화보다는 에디슨이 1891년 고안한 영상기 키네토스코프에 가깝다. 극장에 모여앉아 영화를 보는 방식보다 4년 전에 개발된 혼자 보고 듣는 이 시스템이 영화의 정체성을 뒤흔들지도 모르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음악은 이제 함께 들어야 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어진 듯 하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전류는 지극히 은밀하고, 동시에 만족감을 전달한다. 공연이 아닌 이상 음악은 혼자 들어도 충분한 것이 되어버렸다.



리듬이 되다

그러나 라이브 콘서트나 뮤지컬이 아닌 스튜디오 음원이라 해도 분명 거리에서는 다른 구석이 있다. 노이즈캔슬링 기능을 갖춘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맑고 깨끗한 감상을 선사한다. 뮤지션은 오직 나를 위해서만 열과 성을 다하고, 외부에서는 내가 어떤 음악을 듣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제아무리 은밀한 기쁨이 음악을 개인의 영역으로 만들어버린다 해도 내가 의도하지 않은 순간 거리에서 마주한 어느 음악 앞에서는 틀리다. 기어코 발걸음은 느려지고, 심지어 흐려지고야 만다. 이를 사진미학적 용어인 푼크툼이라고 바꿔 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돌연 나타나 나를 찌르고, 멈춰 세우고, 사라지게 만드는 그 마법. 그런 순간은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느껴봤음직한 몽롱한 경험이다.

나는 그 순간을 사랑한다. 고백하자면 내게 음악은 방 안에서의 안락함 쪽이 아닌, 거칠고 난잡하고 시끄러운 소음 사이에서 불쑥 솟아오르는 하나의 빛이었다. 그런 음악이 내 발걸음에 새겨져 있기에 나는 여전히 내 삶의 방향을 모른다.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서성이고, 헤매고, 망설이기 일쑤다. 그러면서도 나를 찾아온 거리의 음악이 여태 나를 두드리고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 음악이 내일을 향해 걸어가게 만든 리듬이 되었다는 것도.



너의 목소리가

나를 스쳐지나간 소리들은 대체 어디로 다 가버린 걸까. 나는 어떤 음악도 흐르지 않는 한적한 도시를 걸으며 내가 지나쳐버린, 잃어버린 건지도 모르는 음악들을 떠올린다. 그 음악이 내게 닿았다면 음악도 나를 기억할 것이다. 음악은 기본적으로 그러한 속성을 가졌다. 내가 당신을 잊었다고 해서, 완전히 잃어버린 건 아니듯. 혹 잃어버렸다 해서 잊었다고 단정할 수 없듯.

올해 나를 찾아온 음악을 떠올려본다. 나를 통과한 음악을 되새겨본다. 내게 부딪혀 휘어진 음악과 나를 두드린 음악과 응답받지 못한 음악과 잠시 머물다 간 음악을 더듬어본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이렇게 흘러가는 대로 사는 거라고 한 음유시인은 노래하고, 나는 그 노래마저 흘러갈까 두렵지만, 흐르는 대로 사는 수밖에. 바람은 도처에서 불어오고, 여기에 내가 놓친 음악이 있을까 귀를 기울인다. 가끔은 당신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같다. 오성은 작가.(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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