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마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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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마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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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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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포항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개막한 ‘2022 포항음악제’의 개막 공연을 보러 오랜만에 공연장을 찾았다. 지난해 11월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리는 국내외 최상의 아티스트들이 펼치는 수준 높은 클래식 음악을 향유 할 수 있는 기회라 많은 시민들이 함께 했다. 이번 음악제의 주제가 지난해 ‘기억의 시작’에서 ‘운명, 마주하다’로 한층 심오한 의미가 함축된 듯 절망의 연속을 헤매는 포항시민들에게 위안과 평온을 안겨 줄 시의적절한 주제라 가슴에 와 닿는다.

국내외에 불어 닥친 경제위기에다 태풍 ‘힌남노’의 직격탄으로 수많은 재산과 인명피해까지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엄청난 재해를 입고 있는 우리 지역에서 마주한 엄혹한 운명(運命)을 어떻게 이겨 나갈 수 있을지 혼란스럽고 암담하기만 한 시간에 때맞춰 찾아 준 포항음악제라 사뭇 기대가 컸다.

지난해 이어 이번에도 예술감독을 맡은 자랑스런 ‘포항의 딸’, 세계적 첼리스트 박유신이 고향 시민들의 쓰린 가슴을 어루만져 줄 수 있기를 갈망하는 바람과 함께 아름다운 선율과 멋진 노래로 이 가을밤을 수놓아 주었으면 정말 고맙고 좋을 것 같았다.

개막공연에서 포항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에 맞춰 테너 김재형이 부른 연가곡 ‘방랑하는 젊은이의 노래’가 공연장 객석을 꽉 채운 청중을 사로잡으며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져 그간의 시름을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인터미션(중간휴식)후 시작한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 ‘운명’이 연주되었다. 워낙 유명한 곡이기도 하지만 귀에 익은 곡이어서 금새 빠져든다. 콘서트마스트인 이유라 수석연주자의 움직임에 따라 60여 명 연주자들의 일사불란한 손놀림으로 심장을 두드리는 웅장함이 연출되고 청중과 연주자들이 하나 되는 ‘운명’의 심해(深海)를 향한 항해가 시작되었다.

30분을 넘기는 긴 호흡 끝에 클라이막스 연주가 끝나자 숨죽이며 몰입하든 객석에서 기립박수와 ‘브라보’ 연호가 터져 나왔다. 시원하고 후련했다. 가슴 한 켠에 응어리졌던 암울함이 휑하니 빠져나간다. 이번 포항음악제는 13일까지 일주일 동안 다채로운 프로그램과 함께 세계 정상급 아티스트들과 국내 실내악의 최고 연주자들이 포항시민들에게 클래식의 진수를 보이는 값진 무대와 시간으로 채워져 있다. 한 때는 문화의 불모지로 불리기도 한 우리지역에 문화도시의 옷을 입히고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되고 있음에 시민의 한사람으로 뿌듯함을 느낀다. 또한 문화 욕구에 목말라하는 시민들에게 포항음악제가 큰 위안이 될 수 있음에 반가울 따름이다.

작금에 밀어닥친 ‘포항의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 나갈 혜안으로 이번 공연에서 보여준 ‘하모니(Harmony-화합)’의 중요성이 더욱 돋보이고 배워야 할 교훈인 것 같다. 지휘자가 없어도 콘서트마스트가 함께 연주하며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전체를 이끌어 가고 있는 모습에 진한 감동을 받았으며 세 차례 정도의 연습만으로 완벽한 조화를 만들어 낸 연주자들의 강한 내공(內功)이 시사(示唆)하는 바가 컸다. 장시간의 연주에도 한 치의 불협화음도 없이 청중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가는 연주에 매료 될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하나로 뭉쳐 한곳으로 나아가는 정신이야 말로 갈등과 반목으로 점철된 포항사회가 배워야 하고 모처럼의 하모니를 깨트리는 모난 짓은 모두를 위기에서 구하지 못함을 자각하여야 할 것이다. 또다시 갈등을 부추기는 모습들이 보기에 민망하고 격조 높은 포항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제는 한 단계 뛰어 넘어 엄청난 피해를 입은 포스코를 비롯한 기업들과 침수지역의 복구에 모두가 전념해야 할 때다. 네 탓, 내 탓 할 때가 아니다. 잘잘못은 정상화 이후의 일이다. 마주한 ‘운명’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길만이 살길이다.

어려울 때 음악제를 열어 시민들에게 위안을 주고 화합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준 박유신 예술감독을 비롯한 ‘2022 포항음악제’에 참여 해준 여러 아티스트들과 공연관계자 그리고 후원자 모두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김유복 포항사회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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