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은 종교에서도 자주 언급된다. 구약성경 `여호수아’에 나오는 구절이 일례다.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시쳇말로 여호수아는 `새벽형 인간’이었던 모양이다. 날마다 새벽을 열고 기도에 힘쓴 이 지도자는 마침내 모세를 대신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
우리나라 헌정사엔 수많은 구호들이 명멸했다. 그 가운데 압권은 `못살겠다 갈아보자’라고 생각한다. 자유당 독재정치에 마침표를 찍자는 호소가 절절이 가슴에 와 닿는다. 정치의 새벽은 민주화였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부르짖고 다닌 사람은 야당투사 김영삼이었다. 그는 마침내 `새벽 대통령’이 됐다.
민선4기 김관용 경북호의 도정(道政) 구호가 선정됐다.“새벽을 여는 경북· 일자리가 있는 경북”이다. 흔히 구호에 감초처럼 들어 있는 `영광’이니 `위대’니 하는 표현은 없다.대신 부지런히 일해서 잘 살아보자는 서민형 염원같은 게 느껴진다. 옛날부터 우리는 새벽을 사랑하는 민족인 것같다. “동창이 밝았느냐/노고지리 우지진다/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니.” <南九萬>
인용하다보니 50일 가까이 파업하고 있는 포항지역 건설노조원들이 생각난다. 일거리가 산더미처럼 쌓인 일자리를 놔두고도 그들은 새벽의 근면을 잊었고 또 잃었다. 한푼 벌이도 없는 지가 어느덧 두 달이 다 돼간다. 그들은 왜 발목이 잡혀 있는 것일까.
/김용언 논설위원 ki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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