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으로 처벌된
전력 있는 정치인의 국정원법
개정안 발의 신중해야”
북한 김정은 정권이 국가정보원 해체에 목을 매고 있다. 지난 일주일 간 북한이 로동신문·조선중앙통신·우리민족끼리 등을 통해 쏟아낸 `국정원 해체’ 성명·논평·기사만 24건이다. 8월 5일 `독재시대를 되살리는 악의 소굴’이라는 로동신문 기사는 “중앙정보부는 말 그대로 살인마와 악귀들의 소굴이었으며 정의와 애국을 말살하고 진보와 통일을 가로막은 독재통치의 총본산이었다. 그 후신인 정보원은 중앙정보부를 능가하는 악(惡)의 소굴”이라고 선동했다. 조폭 같은 욕지거리다. 국정원이라는 존재가 김정은 정권에 `눈엣가시’라는 반증이다.
북한이 악을 쓰며 “국정원 해체”를 주장하는 가운데 `통합진보당’이 국정원을 사실상 해체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오병윤 통진당 원내대표가 7일 국가정보원을 `해외정보원’으로 개명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공개한 것이다. 통진당에 따르면 `해외정보원’으로 변경되는 국정원의 정보수집범위는 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 등 국가안보에 관련한 해외정보에 한정된다. 국내활동을 완전히 없앤 것이다. 오 원내대표의 공동발의에 참여한 이상규 통진당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정권 안위를 위한 국내정치개입은 도를 넘어서고 있다. 국정원의 셀프개혁으로는 민주적인 정보기관으로 거듭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국정원의 사실상 해체를 의미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을 통진당이 발의함으로써 국가정보원과 악연(惡緣)을 쌓아온 통진당의 국정원에 대한 보복이 시작된 게 아니냐는 시각이 없지 않다. 통진당 전신인 민노당이 간첩 사건에 연루될 때마다 당 간부들이 국정원에 연행돼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은 앙갚음이라는 것이다.
국정원이 2006년 적발한 일심회 간첩 사건은 1987년 미국에서 북한 공작원에게 포섭된 재미 사업가 장민호(50·장 마이클)가 주범인 간첩 사건. 이 사건에 이정훈 민노당 중앙위원, 최기영 민노당 사무부총장(현 통진당 정책실장) 등이 연루됐다. 판결문에 따르면, 일심회 활동의 상당 부분은 민노당 내부를 탐지하는 데 맞춰져 있었다. 수집된 내용은 장민호를 통해 북 노동당 대외연락부(현 225국)로 흘러 들어 갔다.
2011년 국정원에 적발된 `왕재산’(북한에 있는 산 이름을 딴 조직)의 간첩 활동도 민노당 활동에 맞춰져 있다. 북한 노동당 225국이 6·2 지방선거 직후인 2010년 7월부터 작년 5월까지 5차례에 걸쳐 왕재산 총책 김덕용에게 지령문을 하달해 `남한 내 진보정당 통합’을 종용한 것이다. 우연인지 모르지만 민노당·진보신당·국민참여당 통합은 북한 노동당 225국 지령대로 실현됐다. 왕재산 주범들은 민노당과 민노총을 주요 포섭대상으로 삼았다.
월남 패망 후, 그리고 동독 붕괴 후 월남 정부 대통령실 고문과, 야당 대통령 후보가 월맹의 간첩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또 서독 총리 브란트 보좌관으로 암약한 위장간첩 기욤이 동독 현역 육군 대위라는 사실도 드러났다.
전 북한 노동당 비서 황장엽씨는 “남한에 고정간첩 5만 명이 활동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그러나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간첩을 잡는 데 소홀했다. 소홀했다기보다 잡지 않았다고 하는 편이 정확하다. 만약 국정원의 국내파트를 해체하고, 통진당 주장대로 활동을 `해외정보수집’으로 제한하면 국내의 고정간첩은 길길이 뛸 것이다.
국정원이 모든 조직과 인원을 해외로 돌리면 서울광장과 청계광장 촛불집회에 끼어드는 고정간첩, 국가보안법 폐지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세력에 스며든 친북세력을 어떻게 감시, 적발할 수 있을까?
국정원 개혁은 필요하다. 정치판을 기웃거린 습성이 남아 있다면 고쳐야 한다. 그러나 국정원 개혁과 국내기능 박탈은 전혀 다른 문제다. 더구나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된 전력이 있는 정치인의 국정원법 개정안 발의는 신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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