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고도 경주가 불길에 그을려 흉물스럽게 변모해가고 있다. 시가지 주변 곳곳에 불에 탄 나무들이 널려있어서 하는 소리다. 발길이 머물고 눈길이 닿는 곳곳이 이 모양이다. 이를 지켜봐야 하는 사람들의 가슴속마저 숯덩이가 돼버리는 느낌이다. 그것도 지금은 나무마다 짓푸른 아름다움이 한창이어야 하는 계절이 아닌가. 명승고적지와 불탄 숲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경주시가 이렇게 볼썽사납게 돼버린 것은 산불 탓이다. 올 들어서만도 무려 13차례나 산불이 일어났다. 불탄 산림이 80.48㏊나 된다. 지난 10일엔 국가지정문화재인 강동면 양동리 일대 고옥들이 하마터면 잿더미가 될 뻔하기도 했다. 이뿐인가.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만치 사례는 많다. 천년고도에서 모처럼 여유롭게 쉬면서 재충전하려던 관광객들의 실망이 얼마나 클 것인가. 산불 위험에 쫓겨 긴급대피하는 경험까지 하게 되면 관광고도의 이미지는 최악 상황으로 내몰리게 마련이다.
경주시는 산불이 경주에 입힌 피해를 14억 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했다. 당국의 피해 추정액이 이렇다면 그 실질 피해 규모는 그보다 몇 갑절이 될지, 몇 십 갑절이 될지 모를 일이다. 피해 규모를 추정치일망정 크게 줄이는 잣대를 쓰지 않는 당국이 있던가. 기록용 이상의 의미는 없는 수치다. 피해는 이토록 엄청나지만 그 원인은 담뱃불, 논두렁 태우기 따위로 말미암은 실화가 대부분이다. 다른 지역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유달리 산불 피해가 많은 올해 크고 작은 산불 원인의 축소판을 경주에서 보고 있는 셈이다.
산불이 많이 일어나는 기초지자체는 그에 합당한 문책을 하겠다는 게 경북도의 경고였다. 으름장과 호통소리만 컸달 뿐 실제로 문책 당한 지자체가 있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경북도나 지자체나 할 일을 다하지 않는다는 이야기 말고 또 무엇이 있을까 싶다.
단속과 문책을 들먹이기에 앞서 사람의 주의와 협조가 더 필요하다. 주민이건, 관광객이건 담뱃불, 논두렁 태우기가 산불로 번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올해는 유달리 가뭄이 장기화하고 있다. 엊그제 비가 내렸다하나 때 이른 무더위를 한풀 꺾는 데나 도움이 됐을 뿐이다. 이런 때 일수록 불붙은 담배꽁초 조심, 바람 부는 날 불티 날아다닐 작업 안하기는 상식이다. 산물은 바람이 없어도 펄펄 날아다니며 번지는 게 속성이 아닌가. 작은 일을 지켜 경주를 살리는 일에 누구나 함께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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