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DVD `극장전’
영화는 `영화 속 영화’와 그 영화의 영향 속에서 현실의 하루를 지내는 주인공의 이야기라는 두 단락으로 나뉘어 있다.
마침 주인공과 같은 종로의 한 극장에서 시사회를 끝내고 나온 극장 앞(前),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내 대화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다. 지금 우리의 대화도 영화에서처럼 그렇게 우스꽝스러울까? 내 입에서 지금 허위 의식 같은 게 흘러나오는 건 아닌가?
이건 그냥 영화일 뿐 아니었던가? 저녁 식사 겸 소주 한 잔을 하러 간 인사동 거리, 영화 속 안경점 속의 아가씨가 유난히 예뻐보이고 마침 보이는 담배 가게에는 내가 피우는 빨간색 양담배는 팔지 않는단다. 소주와 함께 하는 영화에 대한 토론, 머릿속이 정리가 안돼 있지만 지기는 싫은 터라 목소리가 높아진다.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96년) 이후 감독의 여섯 번째 작품인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영화란(그것도 홍상수 감독의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영화다.
영화 속 영화는 감독 자신의 영화처럼 현실에 `처절하게’ 가까운, 그래서 `귀여운’(영화 속의 표현대로)영화고, 이 영화를 본 영화 속의 남자는 자신의 현실과 영화 속 이야기를 착각한다. 이쯤 되니 주인공의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다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그냥 실제였고 어떤 부분이 영화를 의식한 행동일까.
영화 속 영화의 주인공은 수능시험을 막 마친 상원(이기우)이다. 형에게 용돈을 받아 주머니가 두둑한 그날, 우연히 안경점에 일하고 있는 첫사랑 영실(엄지원)을 만난다. `담임이 미친놈이라’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준비한다는 영실. 어색한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은 술자리에 이어 여관에까지 동행하지만 이날따라 상원의 몸은 말을 듣지 않는다. “안되는데 왜 자꾸 하려고 그래”. 영실의 이 말에 상원의 입에서는 “죽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뚱맞은’ 말이 튀어나온다.
이 영화를 본 동수(김상경). 영화는 암투병 중인 선배 형이 감독했던 단편이다. 마침 극장에서는 그 선배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영화를 보고 나선 극장 앞, 뜻밖에 영화 속 여주인공인 영실이 있다. 사람들 속으로 사라져가는 그녀를 뒤로하고 커피숍을 들른 그는 저녁에 그 선배의 후원모임이 열린다는 연락을 받지만 선뜻 내키지 않는다.
다시 무작정 걷게 된 거리에서 동수는 영화 속의 안경점에서 다시 영실과 마주친다. 학생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영실에게 동수는 용기를 내어 인사를 건네고, 영실은 그런대로 성의있게 그의 말상대를 해준다.
영화는 감독의 작품들 중 가장 말끔한 형식미를 갖추고 있는 영화로 평가받을 수 있을 듯하다. 영화와 현실 속의 두 주인공은 누가 모방자며 누가 피모방자인지, 어떤 쪽이 영화고 어떤 쪽이 현실인지를 오가다가 결국 `둘 다’로 수렴된다.
한편으로 감독 특유의 인간에 대한 독특하지만, 날카로운 묘사는 이 영화에서 더 능수능란하게 현실에 밀착돼 있다. 이 덕분에 감독은 허위의식의 코미디라는 점에서 전작을 뛰어넘는 성취를 이루고 있다. 연합 18세 관람가. 상영시간 8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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