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복원에 내 한지 쓰여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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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복원에 내 한지 쓰여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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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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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경북도중요무형문화재 한지장 김삼식씨  
돈없어 밭 갈아 자연풀 사용
전통 지켜올 수 있던 비결로
 
문경에서 전통방식대로 한지를 만드는 경북도 무형문화재 한지장 김삼식(67) 씨가 닥나무 껍질을 긁어내는 시범을 보이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을 만드는 데 내 종이가 들어간다고 하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릅니다.”
 경북 문경시 농암면 내서리의 자택에서 만난 경북도중요무형문화재 한지장 김삼식(67) 씨는 문화재청이 조선왕조실록을 복원·제작하는 데 그의 종이를 사용하기로 한 사실에 들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문화재를 복원에 자신이 만든 종이를 사용된다는 것은 전국에서한지를 만드는 사람 가운데 그가 최고란 평가를 받은 셈이기 때문이다.
 “나는 옛날 그대로 만드는 것밖에 모릅니다. 문화재청에서 전국의 한지 만드는 사람을 찾아다니며 몰래 조사했다고 하더라고요.”
 빠른 길 대신 바른 길을 택한 장인에게 이런 명예는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그는 화학약품으로 닥나무 껍질을 녹여 만든 이른바 `개량한지’가 `전통한지’로 팔리는 현실 속에서도 전통 한지 제조방식을 고수하는 얼마 되지 않는 장인중 한명이다.
 1년생 닥나무를 채취해 삶아 껍질을 벗기고, 벗겨 낸 껍질에서 다시 겉껍질을 제외한 백피(속껍질)만 빼내 잿물에 삶고 두드려 물에 씻고, 닥풀을 섞어 종이를 뜨는 방식으로 제작되는 것이 전통한지.
 그러나 최근 한지를 만드는 사람 가운데 상당수가 백피를 만들 때 칼로 긁어내는 대신 화학약품을 써서 겉껍질을 녹이는 방식을 쓴다. 이렇게 하면 작업이 훨씬 쉬워지고 손으로 제작할 때 드는 인건비가 950만원이라면 약품으로 제작하면 25만원에 불과해 훨씬 줄어든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한지는 질기지도 않고 오래 보존되지도 않는다.
 생산원가를 낮추고 쉽게 제작하고자 닥나무 껍질 대신 수입한 펄프를 사용하거나 중국산 닥나무를 쓰기도 하고, 양잿물이나 화학풀을 쓰는 한지공장도 많다.
 이렇게 만들어진 한지가 인사동 같은 곳에서 전통이란 이름으로 팔리고 있지만 김씨에게는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김 씨는 “화학약품으로 녹이는 건 진실된 것이 아니다. 전통한지와 개량한지는 구분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 씨는 아버지를 여의고 생계를 꾸리기 위해 열 살 때부터 종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돈이 한 푼도 안 들어가도 종이를 만들 수 있어요. 닥나무를 외상으로 사서 몸으로 만들면 되거든. 종이 팔아서 이듬해에 닥나무값 주고. 그때도 이미 약품을 쓰는 데가 있었는데 양잿물도 돈 들어가서 안 썼어. 풀도 돈이 없어서 밭 갈아서 자연풀을 썼고.”
 돈이 없어 화학약품을 쓰지 않은 것이 결과적으로 전통을 지켜올 수 있었던 비결이 된 셈이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오토바이를 타고 전국을 누비며 한지를 팔아야 했던 그는이제 일일이 돌아다니지 않아도 전국에서 손님들이 찾아오는 유명한 장인이 됐다.
 한지 수요가 많지 않아 힘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한지가 장례에 많이 쓰인다. 굶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한지는 1년 중 석 달 정도밖에 만들 수 없다.
 더워지면 원료가 상해서 만들 수 없어 서리 내릴 때부터 3월 초까지만 만든다. 추울수록 질은 더 좋다.
 기껏해야 하루에 200장 정도밖에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연간 생산되는 한지가 2만장에 불과하고 그만큼 대량 생산되는 개량한지보다 비싸지만 그의 장인정신을 아는 고객들은 꾸준히 찾아오고 있다.
 그는 “돈이 안 되기 때문에 숙맥이나 한지를 만든다”며 자신을 낮췄지만 그 속에는 바보처럼 묵묵히 전통의 맥을 이었다는 자부심도 가득했다.
 경상북도는 이런 김 씨의 기능과 정신을 아껴 2005년 무형문화재 한지장으로 지정했고, 타지에서 직장생활하던 아들 춘호(35) 씨도 수년 전에 귀향해 대를 잇고 있다.
 김 씨는 “자식이 오지 않았으면 버티지 못했다. 지금까지 이렇게 알려진 것도 아들 덕분”이라며 “나는 성공했다”고 말했다.
문경/윤대열기자 ydy@h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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