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불협화음 노래하다
  • 이경관기자
생의 불협화음 노래하다
  • 이경관기자
  • 승인 2015.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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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자의 내밀한 심리·파동 시로 엮어

 

화류
정영 지음 l 문학과지성사 l 123쪽 l 8000원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정주하지 않고 도처에서 떠돈다. 그럴수록 더욱 헛헛하다. 인생이 곧 방랑일까.
 “서로의 몸을 무릎 위에 올리는 갸륵한 꿈을 헤매는 동안/바람이 심장을 만지작거리다가 체온을 묻혀간다// 그러면 나는 어느 사막의 어느 사구의 어느 모래무덤의 어느 모래알의 어느 모퉁이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그러면 나는 더 이상 나를 못 알아볼 수 있을까// 무릎을 숨긴 치맛단 같은 알을 품은 새들의 눈이 더는 슬프지 않을까// 사는 내내 비밀이 생기는 건 버리고 싶은 몸이 하나씩 는다는 것이어서// 숨을 참을수록 비참하다”(‘피에타’ 중)
 2000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시인 정영이 첫 번째 시집 ‘평일의 고해’ 이후 9년 만에 펴낸 두 번째 시집 ‘화류’.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숨을 참을수록 비참’해지는 생의 비밀을  바라본다.
 일상의 이면과 생의 불협화음에 대한 시선을 아름다운 시어로 담아온 정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떠도는 자의 내밀한 심리와 그 파동에 대해 노래한다.
 “이 도시에선 모두 전등 아래 모여 앉아/서로의 언어를 알아듣는 척하느라 고개 끄덕이기 바쁘고/우아하게 턱을 괴고 웃다가 집에 돌아와/사전을 만드느라 밤마다 두통에 시달리지”(‘가련한 사전’ 중)

 41편의 시가 담긴 이번 시집의 첫 문을 여는 ‘가련한 사전’. 이 시는 삶의 무대, 말이 빚어내는 관계 속에 던져진 사람들을 주목한다. 이들은 삶의 고통 속에서 치닫는 울음을 웃음 속에 숨기고 ‘침을 섞고 뱉고 토하고 늘어뜨리며 뛰노는 어수선한 당나귀 떼’와 다를 바가 없다. 우리는 진정한 소통의 부재 속 살아가고 있는 가련한 존재들이다.
 “매일 상해가는 몸으로/약속을 하고 건투를 빈다// 탄생이란 수행을 허겁지겁 마치고/커피를 마시며 다음 수행을 위해/매무새를 가다듬고// 달린다 어디서든 줄을 서서 기다린다/탄생도 이렇게 조급증을 내며 기다렸을까//(…)// 달린다 가슴을 내밀고/죽음이란 마지막 수행을 향해서// 봄이면 꽃 속에 들어앉아 건배한다/숲 속의 평화로운 새처럼// 잔다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고// 달린다 죽어라 당신을 사랑한다”(‘잔다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고’ 중)
 ‘잔다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고’라는 시는 탄생의 그 이전부터 기다리고 달려야 했던, 또 죽음을 위해 달려가야 하는 생의 과정을 나열한다.우리는 살기 위해 노력하고 사랑을 한다. ‘잔다’는 것의 의의를 두고 살아가는 삶은 어쩌면 가장 진솔한 삶의 방식이 아닐까.
 이번 시집에 묶인 마흔한 편의 시 대부분은 미 발표작이다. 지난 10년 가까이 시인은 산문으로 무대 위 노래 가사로 독자들과 만나왔다. 그가 쓴 노래 가사들은 창작 뮤지컬 ‘남한산성’과 ‘라디오스타’ 등 수 편으로 그의 시적 감수성이 무대에서 발현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다.
 붉은 빛으로 물든 시집 ‘화류’의 표지는 화려한 꽃과 그 불빛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때론 뜨거운 피가 흐르는 생의 의지이기도 하다.
 정 시인이 말한다. 막막한 어둠 속에서 먹먹한 마음이 돋아난다고, 그것이 인생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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