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시계 검사’ 홍준표의 최대 위기
  • 한동윤
‘모래시계 검사’ 홍준표의 최대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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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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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억원 박철언’과 ‘1억원 홍준표’의 새옹지마

▲ 한동윤 주필
[경북도민일보 = 한동윤]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검사의 길을 걸었다. 소장 검사였던 홍 지사는 1993년 서울지검 검사로 재직 중 이른바 ‘슬롯머신 사건’을 수사하면서 ‘6공 황태자’ 박철언 등 권력 실세들을 줄줄이 구속 기소했다. 김영삼(YS) 정부 출범 직후인 1993년 슬롯머신 업계의 대부 격인 정덕진·덕일 형제로부터 돈을 받거나 청탁받은 혐의로 정·관계 유력자 10여 명에게 수갑을 채운 것이다.
 그가 수사한 ‘슬롯머신 사건’은 그 후 드라마 ‘모래시계’로 각색, 방영돼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검찰과 법무부 수뇌부를 가차없이 수사한 소신 검사 홍준표는 그 사건으로 ‘모래시계 검사’라는 별칭이 따라 붙었다. 홍 검사는 검찰 대선배인 이건개 대전고검장, 엄삼탁 안기부 기조실장, 천기호 경찰청 치안감 등을 구속 기소해 구치소로 보냈다. 1995년 검사직을 그만둔 홍 지사는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정치 입문을 권유받고 정계에 투신했다. 당시 홍 검사는 “부패한 정치권력과 전쟁을 다시 한번 벌여보고 싶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정계에 입문한 홍준표는 4선 의원에 여당 대표, 경남지사로 당선되며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거물로 성장했다. 그런 ‘모래시계 검사’ 홍준표가 20년 만에 검찰청사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됐다. 후배 검사들에게 불려나온 것이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메모에 등장한 8인 중 첫 조사 대상자다. 홍 지사는 2011년 6월 한나라당 대표 경선을 앞두고 성 전 회장에게서 1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홍 지사는 ‘1억원’ 뿐만 아니라 1억원 전달자로 지목된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을 회유함으로써 조직적으로 증거인멸을 시도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구속영장 신청 감이다. ‘모래시계 검사’의 치욕이 아닐 수 없다.
 홍 지사의 주장은 윤 전 부사장의 배달사고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1억원’은 성 전 회장이 윤 전 부사장에게 생활비로 준 돈이라는 주장이다. 홍 지사는 검찰이 진술만 있지 ‘물증(物證)’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착안한 것이다.
 1993년 ‘슬롯머신 사건’을 수사하면서 박철언 전 장관을 구속했다. 당시 ‘홍 검사’는 슬롯머신업자 정덕일씨가 박 전 장관에게 5억원을 건넸다는 혐의를 밝혀내 유죄 판결을 이끌었다. 그러나 박 전 장관은 당시 “배달사고”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홍 검사’는 “뇌물 사건의 80%는 물증이 없다”며 박 전 장관을 구속 기소했다. 30여 년 전 ‘배달사고’를 주장한 박 전 장관을 감방으로 보낸 그가 지금 박 전 장관과 똑같은 주장을 하고 있어 아이러니다. 홍 지사를 소환한 후배 검찰이 홍 지사의 ‘1억원’을 규명하기 위해 홍 지사의 검사 시절과 똑같은 수사기법을 동원한 것도 흥미롭다.
 당시 ‘홍 검사’는 박철언 전 장관이 슬롯머신업자로부터 ‘5억원’을 받은 물증은 확보하지 못했다. 다만 박 전 장관에게 007가방 속에 든 5억원이 건네지는 현장을 목격한 ‘홍모 여인’의 입을 여는 데 성공했다. ‘홍 검사’는 홍 여인이 진술을 바꿀 것을 우려해 그해 5월 15일 법원에 증거보전(공판 전 증인신문) 신청을 했고, 홍 여인은 당직 판사 앞에서 극비리에 증언 절차를 마쳤다.
 홍 지사를 수사 중인 검찰은 성 전 회장이 ‘1억원’을 홍 지사에게 전달했다는 윤 전 부사장으로부터 관련 진술을 확보했다. 진술 과정 모두를 녹화까지 했다. 검찰은 법정에서 영상 녹화물을 홍 지사 유죄 입증에 쓸 예정이다. 30년 전 홍 검사가 쓴 수사기법을 그대로 재활용한 것이다.
 검찰은 홍 지사 측이 사건 관련자들을 회유하는 등 증거인멸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 지사가 국회의원이던 시절 비서관을 지낸 강모씨 등을 통해 윤 전 부사장을 만나 진술을 바꾸도록 회유한 정황을 정밀하게 조사하고 있다. 구속영장 청구의 핵심 요소다. 심지어 홍 지사 측근 김해수 전 비서관과 엄모씨가 윤 전 부사장에게 전화하거나 만나 “홍 지사에게 주지 않은 걸로 해달라”는 취지로 회유 또는 증거인멸을 시도한 내용이 녹음된 상태로 검찰에 넘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20년 전 “부패한 정치권력과 전쟁을 벌여보고 싶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해 아쉽다”고 했던 모래시계 검사 홍준표의 최대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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