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선 청소년들과 아버지의 마음으로 소통하다
  • 이경관기자
벼랑 끝에 선 청소년들과 아버지의 마음으로 소통하다
  • 이경관기자
  • 승인 2014.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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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상 작가‘청소년 자살’소재 장편소설… 아들 잃고 몸소 겪은 이야기 담아

 

마음오를 꽃
정도상 지음 l 자음과모음 l 259쪽 l 1만2000원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길이 있다. 가깝고 쉬운 길도 있고, 멀고 험한 길도 있다. 집이 있다. 평화로운 집도 있고, 아귀다툼이 있는 집도 있다. 세상의 모든 길은 집에서 시작되고 집에서 끝난다. 길이 사라지면 집도 사라지고 집이 사라지면 길도 사라진다.”(47쪽)
 OECD 국가중 자살률 1위.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청소년들은 학교폭력과 학업성적에 대한 압박, 부모의 이혼 등의 이유로, 청년들은 높은 취업의 장벽에, 중·장년들은 가족으로부터 소외되는 등 외로움으로 인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그들은 왜 스스로 삶의 끈을 놓았는가. 우리는 묻지 못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청소년 자살’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정도상<사진> 작가의 장편소설 ‘마음오를 꽃’.
 정 작가가 아들을 잃고 몸소 겪은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주인공인 우규와 나래가 자살을 택한 후 겪게 되는 이야기다. 현실에서 무작정 도망치고 싶었던 두 아이가 죽음 이후에 받게 되는 심판과 남겨진 가족들이 겪는 고통을 현실적으로 그렸다.
 “두렵고 무서웠어요. 누군가가 날 구원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요. 나도 어찌 해볼 수가 없는 그런 내가 있어요. 천사였다가 동시에 악마와 같은 나. (…) 세상의 모든 신들에게 구원을 빌었죠. 응답이 없었어요.”(173쪽)
 우규는 우수한 성적, 안정적인 가정 등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환경에서 살고 있지만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삶의 재부팅을 꿈꾸며 빠르게 달리는 지하철에 몸을 던졌다.
 “두렵다기보다는 너무 외로워서 나래는 낭떠러지 끝에 서서 옥상 아래의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냥 먹먹하게 오래 보았다. 바람이 교복치마를 흔들고, 머리카락을 날리고, 몸을 흔들어대도 물러서지 않고 보고 또 보았다.”(133쪽)
 엄마의 과도한 관심으로 친구들의 미움을 사, 학교폭력을 당하게 된 나래. 그녀는 폭력에 저항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학교 옥상에 올라 텅 빈 하늘에 스스로를 던졌다.
 “시간에는 어제도 없고 내일도 없단다. 오직 그리고 언제나 오늘만 있지. 어제는 흘러가버렸기 때문에 없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없다. 하지만 어제가 없으면 오늘이 없고, 오늘이 없으면 내일도 없단다. 모든 오늘은 어제의 과정이고, 모든 내일은 오늘의 과정에 있는 법. 그것이 시간의 법칙이며 생의 진실이니라.”(56쪽)

 이 소설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죽음 이후 사후 세계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우규와 나래는 죽음 뒤의 세계인 ‘가운데 하늘’에서 자기 살인죄로 재판을 받는다. 두 령은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간 현실을 원망하며 자신들에게 내려진 형벌에 괴로워한다.
 “네모난 아파트 창문마다 불빛이 환하게 새어 나오고 있는데 꼭 한 집에서만 불빛이 보이지 않았다. 우규의 집이었다.”(150쪽)
 자신의 죽음으로 스스로를 가둔 엄마와 매일 술로 지새운 아빠, 그리고 그들에게 방치된 채 위로받지 못해 공황장애까지 온 동생 수. 우규는 자신의 부재로 엉망이 된 집을 보며 괴로워 한다.
 나래 또한 자신의 죽음으로 서로를 미워하다 갈라 선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현실을 외면하려고 했던 자신을 반성한다.
 정 작가는 우규와 나래가 자신들의 죽음으로 괴로워하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자살은 비극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비극을 낳는 행위임을 말한다.
 “먼저 우규에게, 너는 너를 사랑하지 않은 죄를 범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없다. 사랑이 없는 죄 또한 악업 중의 악업이니라. (…) 나래 또한 스스로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기에 폭력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그 사랑으로 자기 자신을 지켜냈을 것이다.”(249쪽)
 그는 경전 ‘티베트 사자의 서’와 제주도 설화 ‘서천꽃밭’을 기본 얼개로 이 소설을 구성해 사후세계에 대한 독자의 몰입도를 높였다.
 우규와 나래는 가운데 하늘에서 자신들의 선택이 틀렸음을 깨닫고 자기 살인죄를 씻기 위해 서천꽃밭에서 벼오를꽃과 살오를꽃, 피오를꽃, 숨오를꽃, 마음오를꽃을 먹고 인간계에서 환생한다.
 정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9년 전 지하철에 스스로 몸을 던졌던 아들에게 묻는다. 무엇이 너를 그토록 괴롭게 했느냐고. 그리고 너와 진정으로 소통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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