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꿈꿀 수 없는 사람들을 향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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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꿈꿀 수 없는 사람들을 향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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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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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월 두 번째 소설집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 단정한 서사 속에 녹여내
 
 
  “그는 세상의 주변이었다. 서점 베스트셀러 진열대 뒤 구석에 꽂힌,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이었다. 엄연히 존재하지만 아무도 입어주지 않는 옷이고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노래였다. 그것을 알아버린 순간부터 그는 꿈을 꾸지 않게 되었다. 꿈이 꾸어지지 않았다.”(25쪽)
 김미월의 두 번째 소설집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창비 펴냄)에는 한때 무언가를 꿈꾸었으나 이제는 더이상 꿈꾸지 않게 된 사람들이 등장한다. 단순히 나이를 먹어서일 수도 있고, 아무리 꿈꿔도 응답이 없는 데 대한 좌절감때문일 수도 있다.
 표제작 속 주인공 진수는 서른한 살의 출판사 편집자다. 고등학교 시절 읍내 백일장에 나가 상도 줄줄이 타왔던 그는 문예창작과에 진학해 열심히 수업을 듣고, 부지런히 시를 쓰고, 해마다 신춘문예에 투고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따지고 보면 그의 꿈의 변천사는 `되고 싶다’와 `될 수 없다’ 사이의 지난한 투쟁의 역사였다. `되고 싶다’가 번번이 패배했다. 기권패였다.”(24쪽)
 또 다른 수록작 `29200분의 1’에서 이제 막 고3이 된 주인공은 훨씬 더 일찍 꿈꾸기를 멈췄을 것이다. 애초에 꿈꿀 기회조차 갖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남대문에서 지게꾼을 하는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아가는 주인공은 남들처럼 대학진학을 꿈꿀 수 없는 처지다.
 “왜 사람은 꼭 뭔가가 되어야만 할까. 세상은 나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요구한다. 하다못해 우리 반의 학급 목표만 해도 그랬다. Girls, be ambitious! 왜 다들 야망을 가지라고 하는 것인가. 나는 야망 따위엔 아무 관심도 없는데.”(46쪽)
 별다른 설명도 듣지 못한 채 해고된 `달리’(`현기증’)나 근무하던 공원이 문을 닫게 되면서 일자리를 잃게 된 `병태’(`정전의 시간’)도 야심차게 내일을 꿈꿀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작가는 끊임없이 `야망을 가지라’고 강요하고 권유하는 사회에서 낙오자일 수밖에 없는 이들을 그만의 방식으로 무심한 듯 따뜻하게 위로한다.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에서 결국 시인이 되지 못한 진수에게는 “시인은 곧 신”이라고 말하는 오만한 시인의 천박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29200분의 1’의 여고생에게는 오늘이 “10년 후에는 기억도 못할, 29200일 중의 하루”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수록작 `프라자 호텔’에서 대학 시절 좀더 나은 세상을 꿈꿨던 여대생은 1박에 사십만 원 가까이하는 호텔 객실에서 광장의 시위 행렬을 내려다보는 삼십대 중반의여성이 되었지만 작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바로 그때의 나라는 걸, 우리가 바로 그때의 우리라는 걸” 따스하게 전한다.
 200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작가는 첫 장편소설 `여덟번째 방’으로 “젊은 세대의 힘겨운 삶과 고뇌를 심도있게 탐구하면서도 절망에 사로잡히지 않는 경쾌한 긍정의 세계관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올해 신동엽창작상을 수상했다.
 누구나 꿈꾸라고 말하지만 꿈꾸기조차 쉽지 않아진 현실에 대한 작가의 냉철한 인식을 젊은 감각과 단정한 서사 속에 녹여낸 이번 소설집은 당시의 심사평이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준다. 260쪽. 1만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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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빠르게 흘러가는데 여인들의 삶은 나아졌을까  
최진영 두번째 장편소설 `끝나지 않는 노래’출간
한세기 이어진 여인 3대 수난사 섬세하게 담아내

 
 
 최진영(30)의 두 번째 장편소설 `끝나지 않는 노래’(한겨레출판 펴냄)의 시작은 일제 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7년 내성면 두릉골부터 2011년 서울의 한 고시원까지 한 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이어진 여인 3대의 수난사를 섬세한 문장으로 짜임새 있게 그려냈다.
 소설은 두릉골 장씨 집안의 넷째 딸로 태어난 두자의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두자 엄마는 두자를 낳은 다음해에 고대하던 외동아들 장수를 낳다가 죽고, 할머니가 애지중지 여기던 장수는 열일곱 살에 일본군에 징집되어 갔다가 재가 돼 돌아온다.
 언니들이 하나둘 낯 모르는 남자와 결혼해 집을 떠나는 것을 지켜보며 묵묵히 일을 하던 두자는 언니들처럼 새엄마가 소개해준 남자 태철에게 시집을 간다. 시어머니의 괄시 속에서도 태철과 몰래 사랑을 나누며 두자는 처음으로 `봄’을 느낀다. 그러나 어렵게 낳은 아들 만석이 홍역으로 죽고 전쟁터에 나갔던 태철이 아이를가진 둘째 부인을 데리고 오면서 두자는 집을 나온다.
 직물공장에서 베 짜는 일을 시작한 두자는 스쳐간 남자의 씨로 쌍둥이 수선과 봉선을 낳고, 어떤 남자의 씨받이로 들어가기도 하지만 결국 태철의 집으로 들어가 태철의 도망간 둘째 부인이 낳은 두 아들을 키우며 함께 살게 된다.
 소설은 두자의 이야기에서 수선과 봉선의 이야기로, 그리고 쌍둥이 자매를 `엄마들’이라고 부르는 수선의 딸 은하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러는 동안 일제강점기에서 해방을 맞고, 한국전쟁을 치르고, 군사독재 시절과IMF 위기가 지나갔다. 두자는 까막눈인 채로 일만 해야 했지만 수선과 봉선은 초등학교를 마쳤고, 은하는 대학까지 갔다.
 언감생심 꿈도 못 꾸던 대학 공부를 하는 외손녀를 보는 두자의 혼잣말처럼 세상은 정말 많이 좋아졌을까?
 여인 3대가 겪은 여러 비극 가운데 가장 먹먹하게 다가오는 것은 한 세기가 지나도록 이들을 둘러싼 세상이 결코 좋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은하는 좁은 고시원에서 살면서 쉴새 없이 아르바이트를 해도 대출 이자 갚기에바빴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이미 `만들어진 세계’에 힘없이 휘둘리는 건 두자부터 은하까지 마찬가지였다.
 “엄마들도 학교 안 다녔잖아. / …엄마랑 너랑 같냐. / 안 다녀도 잘 살잖아.
 / 그때랑 지금이랑 같냐고. / 다를 거 뭐 있어. / (중략) / …씨발, 세상 좋아지긴 개뿔.”(282쪽)
 지난해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작가는 서른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의 원숙한 시선과 노련한 이야기 솜씨로 긴 여운을 주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작가는 후기에서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데, 고인 물에서나 풍기는 썩은 내가 났다. 그 냄새에 익숙해지긴 싫은데, 그것 아닌 냄새는 기억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328쪽. 1만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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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공간의 경계 뛰어넘다
 
서효인·장이지 시집 출간

 
 서효인(30)과 장이지(35). 30대의 두 젊은 시인이 나란히 두 번째 시집을 내놓았다.
 참신한 감각의 첫 시집으로 문단의 기대를 받아온 두 시인은 각각 1년, 4년 만에 내놓은 두 번째 시집에서 한층 성숙해진 시선으로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뛰어넘어 타자의 아픔을 제 것처럼 함께 느낀다.
 제30회 김수영 문학상의 수상작이기도 한 서효인의 시집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민음사 펴냄)에는 수많은 지명이 등장한다.
 아이티부터 르완다, 헤르체고비나, 다마스쿠스, 체첸, 오키나와, 관타나모까지…. 공통점을 찾자면 최근 한 세기 동안 내전과 재해, 독재 등 유·무형의 비극을 겪은 곳이라는 점이다.
 시인은 비극이 한창인 그곳에 사는 평범한 무명씨들을 호명하며 지금 여기서 겪는 `나의 아픔’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진다.
 “삽이 된 몸이 총자루를 꼭 그러모으고 / 언 땅에 머리를 박습니다 / 차마 아무도 쏠 수가 없고 해서 / 밑으로 열렬히 파고들기로 합니다 / 우리의 종교는 삽에게 알몸을 내어 주던 / 땅 아래에 있었군요 가만히 / 서로의 바닥을 봅니다 // 참호 안에서 / 우리끼리 / 죄송하다 말하고 / 괜찮다고”(`헤르체고비나 반성문’ 중) 김기택 시인은 추천사에서 “자신이 겪은 현실에 수많은 간접 경험을 결합하고 변형시키고 재구성하여 만들어낸 낯선 잔혹동화 같은 세계가 매력적”이라며 “서로 다른 사건을 나의 현실로 꿰어 내는 방법은 능숙하다”고 평하기도 했다.

 132쪽. 8000원.
 그런가 하면 장이지 시인의 `연꽃의 입술’(문학동네 펴냄)에는 근대 이후 한반도 안팎에서 아픔을 겪은 이들이 불려진다.
 종군 위안부부터 용산 참사 피해자까지 큰 상처를 입었으나 점점 잊혀가고 있는이들이다.
 “문득 우기가 지나고 다시 우기가 오고. / 구멍 뚫린 천장으로 하늘의 별이 떨어지고 / 남자들의 전쟁이 끝나고 / 역사가 불태워지자 / 아지랑이가 되었다, 몸이,/ 엉겅퀴 달이는 냄새가 아직도 나는데 / 용서할 권리마저 없이 / 아지랑이가 되었다.”(`’좀삐`의 여인들-종군위안부의 넋이 `당신’에게’ 중)
 “다시 문을 열자 화염병 안이었다 / 시너 냄새는 갈 곳 없는 가난이었다. / 개발자들은 어둠을 어둠 속으로 밀어붙이려고 했다. / 어둠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 것은 고금(古今)이 같았다. / 숨 쉬기 위해 분신(焚身)으로 던져 알렸지만 죽음으로 돌아왔다.”(`용산, 영도(零度)’ 중)
 자신을 “일개 필경사(筆耕士. 직업으로 글씨 쓰는 사람)”라고 표현한 시인은 상처받은 이들의 목소리를 고스란히 제몸 안으로 받아들여 붓끝으로 옮겨냈다.
 140쪽. 8000원.
 
 
                   >>신간
 
 ▲동양과 서양 = 노스코트 파킨슨 지음. 안정효옮김.
 1963년 초판을 새롭게 번역해 재출간했다.
 `파킨슨의 법칙’으로도 유명한 저자는 이 책에서 동양과 서양이 시소처럼 우위를 점했다가 내주기를 반복하면서 세계사를 엮은 과정을 서술한다.
 고대에는 동양이 우위를 점하다가 헬레니즘, 로마 시대에 서양에 자리를 내줬으며 중세에 들어와 다시 이슬람과 중국이 주도권을 되찾았다는 해석이다.
 근대 들어선 서양이 우세했다가 19세기 중반부터 아시아가 부상하고 있다고 저자는 풀이했다.
 김영사. 464쪽. 2만원.
 
 ▲뉴스의 심장이 뛰게 하라 = 김수연 지음.
 한국일보 편집기자를 거쳐 연합뉴스 뉴미디어부에서 인터넷뉴스 편집을 맡은 저자가 펴낸 뉴스 편집 노하우.
 뉴스 편집에 감성을 곁들여 살아 숨쉬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미디어 철학이다.
 저자는 10여년에 걸친 현장 경험을 토대로 신문 기사와 인터넷 뉴스의 편집 비법을 소개하고 그래픽과 사진을 글 기사에 곁들여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전략도 공개한다.
 커뮤니케이션북스. 314쪽. 2만5천원.
 
 ▲한국의 CSI = 표창원·유제설 지음.
 프로파일러인 표창원 경찰대 교수와 경찰 출신 유제설 순천향대 교수가 과학 수사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낸 책.
 범죄 사건에서 혈흔과 DNA 등을 실마리로 베일에 가려진 용의자를 지목해낸 사례를 사진 자료와 함께 엮어냈다.
 특히 과학 수사로도 해결하지 못한 가수 김성재 사망 사건 등을 자세하게 소개해 초동 수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북라이프. 288쪽. 1만3천800원.
 
 ▲위험한 은행 = 사이먼 존슨·곽유신 지음. 김선희 옮김.
 경제 분석 블로그 `베이스라인 시나리오’ 공동 운영자인 저자들이 미국발 경제 위기를 불러온 대형 은행들의 악마성을 폭로한 책.
 저자들은 뱅크오브아메리카, 시티그룹 등 6대 은행이 호황기에는 이윤을 불리고불황기에는 손실을 납세자에게 돌리는 방식으로 부를 축적했다고 고발한다.
 이들 은행은 파산 위기에 놓여서도 정부를 쥐락펴락하며 `대마불사’ 신화를 이어간 만큼 엄격한 규제를 통해 은행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는 게 저자들의 지적이다.
 로그인. 352쪽. 1만8천원.
 ▲스토리텔링, 인간을 디자인하다 = 홍숙영 지음.
 스토리텔링이 사회 전반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분석하고 성공과 실패 사례를 각각 소개한 책.
 저자는 특히 상투적인 정책 용어를 쉽게 풀어쓰는 방식으로 정책도 이야기로 승화시킬 수 있다고 제안한다.
 246쪽. 2만5천800원.

 ▲나는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 권리가 있다 = 앤 플로리니, 토머스 블랜턴등 지음. 노승영 옮김.
 정부나 국제기구를 상대로 정보 공개를 청구해 납세자의 알 권리를 끌어올린 사례를 소개한 책.
 중국과 인도, 나이지리아 등 국가별 사례를 중심으로 끈질긴 시민운동 끝에 투명성을 보장받게 된 과정을 엮어냈다.
 시대의창. 468쪽. 2만4천원.
 
 ▲한국의 나무 = 김진석·김태영 지음.
 우리 땅에 사는 나무 650여 종을 자생지에서 직접 찍은 원색 사진과 함께 담아낸 나무도감.
 바위종덩굴, 성널수국, 푸른가막살 등 최근에야 학계에 보고된 신종 나무도 살펴볼 수 있다.
 돌베개. 688쪽. 4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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