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화가 폴 고갱은 “화가는 그가 그린 꽃 뒤에 숨어 있어도 사람들이 그를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모네라는 이름에서 수련을 떠올리듯 반 고흐라는 이름에서 우리는 쉽게 해바라기를 떠올린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가 그린 해바라기는 뇌리에 남아 있다.
언제 어디서 처음 보았는지, 자신이 어떻게 반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을 알고 있는지 기억조차 희미하지만, 무언가 마음을 끄는 황금빛 해바라기 송이들을 마주하는 순간 그 뒤에 숨은 ‘화가’ 반 고흐를 만날 수 있다.
마치 고갱이 그린 반 고흐의 초상화 제목처럼 ‘해바라기 화가’는 그렇게 태양과도 같은 열정을 품고 여전히 그림 속에 살고 있다.
반 고흐 전문가로 불리는 마틴 베일리가 쓴 ‘반 고흐의 태양, 해바라기’는 반 고흐 사후, 1·2차 세계대전 등 험난한 역사 속에서 그의 작품들이 어떻게 살아남고 팔려나가 현재 우리들 곁으로 오게됐는지 그 여정과 궤적을 담은 책이다.
마틴 베일리는 1980년대부터 반 고흐 연구를 시작해 두 차례 전시회를 조직했고 그에 대해 집중적으로 글을 써온 저명한 반 고흐 전문가다.
그는 책에서 ‘왜 반 고흐가 프랑스 남부 아를에서 해바라기 정물화 연작을 그렸는지’ 이야기할 뿐 아니라 반 고흐 사후 ‘일곱 점의 해바라기가 겪는 실로 놀라운 모험과 여정을 탐구’한다.
“그러나 다음 해, 새로이 해바라기가 몽마르트르 기슭에서 꽃을 피우기 시작하면서 해바라기는 재빨리 반 고흐 내면으로 파고들어 그 중심에 서게 된다. 선명한 노란색과 태양 같은 꽃잎, 그리고 순전히 크기만으로도 시선을 압도하는 해바라기가 반 고흐의 상상력에 불을 붙였다는 사실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몽마르트’ 중에서)
책은 1부와 2부로 구성돼 있다. 1부에서는 치열하게 예술혼을 불태우며 희대의 걸작이라 불리는 ‘해바라기 정물화 연작’을 탄생시킨 반 고흐 생전의 이야기를 다룬다.
2부에서는 시대의 불운을 온몸으로 부딪히고 종국에는 미술사에서 전무후무한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한 예술가가 남긴 걸작이 누구의 손에 의해 어떤 경로로 지금의 장소에 가게 되었는지 그 자취를 주도면밀하게 추적한다.
그가 고갱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나는 자네가 나쁜 선택을 했다고 생각지 않네. 자냉에게는 모란이 있고, 쿠스트에게는 접시꽃이 있듯이,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 해바라기를 택했으니까”라고 말한 것처럼, 반 고흐는 어느 예술가보다 앞서 이 태양처럼 빛나는 노란 꽃을 선택하고, 집착적으로 그렸으며, 자신을 상징하는 꽃으로 취했다.
그중 해바라기 정물화 연작에 사용된 꽃병과 반 고흐가 귀를 훼손한 사건의 전말, 반 고흐에게 캔버스를 팔았다는 어느 노부인과의 만남, 그리고 1914년과 1939년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난 참혹한 전쟁 속에서 폐기 처분될 뻔 한 위기를 넘기고 살아남는 과정 등 반 고흐의 삶과 작품 속에 녹아든 흥미로운 이야기가 쉼 없이 쏟아져 나온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자해 사건 전말을 푸는 비밀의 열쇠 부분이다.
지금까지 반 고흐가 귀를 훼손한 계기를 두고 정신질환 또는 고갱과의 관계 악화 등이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저자는 반 고흐가 귀를 훼손한 후 그린 ‘양파가 있는 정물화’를 통해 귀를 자르게 된 것에는 동생 테오와 관련돼 있음을 파악했다.
저자는 그림 속 묘사된 물건들 중, 그림 오른쪽 하단에 위치한 봉투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2010년 런던의 로열아카데미에 이 작품이 대여됐을 때 작품을 면밀히 살펴본 결과, 봉투에 찍힌 세 개의 소인은 편지가 1888년 12월 23일 동생에게서 받은 것임을 알게됐다고 한다.
연구를 거듭한 결과, 그 편지에는 테오의 약혼을 알리는 소식이 적혀있었던 것.
결국 저자는, 반 고흐가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더 이상 동생의 지원을 받지 못할까봐 걱정했고, 그것이 자해를 촉발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말한다.
“반 고흐는 비평가 오리에에게 자신의 해바라기들이 “‘감사함’을 상징하는 아이디어의 표현”이라고 밝혔다.”(‘우리의 것이다’ 중에서)
빛과 색을 사랑했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에 감사했고, 그에 대한 표현으로 해바라기를 그렸다.
별이 빛나는 밤을 지나 아침이 밝아오면, 별 빛은 해바라기 위에 앉아 고흐의 세상을 비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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