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ian)
트위터 바람이 거세다. 드디어 대통령까지 트위터하기에 이르렀다. 국민과 직접 소통해보겠다는 의향인 모양인데, 명분은 그럴듯하다. 결국 이 땅의 지도자들은 국민과 소통이 부족해서 직접 소통이 안 돼서 백성의 심사를 잘 헤아리지 못했다는 말인가?
언제부터인가 `소통’이 대한민국의 화두가 되었다. 헌데 이 소통이란 단어가 참 요상하게 쓰인다. 상대가 자신의 말을 안 들으면 소통 부재란다. 대통령이 직접 라디오에 나와 국민을 상대로 담화인지, 하소연인지, 교육인지 모를 애매모호한 소통을 시도하다가 그마저도 시들해지자 아예 트위터를 들고 나섰다.
트위터 못하면 국회의원 자격 미달이라도 되는 양 너도나도 트위터에 나섰다. 소통을 핑계로 표 관리, 조직 관리, 여론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막말로 졸개들 줄세워 홍보맨으로 이용하겠단다. 더불어 틈틈이 자신의 인기와 권력을 확인하는 즐거움도 누리겠다는거다.
트위터는 한 권력자의 일방적 자기 홍보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엄지손가락 하나로 수십만 명의 팬들을 조종하는 재미가 보통이 아닌 것이다. 한번 시작하면 곧 중독성이 생긴다. 주고받는 수다의 내용보다 팔로어 숫자에 연연하여 울고 웃게 된다. 줄어들면 우울해지고 늘어나면 희희낙락 한다. 경쟁관계에 있는 정치인들과 기싸움도 벌어져 언젠가 그 손가락에 장을 지질 날도 올 것이다.
며칠 전 박근혜 의원이 트위터에다 한 젊은 여성이 버스 폭발 사고로 양다리를 절단당한 데 대해 “안타깝다”란 글을 올렸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매스컴들은 다시 그 사실을 기사화해서 여기저기 인터넷에 퍼져나갔다.
맨입으로 생색내기. 그야말로 립서비스다. 말을 천금같이 아껴야 할 정치지도자들이 인기 연예인 흉내를 내면서 기왕 내다버리는 시시콜콜한 일상의 쓰레기들을 골라 잡담거리로 만들어 진심인 양, 서민인 양, 친구인 양 가장하여 시민을 희롱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도 한가한가? 그렇게도 소통이 절박한가? 그러면 국민들이 자신의 진심을 알아주리라 생각하는가? 큰 정치를 꿈꾼다면 당당하게 말하라. 할 말과 안할 말, 해야 할 말과 해서는 안될 말을 분명히 가려서 세상에 대고 공개적으로 말하라. 대중매체를 통해 당당하게 말하고 검증받고 비판받아라.그리고 뱉은 말에 책임을 져라. 그게 정치다. 국민들 모두가 너절하고 애틋한 감상적인 지도자를 원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속닥속닥 끼리끼리 주고받는 말이 당당할 수 없는 법. 저들끼리 위하고, 저들끼리 떠받드는 알랑방귀 같은 말에 현혹되지 말라. “카더라”란 소문만 잔뜩 퍼뜨려 세상을 더욱 혼란스럽게 할 뿐이다. 그건 사전 선거운동에 지나지 않는 졸렬한 행위다.
조급한 마음에선 절대 큰 정치가 안 나온다. 남이 트위터한다고 너도나도 뛰어드는 정치인이라면 기대할 게 없다. 줏대도 없을뿐더러 무엇보다 그릇이 작다. 그 좁은 소견으로 큰 정치를 하겠다고? 제발 좀 멀리 보고, 넓게 보고, 가슴을 열고 세상을 보라. 정치는 엄지손가락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꽃다운 나이에 한 가정을 꾸려가는 처녀 가장이 시내버스 폭발 사고로 두 다리를 잘리는 불행한 일을 당했다.
어째 이런 불행은 언제나 서민들의 몫이어야 하는지 하늘이 원망스럽다. 이 일로 안타까워하지 않은 국민이 어디 있으랴.
그런데 트위터로 `소통’을 주장하는 정치인 누구도 이 처녀를 직접 위로하지 않았다. 청문회 준비 중인 총리내정자, 장관내정자들, 어릴적 남다르게 고생하며 자랐다고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놓으면서 “계란 프라이가 다 탔다”며 트위터에 사진까지 올린 총리내정자.
정치인들 애교부리는 동안 국민들 가슴은 숯덩어리가 다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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