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윤 환 (컬럼니스트)
황석영은 `장길산’의 작가다. 왕조시대 민초들의 애환을 실감나게 그리고, 서민들의 반 봉건 항쟁을 미화한 진보작가다. 1989년부터 1991년간 다섯 차례 밀입북하고, 일곱 차례 김일성을 친견한 뒤, 25만 달러를 받기까지 했다. 좌파-친북주의자다. 사법처리를 피해 외국을 전전하다 감옥살이도 했다. 그렇지만 그가 뚜렷한 전향의사를 밝힌 적이 없다.
그는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도 반(反) 이명박 진영에 섰었다. 시민단체들을 끌어 모아 이명박 후보를 `부패연대세력’이라고 비난하는 비상시국선언문을 낭독한 장본인이다. 그런 모습을 기억하는 국민들은 아직 많다.
그런 황 씨가 갑자기 이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에 동행했다. 나아가 수행기자들과 만나 “큰 틀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같이 한다”고 했다. 또 “현 정권을 보수우익이라 규정하나 이 대통령이 중도적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는 봤다”고 말했다. “물밑에서 현 정부에 대한 충고와 조언을 하고 있다”고도 했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진보 좌파에 확실한 지분이 있는 황 씨의 가세가 큰 힘이 될 터이고, 진보 좌파측으로서는 기둥뿌리가 하나 뽑혀져 나가는 고통을 느낌직 하다.
황 씨는 진보 좌파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미국이나 유럽 좌파가 많이 달라졌다. 옛날에는 파이를 키워 부스러기를 나눠주겠다는 게 보수라면, 진보는 분배와 평등인데 세계가 비정규직, 청년 실업에 직면해 있다. 고전적 진보로는 경제문제를 풀 수 없다“고 단언했다. 또 ”민노당은 노동조합 정도에서 멈춰 있다”고 비판했다.
진보세력에게 `성역’처럼 된 `광주 문제’에 대해서도 황 씨는 “`광주사태’가 우리만 있는 줄 알았는데, 70년대 영국 대처정부 당시 시위 군중에 발포해 30~40명의 광부가 죽었고 프랑스도 마찬가지”라며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사회가 가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광주’와 진보세력들이 자지러질듯 황 씨를 비난한 건 말할 것도 없다. 진보 논객인 진중권 중앙대 객원교수는 황 씨를 `금붕어’라고 직격했다. “기억력이 2초에 불과한 하등동물”이라는 의미다. 민노당은 황 씨가 `광주사태’라는 표현을 쓴 것과 관련, `광주항쟁’을 어떻게 `광주사태’라고 말하고, 유럽도 다 겪은 일이라고 망발을 늘어놓을 수 있나”라고 비난했다. 민노당은 황 작가가 5월 광주의 아픔을 다룬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명저’를 남겼다는 사실까지 인용했다.
진보 좌파들의 비난은 당연하다 치자. 촛불시위로 정권붕괴 직전까지 몰고 갔던 진보 좌파들로서는 `정신적 지주’였던 황씨의 이탈은 `진보의 붕괴’로 여겨졌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 씨의 `전향’에 좌파뿐만 아니라 보수세력까지 발끈하고 나섰다는 데 문제가 있다. 대표적 보수 논객인 소설가 복거일 씨는 “좌파 정권에서 황석영 씨는 대우를 받은 사람이다. 좌파 정권에서 핍박 받은 이문열씨는 책 장례식까지 당했다. 이문열 씨를 제쳐놓고 갑자기 황 씨를 데리고 가면 우파 시민은 어떻게 보겠냐? 고생해서 대통령 만들었는데 이게 배은망덕 아니냐”고 비난을 퍼부은 것이다. 복 씨는 “확고한 기반인 우파의 지지를 잃게 되는 결과가 나온다”고 경고했다.
<조갑제닷컴>도 “대체 황씨와 이 대통령의 공통된 인식은 무엇인가? 어떤 공감대를 가지고 있기에 중앙아시아까지 동행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한 뒤, “황씨가 어느 날 갑자기 전향한 것인가? 아니면 이대통령이 속고 있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누가 됐건 소신과 노선이 오락가락하면 신뢰를 얻기 어렵다. 특히 황 씨 같은 `확신범’이 아무런 사전 설명조차 하지 않은 채 느닷없이 친북, 좌파에서 보수 우익이 아니라도 `중도’를 표방하면 주변사람들이 의아해 하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한번 소신을 바꾸면 또 언젠가는 그 소신을 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다.
다만 황 씨는 용산 철거민 사태에 대해 “정부가 잘못했다”고 분명히 지적했다. 또 이 대통령의 PSI 참여계획 유보도 “옳은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그렇다. `전향’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자리에서도 올곧은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다. 황 씨라면 이 대통령에게 자리와 기회를 가리지 않고 `고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황 씨의 역할을 기대해 본다. `보수’도 잠시 인내하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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