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대 금당은 돌을 깔고 흙을 다져 기단부를 조성한 반면 후대에 확장된 금당의 기반부는 선대 금당지의 기단 끝부분을 비스듬히 자르고 뒷부분에 흙과 돌을 일부 섞어 구축한 것으로 확인됐다.
후대 금당은 동서 21m, 남북 15m 규모로 선대 금당과 비교하면 동서 방향은 200㎝, 남북은 300㎝ 확장됐으며, 남북축의 중심이 북쪽으로 약간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서는 사람의 머리에 새의 몸을 한 가릉빈가문수막새(일명 극락조)와 `舍’(집 사)자명 이형와 등이 출토됐다.
특히 이 일대의 건물지 내부 조사에서 확인된 1m 이상의 뻘층은 습지를 매립해 도시를 만들었음을 보여주며, 이번에 발견된 동서 방향의 도로유적은 황룡사 일대의신라왕경 계획도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연구소는 설명했다.
신라 선덕여왕 3년(634)에 창건된 분황사에 대한 조사에서는 중문지 동쪽에서 서남회랑지와 비슷한 18칸 규모의 복랑(複廊)인 동남회랑지가 확인돼 8세기 중엽에 중건된 분황사 최전성기의 건물배치(가람배치) 규명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연구소 쪽은 25일 오전 11시 발굴조사 현장에서 이런 내용의 조사결과를 발표한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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