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김용언] 온갖 기행(奇行)으로 유명했던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2007년 뚜렷한 이유 없이 베네주엘라 표준시를 30분 늦췄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해도 개의치 않겠다”고 강변했다. 스스로도 느닷없는 표준시 변경이 ‘미친 짓’이라는 사실을 인지했다는 증거다. 그는 표준시뿐만 아니라 국명·국기·문장까지도 바꿨다.
또 중국 공산당 지도자 마오쩌둥이 공산혁명에 성공하자 전 중국의 표준시를 베이징에 맞춘 일이 있다. 표준시를 베이징에 맞춤에 따라 베이징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 지방 주민들은 해가 뜨지 않은 시간에 밥 먹고 출근해야 하는 일도 벌어졌다. 표준시에 손대는 것은 독재자가 마음 내킨다고 함부로 할 일이 아니다.
북한은 서력(西曆) 대신 김일성(1912∼1994) 출생연도인 1912년을 원년으로 삼는 주체력(主體曆)을 1997년 도입했다. 전 세계에서 ‘나 홀로 달력’을 쓰는 유일한 체제다. 그런 북한이 이번에는 표준시까지 바꿨다고 공개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5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서 동경 127.5도를 기준으로 하는 새로운 표준시간을 ‘평양시간’으로 명명했다는 것이다. 이 결정의 이유로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삼천리강토를 무참히 짓밟고 조선민족 말살정책을 일삼으면서 조선의 표준시간까지 빼앗는 용서 못 할 범죄행위를 감행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북한은 대한민국보다 시간이 30분 늦어졌다. 30분 늦게 해가 뜬다는 얘기다. 하다 못 하니까 별의별 해괴한 발상까지 서슴지 않는 북한이 가관이다.
외국 언론들은 북한의 표준시 변경을 하나같이 조롱(嘲弄)했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7일 “독재정권이 권력을 과시하고자 저지르는 어리석은 행동 가운데 표준시 변경도 포함된다”고 꼬집었다. “북한의 행태가 정치적 목적으로 표준시를 바꿔버리는 긴 역사의 마지막 사례가 될 것”이라고 논평했다.
인터넷을 통한 사회연결봉사망(SNS)인 트위터에 소개된 미국 AP 통신의 북한 표준시간 변경 기사는 7일 오후까지 500여 건의 독자의견과 전달표시가 남겨졌다. 독자의견 중 ‘뒷걸음질의 후진 사회인 북한이 표준시간도 30분 뒤로 돌렸다’는 것과 ‘북한이 주민을 위한 식량 대신 주체적 시간대를 선택했다’는 의견들이 가장 많은 공감을 받았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즈의 기사에는 ‘북한이 컴퓨터 해킹을 막기 위해서 전 세계의 표준에서 벗어나는 선택을 했다’는 북한의 결정을 희화하 하는 의견과 ‘평양시간 선택은 30분이 아닌 30년 전으로 돌아가는 선택’이라는 의견이 붙었다. 미국 일간지 엘에이타임즈 기사를 읽은 독자는 ‘북한은 항상 평양타임이었으며 그 시간은 1950년에서 멈춰 있다’는 글을 남기는 등 북한의 새로운 표준시간 발표에 대해 부정적인 내용이 다수였다.
세계 각국은 지구의 남북을 24칸으로 나누어 한 칸을 1시간으로 정한 자오선에 따라 표준시를 정한다. 지구의 위도(緯度)와 경도(經度)는 일본에서 정한 것도 아니고 중국이 만든 것도 아니다. 우리가 일본과 같은 표준시를 사용한다고 부끄럽거나 잘못된 일이 아니다. 국제관례인 표준시까지 제멋대로 바꾸면서 민족 자존심 운운한 북한이 가소롭다.
박근혜 대통령은 10일 북한의 일방적인 표준시 변경에 대해 “북한이 우리의 대화와 협력 제안에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으면서 시간대마저 분리시키는 것은 남북 협력과 평화통일 노력에 역행하는 것이자 국제사회의 의견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북한은 최근 금강산 소나무가 재선충에 감염됐다면서 우리나라의 전문가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금강산에는 우리측 방역전문가 등이 들어가 소나무를 살피고 있다. 남북당국간 회담이나 교류에는 눈을 감고 소나무에만 신경쓰는 북한이 애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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