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지심 있는 캐릭터 연기 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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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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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권‘펀치’서 야비하고 나약한 조강재 검사 완벽소화 극찬

 의사, 변호사, 검사, 교수….
 모두가 선망하는 우리 사회 최고 지식인 계층이다.
 배우 박혁권(44·사진)이 최근 3년간 잇달아 맡은 배역이기도 하다.
 그런데 좀 다르다. 지식인이라고 다 같은 지식인이 아니다. 박혁권이 연기하는 지식인은 모두 우리의 환상을 깬다. 기존 드라마가 그리는 지식인의 전형에서 벗어난다.
 또한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가 연기하는 캐릭터는 현실성을 강하게 띤다. 환상을 걷어낸, 지금도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지식인의 실체를 까발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정밀하게.
 최근 경기도 고양시 탄현SBS 제작센터에서 박혁권을 만났다.
 화제의 드라마 SBS TV 월화극 ‘펀치’에서 야비하면서도 나약한 조강재 검사를 아주 맛있게 연기하고 있는 그다.
 “조강재는 이태준(조재현 분) 검찰총장 말고는 다른 줄도 없고 능력도 없는 인간이죠. 인간관계도 굉장히 좁아서 자기편만 챙기죠. 주도면밀하거나 담대하거나 심지가 굳은 인간도 아니에요. 그런데 왜 이태준이 데리고 있느냐? 좀 멍청해도 충실한 개는 필요하지 않겠어요? 적어도 주인은 안 물잖아요.(웃음)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꼭 인간이 해야하는 일들이 있어요. 머리카락을 집거나 계란을 안 깨트리고 옮기는 작업 같은 것은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 해야하지 않을까요. 그런 일들은 뛰어나지 않아도 할 수 있어요. 이태준은 조강재가 그런 용도로 필요한 겁니다.”
 그 어렵다는 사시를 합격해 검사가 됐지만 조강재라는 인간의 실체는 안쓰러울 정도다. 편법, 불법을 일삼고 능력은 모자라는데 질투심은 엄청나다. 뇌종양의 고통으로 연일 사선을 넘나드는 후배검사 박정환(김래원)의 몸부림을 대놓고 즐기는 사악함과 궁지에 몰리자 그런 박정환의 바짓가랑이를 잡는 비굴함이 공존한다.
 “솔직히 7~8부에서 좀 힘들었어요. 박정환에게 ‘정환아 많이 아프냐? 막 비명도나오고 그래?’라며 야비하게 조롱하는 장면을 연습하면서 인간 박혁권으로서는 슬펐어요. 아무리 적이라지만 인간의 입에서 이런 말까지 나올 수 있을까 싶었죠. ‘빨리죽어라’ 고사를 지내는 거잖아요. 하지만 한쪽으로 갈 때면 뒤도 안 돌아보고 가는 놈인지라 조강재라면 이럴 수 있겠다 싶었어요. 작가님도 처음부터 조강재에 대해 이것저것 따지지 않는, ‘대놓고 악인’이라 생각하라고 했어요.”
 본인은 “과한 면도 있다”고 했지만 박혁권이 보여주는 조강재의 모습에 시청자는 사실적인 연기라며 극찬으로 호응하고 있다. 실제로 박혁권은 조강재의 표정 하나, 대사 하나에서 일상의 정밀함을 담아 자연스럽게 연기하고 있다.
 박혁권의 이러한 지식인 까발리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JTBC ‘밀회’(2014)의 강준형 피아노과 교수와 ‘아내의 자격’
 (2012)의 조현태 변호사가 있었다. 이 두 역할 역시 그는 정밀타법으로 연기해냈다.
 ‘유아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어다니는 강준형 교수는 온갖 있는 척은 다하지만 사실은 능력있는 아내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고 투정부리고 떼를 쓰며 살아가는 지식인 루저의 전형이었다.
 조현태 변호사는 십수년 두 집 살림을 기막히게 해온 나쁜 남자지만 그에 대한 죄의식은 별로 없다. 막강 로펌 가문 자식으로 부족할 것없이 자라났는데 국내에서 사시는 패스 못하고 미국에서 변호사 자격증을 따온 5% 부족한 엘리트다.
 박혁권은 “주변에서 멋있는 사람을 별로 보지 못했다”며 웃었다.
 “사람들이 폼잡는 거 보면 사실 좀 웃겨요. 마흔 넘으니 웬만한 사람은 다 속이 들여다보이는데 폼을 잡으면 우습죠. 오히려 수치심이 없는 사람이 무섭죠. 조강재처럼 자격지심이 있는 캐릭터는 연기하기가 편해요.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의 바운더리가 확실한 인간이잖아요.”
 더 거슬러 올라가 2007년 ‘하얀거탑’에서는 의사, 2011년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집현전 학자 정인지를 연기한 그는 “나는 대학도 간신히 들어갔는데 엘리트 연기를 잇달아 하니 신기하다. ‘하얀거탑’ 때 의사 역이라고 하니까 친구들이 ‘환자 해야할 놈이 의사한다’며 배꼽잡고 쓰러졌다”며 웃었다.
 그의 지식인 연기를 거론할 때 2011년 엠넷의 코믹 페이크다큐 ‘UV신드롬 비긴즈’에서 UV의 정체를 연구하는 기 소보르망 박사도 빼놓을 수 없다. 본인은 시치미 뚝 떼고 진지하게 했지만, 시청자는 폭소를 터뜨리게 한 명연기였다.
 박혁권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동안 ‘놀았다’.
 “아르바이트나 하면서 3~4년 놀았다”는 그는 그러다 어느날 아침 문득 펴본 스포츠신문에서 산울림극단의 단원모집 공고를 보고 불쑥 지원, 한번에 붙었다.
 “배우를 꿈꾸지는 않았는데 중학교때부터 연극을 보러다니긴 했어요. 보는 것은 재미가 있더라고요. 제가 또 사람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해요. 어렸을 때는 그게 산만하게 보였죠. 공부하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다 쳐다봤고, 20분 걸릴 하굣길을 여기저기 구경하고 오느라 1시간 걸려 돌아왔으니까요. 큰 길가에서 싸우고 있는 연인들을 지켜보는 것도 얼마나 재미있는지 몰라요. 그들은 심각한데 전 그들 표정을 보고 있으면 너무 웃겨요.”
 극단에 들어간 이후 1994년 서울예대에 뒤늦게 입학한 그는 1년간 연극포스터 붙이는 작업을 거쳐 연기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다. 어려서부터 키워온 ‘관찰력’은 그가 지금 보여주고 있는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연기의 밑바탕이 됐다.
 “극단 입단 첫날 선배들한테 ‘돌림빵’으로 죽도록 맞았어요. 처음 들어온 놈이 누군가의 연기를 보며 이상하다고 지적을 했거든요.(웃음) 제가 배우를 꿈꾼 것은 아니었지만 어려서부터 뭔가 어색하고 이상한 건 참지 못하고 지적하곤 했어요. 그래서 싸움도 많이 붙었죠. 그랬던 게 연기로 옮겨와서도 진짜처럼 하지 않으면 이상한 거예요. 커피를 마시는 장면에서 빈 컵을 들이키고, 잠 잘 시간 없는 레지던트가 머리를 단정하게 하고 마스카라까지 칠하고 나오는 건 좀 이상하지 않나요? 제가 무언가를 창작할 능력은 떨어지지만 이상한 점을 잡아내는 능력은 있는 것 같아요. 하하.”
 그는 “처음에는 재미가 있었지만 어느 순간 내가 과연 이걸 계속 할 수 있을까 싶었고, ‘올해까지만 하고 관두자’ ‘내가 확실히 안된다는 것을 알고 관두자’는 생각을 하면서 한해한해 보내다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이가 너무 들어서이젠 딴 일을 하기 어려워졌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제가 천생 배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연기 잘하는 분이 너무 많으니까요. 그냥 운이 좋은 것 같아요. 운좋게 좋은 작품들을 잇달아 만났고 자연스럽게 하려는제 연기스타일이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된 것 같아요.” 4년 전 할리우드 진출이 꿈이라고 했던 그는 이날도 “그 꿈에는 변함이 없다. 지금도 영어 공부는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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