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 공격 (microaggressions)*
  • 김희동기자
미세 공격 (microaggressions)*
  • 김희동기자
  • 승인 2023.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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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희 수필가
김지희 수필가

올봄 옥상에 작은 텃밭을 만들었다. 배초향을 옮겨 심고 딸기 모종과 방풍나물이며 멸가치, 삼잎국화, 들깨를 심었다. 한 뼘 한 뼘 커가는 것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제법 채소입네 한다. 딸기가 제 몸이 휘어질 만큼 열매를 맺었다. 들깨는 손바닥만 한 잎들을 달았다. 나의 옥상 채소는 먹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관상용이다.

옥상 텃밭이 밤사이 공격을 당했다. 들깻잎은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뚫렸고 딸기는 군데군데 파먹혔다. 어제 아침만 해도 탐스럽던 딸기의 몰골은 일그러지고 상처가 곪아가고 있었다. 커다란 잎사귀 속에 숨어 익어가는 딸기를 새들이 찾아서 먹은 건 아닐 터, 어쩌면 벌레들이 저녁 만찬을 한 게 아닐까 하여 이리저리 잎들을 들춰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살이 통통하게 오른 초록 애벌레 한 마리가 딸기이파리를 샐러드처럼 사각사각 먹어 치우고 있다. 보호색으로 무장한 포식자의 무지막지한 공격에 줄기만 남은 딸기는 말라 죽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저자 ‘데럴드 윙 수, 리사 베스 스패니어만’의 <미세공격>은 공격의 피해가 작다는 말이 아니다. 미세 공격은 인종뿐만 아니라 여성, 장애인, 빈민, 성 소수자와 같이 주류에서 벗어났다는 잣대로 차별하는 행위를 말한다. 가해자는 자신들이 가하는 공격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약자에 대한 오만한 편견으로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피해자는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할 수조차 없게 된다. 예를 들면 똑같이 일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힘든 일에서 배제하거나, 장애인을 배려해서 그 일에서 소외시켰다면 이는 여성과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미세공격인 셈이다.

우리 삶에서도 일상에서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시나브로 타인의 삶을 무너뜨리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사람이 무심히 던진 돌을, 무고한 개구리가 매일같이 맞고 있다면 개구리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죽게 될 것이다. 가해자가 한 행동이나 말로 상대방은 피해를 보았지만, 가해자는 가해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기에 피해자는 억울할 수밖에 없다. 피해자가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편견과 차별에 대해 가시화하기 어려운 것은 가해자가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저지르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공격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미세공격은 얼핏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지인 중에 대학생이던 이십 대에 류머티즘성 관절염 진단을 받고 오랜 시간 병마와 함께 지내는 사람이 있다. 계절이 오가는 감나무밭 한 모서리에 작은 집을 짓고 명상과 차를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 꺾이고 비틀리고 휘어진 손가락이며 관절 마디는 보는 것만으로도 쓰리고 아픈데, 지천명이 넘도록 그 고통이 오죽했을까.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면 가끔 찾아가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차를 마시기도 한다. 그럴 때면 불편한 몸이 힘들지 않을까, 내 나름에는 배려한다고 한 무심한 행동들이 그에게 큰 상처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무거운 것은 들지 못하게 뺏듯이 받아 든 일이며, 어쩌면 독선적인 편견으로 침묵할 수밖에 없는 차별적 미세공격을 가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는 성차별이 심했다. 집에서는 딸이라는 이유로 학업을 포기해야 했고, 직장에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아야 했다. 나는 위로 언니와 아래로 남동생이 둘이다. 그렇다 보니 부모님은 당연한 듯 나에게만 대학 진학을 만류했다. 며칠 동안 단식까지 하며 눈이 퉁퉁 붓도록 주먹 울음을 울었다. 입을 빼물고 아무렇지 않은 척 은행에 입사하였지만, 직장에서도 여성에 대한 차별은 여전하였다. 근무 기간이 같은데도 성별에 따라 직급과 급여에서 차이가 났을 뿐 아니라 승진에서도 차별대우했다. 남성은 자신의 정장을 입고 편한 구두를 신었으며 결혼해서도 직장을 다닐 수 있었지만, 여성은 유니폼에 굽이 있는 힐을 신어야만 했고 결혼과 동시에 퇴사해야 했다. 집과 직장, 우리 사회에서 공공연하게 가해진 여성에 대한 차별적 미세공격을 당해야만 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먼지로 대기 중에 떠다니는 미세 먼지는 사람의 건강을 위협한다. 장기간 노출되면 면역력이 저하되어 호흡기는 물론 심혈관, 피부질환, 안구질환 등 각종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미세공격도 마찬가지다.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가해자의 편견과 차별로 인한 공격은 누군가의 삶을 위협할 만큼 날카롭고 치명적일 수 있다. 의도적으로 한 말이나 행동이 아니라 하더라고 상대가 모욕감이나 수치심, 적대적인 감정을 느끼면 미세공격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가해자가 자신의 결백과 순수함을 주장하며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면 그 위협은 피해자의 삶을 자신의 잣대로 함부로 꺼두르는 것이 아닐까.

옥상 텃밭을 지키기 위해서 애벌레의 공격을 막아야 했다. 악의가 없다 하여 방관하게 된다면 가해자의 미세공격을 방관했을 때 약자의 삶이 무너지는 것처럼 며칠 못 가 낙숫물에 바위가 뚫리듯 텃밭은 초토 될 것이 자명한 일이다.

애벌레를 나무젓가락으로 잡아 집 앞 공원의 풀숲에 던졌다. 초록 풀잎에 얼른 몸을 숨긴다. 애벌레의 몸짓이 나비로 날아오르려는 기도일지라도 나의 텃밭을 공격하는 그들은 지금, 제거의 대상이다. 옥상 텃밭의 기운이 다시 건강하고 싱싱하길 바라며. 김지희 수필가

*『미세공격(삶을 무너뜨리는 일상의 편견과 차별)』, 데럴드 윙 수, 리사 베스 스페니어만, 다봄교육, 2022. 12. 27. 책 제목에서 따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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