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귀등에 황앗짐을 싣고 떠도는 장돌림들이 허기를 때우고 하룻밤 묵을 수도 있는 집이 주막이다. 신라 김유신 장군이 드나들었다는 경주 천관의 술집을 이의 원류로 보는 재미있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엽전 을 주조하여 유통시키기 위한 유인책으로 고려 조정이 개경과 각 주·현에 두었던 관설주점(官設酒店)이 그 남상(濫觴)이라는 설이 더 그럴듯하다. 혹자는 고려속요로 전하는 `쌍화점(雙花店)’도 주막이 아니었겠느냐고 한다.
주막은 조선후기 근대사회의 맹아기 시장경제활동이 차츰 활발해지고 역참제도가 발달하면서 각 고을 교통요지에 번창하기 시작했다. 팔도 방방곡곡 시장부근이면 어디든 생겨났고, 그 형태도 다양했다. 목로주점이라고 부르는 선술집, 남자손님과 여주인이 서로 얼굴을 보지 않은 채 술상만 내밀어 주고받는 내외주점, 대작한 여자와 함께 잠을 잘 수도 있는 색주가 등등이 분화된 주막의 형태들이지만 그 본령은 역시 먼길에 지친 길손이 잠시 들러 목을 축이고 쉬어 가는 곳이다.
일찍이 조선시대에 영남의 문경새재(鳥嶺)와 소백산고갯길인 풍기의 죽령(竹嶺;대재)이 선비들 과것길목이었기에 이곳 주막이 유명했었다. 경북 영주시가 최근 `죽령초가집’ 주막을 재현하여 문을 열었다. 막걸리는 물론 산채비빔밥 같은 전통 먹거리와 지역특산품이 과객을 기다리고 있다는데, 경치가 좋아 찾는 발걸음이 꽤 많은 모양이다. 근래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이웃동네 예천의 삼강주막처럼 별난 관광자원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될지 두고 볼 일이다. 정재모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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