닳고 닳은 서글픈 우리네 인생에 대한 뜨거운 위로
  • 이경관기자
닳고 닳은 서글픈 우리네 인생에 대한 뜨거운 위로
  • 이경관기자
  • 승인 2014.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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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관의 두 번째 소설집… 동백꽃 등 여덟 편 담아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천명관 지음 l 창비 l 224쪽 l 1만2000원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고기는 질기고 소주는 쓰지만, 인생은 그마저도 달달하게 느껴질 만큼 쓰디쓰다.”(110쪽,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중)
 `고래’, `고령화 가족’, `나의 삼촌 브루스 리’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화제를 몰고 온 천명관 작가가 최근 두 번째 소설집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를 출간했다.
 그는 이 책에서 풀리지 않는 인생, 고단한 밑바닥의 삶 등을 특유의 재치와 필치로 그렸다. 우리네 삶과 그리 다르지 않는 일상의 고단함은 그의 따뜻한 유머 속에서 위로로 다가온다.
 “사내의 영혼은 슬픔과 분노에 미쳐 날뛴다. 끝없는 공허와 허기를 견디지 못해 미친 듯이 빠르게 거리를 내달린다.”(28쪽, `봄, 사자의 서’ 중)
 소설 `봄, 사자의 서’는 고귀한 존재로 태어났지만 처연하게 객사해 중음을 떠도는 죽은 자의 이야기다.
 그는 실직 후 가족과 떨어져 홀로 고시원에서 생활하던 중 술에 취해 공원에서 잠이 들었다 급격한 기온 하락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영혼은 자신의 죽음을 다룬 뉴스를 시청한다.
 “텔레비전 속엔 아무런 슬픔이 없다. 젊음과 섹시한 육체, 액션히어로와 헤피엔드만 있을 뿐이다.”(29쪽, `봄, 사자의 서’ 중)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 자신의 죽음 앞에 그는 삶의 아이러니와 함께 허무함을 느낀다.
 “스물네평 짜리 낡은 임대아파트엔 모두 세명이 살고 있다. 경구와 그의 딸 미숙, 그리고 아들 영민. 그들은 함께 밥을 먹지 않는다. 들어오는 시간도 제각각이지만 행여 다들 집에 있더라도 거실에 모여 텔레비전을 보거나 함께 식탁에 둘러앉는 법이 없다. 각자 주방과 화장실을 소리 없이 드나들며 재빨리 제 볼일만 보고 유령처럼 사라지곤 한다.”(113쪽,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중)
 표제작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는 한때 잘나가던 트럭운전사였지만, 이혼 후 일용직 막노동자로 전락한 한 남자의 이야기다.
 자꾸만 꼬이는 인생에 화가 난 그는 급기야 아내를 폭행하기에 이르고 결국 그의 아내는 이가 두 개 부러지던 날을 마지막으로 가족들 앞에서 사라졌다. 아내가 집을 나간 뒤 그와 가족들은 대화를 잃었다. 냉동창고 일용직으로 일하던 어느 날 그는 동료에게 냉동 칠면조고기를 받게 된다. 그는 밀린 술값을 내놓으라는 술집 사장을 칠면조로 흠씬 패준 뒤, 벤츠 트럭을 훔쳐 도로를 달리기 시작한다.
 “언 칠면조가 슬슬 녹으면서 비어져나온 살이 가로등 불빛에 반짝거렸다. 경구는 한 손으로 조심스럽게 칠면조를 만져보았다. 차갑지만 두툼한 살집이 믿음직스러웠다. 혹시 마누라를 만난다면 선물이라며 칠면조를 불쑥 내밀어도 재밌을 것 같았다. 그때 아내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130쪽,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중)
 그는 버리고 싶어도 지독하게 따라오는 칠면조를 보며 그의 인생을 옭죄어 오던 비극의 원흉을 마주한다. 그는 자신과 함께 도로를 달리고 있는 칠면조를 보며 가족과의 희망을 꿈꾼다.
 작가는 가난하고 사회에 외면당한 사람들의 고단함 뿐 아니라 주류에 속한 사람들의 삶의 고통과 외로움을 보듬는다.
 또한 이외에 어린 시절 겪었던 폭력을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기 작가의 이야기를 그린 `왕들의 무덤’, 외로움 섬에서 한 남자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를 질투하며 살아가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동백꽃’과 부농의 꿈을 안고 귀농했지만 결국 파탄 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전원교향곡’, 3만원의 행운을 바라며 매일 밤 어두운 도로를 달리는 대리기사의 이야기를 담은 `핑크’ 등이 있다.
 늘상 유쾌한 천 작가의 소설, 그러나 책의 마지막장을 덮는 순간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 여덟 편의 작품에서 그가 그린 세상은 섬뜩할 정도로 우리네 삶과 닮았다. 부의 차이, 사회적 평판 등을 떠나, 그들은 자신의 삶 속에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작가는 그런 그들에게 말한다.
 “애야, 잊지 마라. 사는 건 누구나 다 매한가지란다. 그러니 딱히 억울해할 일도 없고 유난 떨 일도 없단다.”(182쪽, `우이동의 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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