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큰 기부로 뭇생명 구한 포항의 여성 김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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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큰 기부로 뭇생명 구한 포항의 여성 김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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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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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옥 위덕대 성인학습지원처장
[경북도민일보] ‘여기 한 여인이 숲 사랑의 씨를 뿌려 전설 같은 향토 사랑의 미담으로 피어나게 하였더라. 이 숲 있으매 뭇 생명들 수마에서 건져지고 이 숲 무성하매 이 고을 또한 흥왕하였으니 여인의 고운 손이 이렇게 고귀한 업을 일구어 후세를 가르치는도다. 그 뜻 기리며 뒤쫓아 가려는 의지를 함께 이 비에 새겨두노라.’
 포항시 송라면 하송리 ‘여인의 숲’ 송덕비에 새겨져있는 글이다. 합장한 두 손 사이에 낀 도토리를 감싼 모습을 형상화한 이 비는 숲의 무궁한 생명력과 번창을 기원하는 뜻을 품고 있다 한다.
 ‘여인의 숲’, 색다른 이름만큼 이 숲이 만들어진 연유 또한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사연을 담고 있다. 조선 말기, 송라역을 관할하는 찰방이 주재하던 곳에서 멀지 않은 송라면 하송리에는 봉수대를 이고 있는 역촌이 형성되어 있었고 파발이 들고나며 분주한 교통의 중심지였다.
 이 역촌마을에서 주막을 경영한 여성이 바로 ‘여인의 숲’의 주인공이다. 그녀의 이름은 김설보(金薛甫). 교통의 중심지인지라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주막을 드나들었다. 덕분에 그녀는 꽤나 많은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마을엔 해마다 큰 홍수가 났다. 큰 비가 오면 마을 북서쪽 호룡골의 저수지가 무너지고 작은 시내들은 모두 범람했다. 다 된 벼농사는 추수도 되기 전에 뿌리째 뽑혀 무더기 떠내려갔다.
 가축은 물론이고, 사람들도 싯누런 흙탕물 속에서 허우적대며 잠겼다 떠올랐다. 하늘만 원망할 뿐 관청도 힘있는 사람도 그 누구도 손쓸 엄두도 재간도 없었을 때였다.
 김설보는 돈을 벌 줄도 알았고 멋지게 쓸 줄도 알았던 사람이었다. 게다가 손 큰 여장부였다. 해마다 닥치는 홍수 피해에 망연해 있을 수만은 없었다고 생각했다. 마을의 상습적인 홍수 피해를 막고자 여러 사람들의 지혜를 빌렸다. 이런저런 제안 중 나무가, 숲이 마을을 홍수로 지켜줄 것이라는 답에 솔깃했다. 돈은 있겠다 무엇이 문제겠는가. 김설보는 결단했다. 거금을 들여 관으로부터 땅을 샀다. 느티나무, 쉬나무, 이팝나무를 심었다. 멋드러지게 만들어진 숲을 통 크게 마을에 희사했다.
 이 숲은 수구막이 숲이라고도 불렸다. 하송리 마을의 모습이 마치 배의 형국처럼 바다가 훤히 보이면 마을의 기운이 바다로 흘러 쇠퇴한다 하여 해문(海門)을 막고 동편의 샛바람으로부터 마을과 농토가 보호되는 기능도 했다는 것이다.
 ‘여인의 숲’이란 명칭은 김설보 여사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하여 최근 이 숲의 역사성을 알게 되고 이 여성을 기리고자 한 후세들이 최근 작명한 것이다. 훗날 사람들은 이 숲을 사람 살린 숲이라며 ‘식생이수(食生而藪)’라 불렀다.
 1897년 마을사람들은 이 숲 한 모퉁이에 조그마한 송덕비를 세워 김설보 여사의 크고 높고 깊은 뜻을 기렸다.
 “재물을 희사하여 임년(1892년)에 조성한 우리 숲을 백대로 송덕하노니 보기 드문 그 분이 거의 사라질 것을 다시 새롭게 하였으매 옥돌을 캐어다 여기에 새겨두노라(出義捐財 壬年我藪 百堵頌德 罕覩基人 幾滅更新 銘此采隣)”
 그의 남편 윤기석의 처 김설보(出身坡平尹公琦碩妻碑 淸風金氏薛甫不忘)라는 이름으로 새겨진 초라한 비서일지언정 마을 사람들은 영원히 그녀의 은혜를 잊지 않으려 했다.
 이렇듯 한 여성의 고귀한 뜻에 의해 조성된 숲으로 수많은 후대 사람들의 많은 목숨을 건졌다. 또한 숲을 안식처 삼아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살아갈 수 있게 했다.
 김설보의 남편 윤기석은 고승 대덕의 영정만이 안치되던 보경사 원진각에 영정이 봉안될 정도로 예우를 받았다. 또는 무과에 급제해 부사과(지금의 육군 소위 계급에 해당)벼슬을 지내기도 했었다는 기록도 남기고 있다.
 처음 이 송덕비는 7번 국도변에 세워졌다고 한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에 의해 비석이 훼손되는 일이 잦자 남편의 문중인 윤씨 가문에도 좋지 않은 일들이 잇따라 발생했다. 그러자 후손들이 부수어져 떨어진 윗부분을 시멘트로 붙여 현재의 자리로 옮겨 세우게 되었다.
 지금 이 송덕비는 숲 외진 곳에 글씨조차 희미하게 초라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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